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조사원 P가 발행한 16개의 기묘한 에피소드
에피소드 12
이것은 우리가 사랑했던 한 사람의 죽음에 관한 기록이다. 내가 이것을 발견한 것은 어느 헌책방의 낡은 책갈피에서였다. 그가 소장했던 책이 어쩌다 그 헌책방에 있게 되었는지 나는 모른다. 그리고 그가 왜 그 기록을 그렇게 남겼는지도 나는 모른다. A4 용지 몇 장에 깨알 같은 글씨로 쓴 기록. 맞춤법이 틀리거나 문맥이 어색한 부분도 있었다. 그리고, 도저히 상상할 수도 없는 내용이 있었다. 나는 이 기록을 믿을 수 없었다. 하지만 마지막 문장을 읽었을 때 나는 어쩌면 이것이 진실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아니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여러분들도 과연 그럴까? 이제 그 이야기를 시작하겠다.
나는 지금 선택의 기로에 놓여 있다. 셰익스피어의 표현을 빌리자면 남느냐 떠나느냐 그것이 문제다. 거의 천 번 정도 고민을 했다. 하지만 선택을 할 수 없었다. 그녀가 제시한 시간이 이제 서른 시간도 채 남지 않았는데 말이다. 그래서 이렇게 글을 써 본다. 글로 정리해 보면 답을 구할 수 있지 않을까?
그녀를 처음 만난 것은 두 주 전 동료들과의 뒤풀이를 마치고 집으로 향하던 차 안이었다. 술을 몇 잔 마시긴 했지만 오랫동안 많은 이야기를 나눈 터라 운전하는 데는 무리가 없었다. 그녀는 대로변에서 나의 차를 세웠다. 나는 정말 순수한 마음으로 그녀를 태웠다. 그런데 그것이 시작이었다.
“노래 좀 불러주세요.”
그녀는 차에 타자마자 다짜고짜 그렇게 말했다.
“아니, 무슨?”
“그냥 좀 불러주세요.”
나는 조금 황당했다. 하지만 그녀로부터 흘러나오는 알 수 없는 기운 때문에 나는 노래를 부르고 말았다. 그런데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노래가 끝나자 그녀의 눈은 울고 있었다.
“역시, 당신의 목소리는…….”
“어디까지 가세요?”
나는 딱히 할 말도 없고 해서 그녀를 태운 원래의 의도를 밝혔다.
“어디라도 태워주실 수 있어요?”
“뭐, 그렇게 멀지만 않다면요.”
“좀 멀긴 한데. 그럼 저기로 가 주세요.”
그녀는 자신이 앉은 차창 밖을 가리켰다.
“어디요?”
“저기요. 궁수자리.”
그녀는 하늘 한 구석을 가리키고 있었다. 나는 차를 세웠다.
“이봐요. 아가씨?”
“정말이에요. 난 저곳에서 왔어요. 당신을 데려가려고.”
“도대체 무슨 말이에요? 술 마셨어요?”
“내가 어떻게 보여요?”
그녀는 나의 말에는 대꾸도 않고 자신의 말을 이어갔다.
“그냥……, 이상하고 예쁜 여자.”
“정말 그렇게 보여요?”
나는 그녀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의식을 잃었다. 그것은 그녀의, 아니 인간의 모습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봐요. 정신 좀 차려요.”
내가 정신을 차렸을 때 내 눈에 나타난 건 그녀였다.
“놀라게 했다면 미안해요. 이건 단지 인터페이스일 뿐이에요. 당신이 지구인이라는 인터페이스를 가진 것처럼 말이에요. 당신이 나를 믿지 않아 잠깐 인터페이스를 바꾼 것뿐이에요.”
소름이 쭉 돋아났다.
“그럼 당신은?”
간신히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
“맞아요. 지구에서 말하는 외계인.”
나는 다시 의식을 잃을 것 같았다. 그때 그녀의 손이 떨리는 나의 손을 감쌌다. 그러자 그녀와 나의 손 주위에 초록색 빛이 피어났다. 그리고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게다가 좀 전까지 있던 술기운도 모두 사라졌다.
