슬픈 은하 - ep11 톡 톡 톡 2

이동조사원 P가 발행한 16개의 기묘한 에피소드

by 이동조사원 P

에피소드 11

톡 톡 톡 2

- 클라우드



사랑이 어떻게 지워질 수 있죠??

쉬워요. 그냥 컴퓨터에서 delete 키를 누르듯이 지워 버리면 되죠.

그렇지만 그 사랑이 다시 살아날 수도 있잖아요.

그래서 휴지통이 필요한 거죠. 다시 복원할 수도 있으니까.

만일에 휴지통 비우기를 해버렸다면 어떻게 해요?

그때를 위해서 백업을 해 두어야죠.

백업도 안 해 두었다면?

하드디스크 복원해야죠.

하지만 하드디스크는 덮어쓰기를 한 경우는 복원이 안 되잖아요?

그렇죠. 그러니까 사랑할 땐 항상 또 다른 폴더를 생성한 후 그곳에 사랑의 감정을 정리해 두어야 해요. 복원해야 될 일이 생길 때를 대비해서 말이에요.

그런데 사랑은 워낙 복잡해서 그렇게 체계적으로 관리하기가 어렵잖아요?

그래서 필요한 게 클라우드 컴퓨팅입니다.

클라우드 컴퓨팅?

그래요, 내 컴퓨터의 하드디스크에 저장된 사랑의 기억들은 간섭효과 때문에 오류를 일으키기도 하죠. 혹시 잘못되면 하드디스크를 완전히 포맷해야 될지도 모르구요. 그것은 정말 고통스러운 과정이 뒤따르죠. 심지어 비극적이기도 하고.

어떤 점에서요?

불면, 술, 심지어 마약, 자살

그렇군요. 무섭군요.

그렇죠. 하지만 클라우드 컴퓨팅은 그런 위험을 처음부터 막아줄 수 있어요.

잘 이해가 안 돼요. 구체적으로 어떻게 된다는 거죠?

간단해요. 사랑을 시작할 때부터 나의 하드디스크를 사용하지 않는 겁니다. 모든 감정을 클라우드 서버에 접속해서 저장을 해 두는 거죠. 클라우드 서버는 오류를 일으키지 않거든요. 그리고 네트워크에 접속할 수만 있으면 언제 어디에서든 그 사랑을 불러올 수도 있어요. 컴퓨터가 없어도 된다는 거죠.

하지만 내 하드디스크에 저장하지 않은 사랑이 나의 사랑이라 할 수 있을까요?

어디에 저장한 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요. 사랑한다는 사실이 중요한 거지요. 그리고 어디에서든 그 감정을 불러올 수만 있다면 오히려 더 좋지 않을까요?

그렇지만 상처는? 사랑은 항상 상처와 함께 가는 거잖아요.

지겹지도 않나요? 그 상처? 나는 그 상처가 두려워서라도 내 하드디스크에 저장할 수가 없어요. 단지 접속하지 않으면 그뿐이지 하드디스크에 에러를 내지는 않으니까요.

그럼, 당신에게 사랑은 어떤 모습인가요?

아름답죠. 사랑은 어떤 형태로든 아름답죠. 그리고 쿨해요. 단지 접속하거나 접속하지 않기만 하면 되니까요.

그런데…….

그런데?

왜, 당신은 나를 알지 못해요?

그게 무슨?

나, 말이에요. 당신의 첫사랑.

무슨 말이죠? 잠시 기다려 줄래요. 클라우드에 접속해 볼 게요.

어때요?

이럴 수가? 이럴 수는 없는데?

왜요?

기억이 안 나요. 당신이 누군지.

우습군요. 나에 대한 기억은 클라우드에 저장하지 않았나요?

그럴 리가 없어요. 나는 어떤 사랑이든지 클라우드에 저장했어요. 혹시 당신이 잘못 알고 있는 것이 아닌가요?

이걸 보세요. 내가 잘못 알고 있는 건지.

어떻게 이런 사진이……. 난 처음 보는 사진이에요. 사진 속의 당신도 처음 보는 사람이구요.

이건 우리의 제주도 여행 사진이에요. 당신이 그렇게 졸라서 함께 갔던…….

죄송한데, 난 제주도에 가본 적이 없어요.

아니, 당신은 분명히 제주도에 갔어요. 나를 만난 이후에도 몇 번 더 간 적이 있어요.

그럴 리가?

지금 만나고 있는 사람 있죠?

네.

그 사람과도 제주도에 다녀왔을 텐데요?

아니요. 내 클라우드엔 그녀와 제주도에 간 기억은 없어요.

이래도요?

아니, 이 사진이……. 아, 이제 기억나요. 그녀와는 제주도에 다녀왔어요. 그런데 어떻게 이 사진이.

당신의 클라우드엔 없고 나한테 있냐구요? 바보, 아직도 모르겠어요?

설마?

이제야, 알았어요? 당신의 클라우드 아이디와 패스워드, 나도 알고 있어요. 당신이 가르쳐 줬잖아요. 아니, 당신이 내 앞에서 직접 클라우드 계정을 만들고 공유했잖아요. 우리 사랑의 기억을 함께 하자면서. 그런데…….

그런데?

이런 말까지 해야 되다니 슬프군요. 당신이 나를 버렸잖아요. 나는 당신을 버리지 않았는데. 내 하드디스크엔 당신과 나와의 사랑이 아직도 가득한데 말이에요.

그러면 이 모든 것이 당신이 한 일?

그래요. 당신의 클라우드에서 우리의 사랑을 지워버린 것도, 우리들 추억의 섬, 제주도를 지워버린 것도 나예요.

왜? 왜, 그랬어요?

당신에게도 상처를 주려구요. 사랑의 상처가 두려워서 사랑의 기억마저 클라우드에 저장해 놓은 당신에게 사랑했다는 기억조차 상실한 상처가 얼마나 큰 지 가르쳐 주려구요. 그리고 그 상처가 얼마나 아름다운 지도 가르쳐 주고 싶었어요.

이럴 수는, 이럴 수는…….

당신, 지금, 가슴이 아픈 가요?

네.

나도, 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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