“이건?”
“당신, 간이 별로 안 좋군요. 폐와 심장에도 문제가 좀 있어요. 하지만 이제 다 나았어요.”
그녀는 손을 뗐다.
“정말 당신은 인간이 아니군요.”
나는 언제 그랬냐 싶을 정도로 차분해진 나의 목소리에 또 놀라고 있었다. 그것도 아마 그녀의 어떤 치료 덕분이리라.
“말했잖아요. 외계인. 사실 조금 기분 나쁜 말이긴 하지만…….”
“왜요?”
“지구는 미개 행성이잖아요. 아직 은하 옥션 시스템에도 가입되지 않은, 그런 지구인에게 외계인 취급받는다는 게 그렇게 유쾌한 일은 아니죠.”
“은하 옥션 시스템?”
“지구식 표현대로라면 그렇죠.”
“그럼 당신의 표현대로라면?”
“안 듣는 게 좋을 거예요. 당신 뇌가 녹아내릴지도 모르니까.”
“아, 알았어요. 그건 그렇고, 그 은하 옥션 시스템이 뭔가요? 그리고 인터페이슨가 하는 것은 또?”
“먼저 인터페이스부터. 인터페이스는 별개 아니에요. 미개한 지구인에게는 아직 개발되지 않은 시스템이라 평생 한 개 밖에 가질 수 없지만, 아니지 아주 원시적인 컴퓨터로 시도하고 있긴 하던데. 어쨌든 그때그때 환경에 맞게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는 분장 같은 거라 생각하면 돼요.”
“변신로봇 같은 건가요? 미래에서 온 사이보그 같은…….”
“에이, 그건 정말 후진 시스템이구요. 이를테면 여자들을 꼬시기 위해 온갖 모습으로 변신했다는 제우스 정도?”
“그렇구나. 그럼, 은하 옥션 시스템은?”
“그게 바로 내가 여기 온 목적인데. 사실 당신은 은하 옥션 시스템에서 선택받은 인간이에요. 지금부터 긴 이야기를 할 텐데. 봐 주실 수 있어요?”
“그렇게 하죠. 근데 보다니 뭘?”
“여길 보세요.”
그녀는 세 손가락을 내밀었다. 이번에 파란색, 빨간색, 초록색 빛이 그녀의 손끝에서 흘러나왔다. 그리고 그 빛들은 자동차 앞 유리창에 환상적인 입체 영상을 만들어냈다. 복잡했지만 그녀의 말, 아니 설명을 대충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그녀는 먼저 자신이 일종의 큐레이터라고 소개했다. 그녀의 설명에 의하면 은하계의 모든 예술 작품들은 각자 독특한 파장의 주파수를 가지는데 그것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은하계 구석구석까지 퍼져나간다고 한다. 예를 들어 어떤 화가가 그림을 그릴 때마다 그 그림의 주파수가 은하계적 입장에서 보면 거의 실시간으로 퍼져나가 은하 중심 문명계의 수 천억, 수 천 조의 존재들 중 특이한 취향의 큐레이터들의 독특한 디스플레이 장치에 저장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들 중 전 은하계를 감동시킬만한 작품을 발견하면 큐레이터들이 즉시 “은하 옥션 시스템”에 소개한다는 것이다. 그다음은 지구에서처럼 경매를 거쳐 작품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감상자들에게 팔려나가고 저작자에게는 적절한 보상이 지급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기술적으로 미개한 지구가 아직 “은하 옥션 시스템”에 가입되어 있지 않아서 창작자에게 실시간으로 보상이 이루어지지 못한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작가를 바로 은하계 중심부로 데려가 데뷔시킬 수도 없는 상태다. 그래서 “은하 옥션 시스템”에서는 몇 가지 해결책을 마련했는데 지구의 예술가들에게 알게 모르게 개인적으로 은하 옥션에 데뷔할 기회를 부여하는 것이다. 물론 그 방식도 예술가 개개인에게 시대나 지역, 문화에 따라 다른 방식으로 적용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모차르트에게는 천재적이지만 짧은 유전자 구조를 부여했다. 그러니 지구에서의 그 짧은 삶 동안 수 백 곡을 만들어 내고는 그렇게 빨리 (지구의 입장에서 보면) 죽었다는 것이다. 물론 모차르트는 이후 은하계 중심에서 가장 천재적인 음악가로 데뷔했고 (은하계에서의) 사후 그는 은하 중심에서 별로 태어나 전 은하에 아직도 그 음악적 빛을 밝혀주고 있다는 것이다. 베토벤의 경우엔 초절정 와인 지향 유전자를 부여했다. 왜냐하면 그 시대 와인 잔에는 중금속 성분이 다량 함유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베토벤이 음악적 완성에 이를 즈음, 그러니까 은하계의 중심부에 화려하게 데뷔할 즈음, 그의 몸속엔 와인, 아니 중금속 성분이 그의 지구적 삶을 끝낼 수 있을 만큼 축적되어 있었다. 당연히 베토벤은 알 수 없는 병으로 지구를 떠나 은하계에 데뷔했고 역시 별이 되었다. 흥미로운 사실은 은하 중심부에서는 모차르트가 베토벤보다 좀 더 오래 살았다는 것이다. 고흐의 경우는 조금 독특했다. 그것은 그의 무의식 구조에 “은하 옥션 시스템”에 대한 설명을 저장하여 끊임없이 그를 충동질하는 방식이었는데 (왜냐하면 이때쯤부터는 인간도 어느 정도 은하계에 대해 알게 되었고 그것을 직접 설명하면 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그게 오류를 일으켜 고흐 자신이 귀를 자르는 상황에까지 이르게 된 것이었다. 그러자 “은하 옥션 시스템”에서는 바로 오류를 수정하여 차라리 고흐 스스로 유전자 시스템을 끝내는 방식을 택하게 되었다. 그 이후 고흐는 은하 중심부에 성공적으로 데뷔하게 되었고 역시 모차르트나 베토벤처럼 별로 환생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고흐 이후 “은하 옥션 시스템”은 고흐의 방식을 주로 택하게 되었는데 그것이 현재 지구인의 의식 구조와 문화에 가장 덜 충격적인 방법이었고, 무엇보다 예술가들 스스로가 가장 선호하는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해가 안 되는 게 있어요.”
“뭐죠?”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면, 당신이 은하계 저쪽에서 왔다면 적어도 빛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왔다는 것인데, 지구엔 아직 그런 게 없거든요. 그런데 어떻게 지구의 작품들이 은하계 저쪽까지 갈 수 있단 거죠? 특히 음악은 빛보다도 훨씬 느리다고 알고 있는데.”
“그건 피타고라스란 사람 덕분이죠.”
“피타고라스? 에이 제곱 플러스 비 제곱은 씨 제곱의 그 피타고라스?”
“맞아요. 그런데 그 피타고라스란 사람 정말 대단하더군요. 이처럼 미개한 지구에서 그 시절에 성간 주파수 무한 증폭 시스템의 핵심을 정확히 꿰뚫고 있었다니. 물론 지구에서 은하계로 보내는 방법을 발견하진 못했지만 그 시절에 별들의 음악을 들을 수 있었다는 게 믿기지 않아요. 2000년도 훨씬 지난 지금도 그 시스템을 정확히 알고 있는 지구인이 아무도 없는데 말이에요. 어쨌든 피타고라스가 그걸 발견하는 순간 지구는 은하계의 중심과 연결된 거랍니다.”
“무슨 말인지 어렵군요. 성간 주파수 무한 증폭 시스템?”
“간단해요. 아까 봤죠? 모든 예술 작품들은 고유의 주파수를 가진다는 것. 그 주파수들이 별들 사이에서 무한대로 크기와 속도가 증폭되는 거예요. 피타고라스의 정리는 단순히 직각삼각형의 성격 문제가 아닌 거죠. 씨 제곱은 또 다른 디 제곱과 결합하여 이 제곱이 되고 이 제곱은 다시 에프 제곱과 결합하고 그렇게 무한히 별들 사이로 확대되어 가는 거죠. 그것이 지구인은 아직 모르는 이른바 art의 특징이죠. 알겠어요?”
“조금은 알 것 같아요. 그런데 한 가지 더. 그럼 그동안 얼마나 많은 지구의 예술가들이 은하계에 데뷔한 거죠?”
“많아요. 아주. 왜냐하면 은하계 시간으로 최근 2, 3천 년 사이에 은하계 중심부에 복고 바람이 불고 있거든요. 지구의 예술들은 은하계의 존재들에게 수십 만 년 전의 감성을 자극하고 있답니다.”
“어떤 분들인지 말해줄 수 있어요?”
“당신도 다 아는 사람들이에요. 도연명, 이백, 다빈치, 셰익스피어, 렘브란트, 바흐, 베토벤, 랭보, 톨스토이 아까 말했던 모차르트, 고흐 등등 아주 많아요.”
“혹시 내가 태어난 이 나라의 분들도 있나요?”
“물론이죠. 황진이, 윤선도, 정선, 김홍도, 신윤복, 김소월, 윤동주…….”
“그렇군요. 근데 최근에는 어떤 분들이?”
“최근이라면 마야코프스키, 존 레넌, 커트 코베인 정도?”
“존 레넌에, 커트 코베인까지?”
“그럼요. 참! 그 사람, 커트 코베인! 그 사람이 당신을 추천하기도 했어요.”
“그럴 리가요? 그는 날 모를 텐데.”
“지구에선 몰랐겠죠. 내가 그를 데뷔시켰는데 그도 은하 옥션 시스템에 관심이 많았어요. 아직 지구에 대해 향수가 남아 있기도 하구요. 그래서 그에게 나의 일을 좀 나누어 주었죠.”
“그런데…….”
“왜, 당신이냐고요?”
“네.”
“그건, 당신의 목소리 때문이에요.”
“목소리?”
“네, 당신의 목소리 말이에요. 은하계의 존재들이 아주 많이 좋아하는.”
“……”
“은하계에서 가장 슬픈 목소리.”
나는 그녀의 말에 약간의 충격을 받았다. 사실 그즈음 나는 무척 슬펐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의 목소리에서 그것을 발견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나는 그것이 더욱 슬펐다. 그런데 그녀는 나의 목소리가 은하계에서 가장 슬픈 목소리란 것이다.
“그리고 당신이 당신도 모르는 사이에 내리는 결론, 그것 때문이기도 해요. 내가 조금만 늦게 발견했더라면 당신의 목소리는 그냥 사라져 버릴 뻔했어요. 은하 옥션 시스템이라도 죽은 존재를 발견해서 다시 살려낼 수는 없거든요. 그래서 이렇게 당신에게 직접 온 것이기도 하구요.”
“우습군요. 내 의지의 결론을 미리 예측할 수 있다니.”
“일종의 통계죠. 일반적으로 통계의 결과를 그대로 믿는 것은 오류에 빠질 위험이 있지만 전 은하적 통계의 결과는 거의 오차가 없답니다. 그리고 혹시 있을지도 모를 그 오차를 확인하는 것도 내가 직접 온 또 다른 이유이기도 하구요.”
“당신의 말은 나를 좀 더 우울하게 하네요. 확인이라…….”
“미안해요. 당신을 슬프게 할 마음은 없었어요. 그건 나의 일이니까요. 당신은 그냥 선택만 하면 돼요.”
“하지만 그 어떤 선택 중 하나는 전 은하적 통계의 결과처럼 내가 선택하려 했던 어떤 결론과 똑같지 않나요?”
“당신이 아니라 다른 지구인들에게만 그렇겠죠.”
“내가 그 선택을 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죠?”
“두 가지가 남겠죠. 내가 준 선택을 제외한…….”
그리고 그녀는 나에게 뭔가를 내밀었다. 그것은 두 가지 알약이었다. 파란색과 빨간색.
“파란색은 내가 준 선택을 따르겠다는 것이고 빨간색은 그러지 않겠다는 것. 빨간색을 선택하면 기억에서 모두 지워질 거예요. 나도 은하계도 은하 옥션 시스템도.”
“만일 내가 당신이 준 것을 선택하면 나에겐 어떤 일이 일어나죠?”
“일단 지구를 떠나게 되겠죠. 그리고 은하의 중심에서 노래를 하겠죠.”
“지구에서와 차이가 없네요.”
“아니요. 있어요.”
“은하 옥션 시스템의 보상?”
“물론이죠.”
“나는 보상 때문에 노래하지 않아요.”
“알아요. 당신뿐만 아니라 당신 이전에 은하계에 데뷔한 예술가들 대부분 그렇다는 걸. 은하 옥션 시스템은 그 진정성도 평가하거든요.”
“그럼, 그 보상이란 게 도대체…….”
“행복.”
“행복?”
“여기까지, 여기까지 하죠. 더 이상 이야기하면 당신에게 내 의지를 강요하게 될지도 모르겠군요. 나 이전에 이미 당신 뭔가를 선택하려 했으니까 나는 단지 당신에게 그와는 비슷한 또 다른 선택을 제시해주기 위해 온 것이지 나의 의지를 강요할 수는 없어요. 시간은 15일, 그때까지 선택해 주세요. 인사는 하지 않겠어요. 당신의 선택에 따라 다시 만날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당신은 나를 기억도 못할 테니까.”
그녀는 얼마 후 나의 차에서 내렸다. 그리고 14일이 지나 이제 하루가 남았다.
‘이 별에서도 노래를 부르며 행복할 수 있을까?’
14일 동안 나는 오직 이 한 가지만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지금 이 글을 써가며 그 결론에 다가서고 있다. 그녀는 나의 목소리가 은하계에서 가장 슬픈 목소리라고 했다. 그런데 그런 나의 슬픈 목소리를 은하계의 다른 존재들이 좋아한다고 한다. 슬픈 목소리를 좋아하는 다른 존재들. 그것은 그들도 슬프기 때문일 것이다. 슬픔은 나와 그들을 이어주는 공통분모다. 이 별도 마찬가지다. 이 별의 존재들도 슬픈 존재들이다. 하지만 그들은 나의 슬픈 노래에 더 이상 슬퍼하지 않는다. 아니 슬퍼할 줄 모른다. 더 이상 내 노래가 의미 없어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더 이상 이 별에서 노래를 부르며 행복할 수 없다. 결국 나는 떠나야 하는 것일까? 그녀의 선택이 주어지지 않았더라도 어차피 나는 떠나야 한다. 그러면 나의 노래가 이 별의 남은 존재들에게 슬픔을 가르쳐 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 떠나자. 슬픈 은하로…….
그의 글은 이렇게 끝나 있었다. 그가 어떤 결론을 내렸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었다. 그 결론이 어떤 것이든 그것은 그의 글처럼 우리에겐 똑같은 모습이기 때문이다. 한 가지 짐작할 수 있는 것은 그가 지금은 행복할 것이란 사실이다. 그의 생각처럼 우리가 그의 선택으로 인해 그의 슬픈 목소리를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슬픔이 가진 아름다운 힘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어젯밤, 나는 궁수자리 근처의 별들 사이에서 흘러오는 슬프고 행복한 그의 목소리를 들었다.
이룰 수 없는 이와 사랑에 빠졌을 때
너무나 사랑하여 이별을 예감할 때
아픔을 감추려고 허탈이 미소 지을 때
슬픈 노래를 불러요. 슬픈 노래를
밤늦은 여행길에 낯선 길 지나갈 때
사랑은 떠났지만 추억이 살아날 때
길 가의 안개꽃이 너처럼 미소 지을 때
슬픈 노래를 불러요. 슬픈 노래를
어린아이에게서 어른의 모습을 볼 때
너무나 슬퍼서 눈물이 메마를 때
노인의 주름 속에 인생을 바라볼 때
슬픈 노래를 불러요. 슬픈 노래를
슬픈 노래를 불러요. 슬픈 노래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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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김광석 <슬픈 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