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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 선 Oct 23. 2020

나는 어설픈 갑질이 싫다.

D로 시작해서 D로 끝나는 갑질.

나는 어설픈 갑질이 싫다.

그것이 권위에 의한 것이든 돈에 의한 것이든. 나는 예전부터 어설픈 갑질을 싫어했다.

그런데 의도하지 않게 갑이 되어 있는 경우가 있었다.

오늘이 그러하였다.


퇴근길. 다른 때보다 늦은 길. 

다니지 않던 길로 돌아오다 보니 공사 중인 교차로가 있었고 바로 앞에는 경찰서가 있었다. 그리고 그 경찰서 앞에는 무언가 보이지도 않는 자가 야광봉을 흔들고 있었다. 뭐지..

번쩍번쩍 공사 불빛들이 정신없이 아른거린다.

신호도 제대로 업이 주황 불이 깜빡거리니 내 눈이 어디로 갈지 모르겠다.

원래 직진 길도 아니고 곡선 길로 임시적으로 만들어 놓은 길을 운전자들은 참 용케도 운전한다.

이런.

그 복잡한 길 한가운데에서 야광봉을 흔드는 것은 모범 운전자였다. 그런데 야광조끼는 닳고 닳은 건지 보이지도 않는다. 머리가 희끗하신 모범 운전자 분은 연신 야광봉을 흔들며 운전자들을 이끌었다.


아.. 이건 아닌데, 저분 왜 꼭 저기 계셔야 되는 걸까. 


급히 바로 앞 경찰서에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경찰청으로 넘어간다. 한참을 기다리다 음성 메모를 남기라는 말에 


- 지금 00 교차로 00 경찰서 앞에 계신 모범 운전자분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위험해 보이니 조치 부탁드립니다


이내 연락이 왔다.

-아, 네~ 신청하신 내용 잘 접수되었습니다. 그러니까 그 모범운전자 분 때문에 운전하시는데 더 위험해졌다는 말씀이신 거지요?

- 아니요. 아닙니다. 그분이 위험해 보이니 조치해 달라는 말씀입니다. 더 야광을 빛나게 해 주시던지 안전하게 장비를 갖추어 달라는 말입니다.


무척 당황하는 목소리였다. 그 상담원은 내가 불만 민원을 접수한 거라 생각했던 것이다. 운전자가 위험하니 조치해 달라는 민원은 받아본 적 없는 말투였다.

-금세 조치하고 연락드리겠습니다.

나 역시 살기 바쁜 사람이다. 이렇게 기다리며 전화할 시간 많지 않다. 그런데 의도하지 않은 갑질. 어설픈 갑질이 참 싫다. 


올여름 있었던 일이다. 아이들과 함께 은행에 갔는데 은행 창구 안내하는 여자분이 연신 서서 번호표를 뽑아준다. 그렇게 계속 서 계셨다. 손님이 없는 시간에도 한 번도 앉지 못한 채로. 결국 남편과 이야기를 나누고는 전화기를 들었다.


-지금 00 은행에 안내하시는 분, 계시는 데 앉아서 일하게 해 주시면 안 되나요. 꼭 서서 번호표를 줘야 하는 건지, 그 정도는 오는 사람이 할 수 있으니 필요해서 안내할 때만 일어나시면 될 것 같아서요. 


말을 들어보니 앉아서 한다고 민원 넣는 것은 들었어도 서서 한다고 전화민원 준 사람은 없다고 한다.

바로 조치하겠겠다고 한다. 

속으로 생각했다. 누군가가 다시 일어나서 일하라고 민원 넣어서 일어서서 해야 한다면.. 그래 나도 다시 하면 되지 뭐.

다행히 지금 그 은행은 가면 그분은 앉아서 쉬기도 하고 서서 안내를 하기도 한다. 오지랖이었어도 누군가 그런 생각을 한다는 것만이라도 알면 덜 힘드시리라 믿으며.



왜 우리는 우리보다 약한 사람을 보면 어설프게 갑질을 하고 싶을까.

그에게 돈을 주었다는 이유로

서비스를 제공받는 사람이라는 이유로.

나는 어느 순간 갑이 되어 있다.

점원의 말투가 더 상냥하기를 바라고

태도가 더 친절하기를 바란다.

그러지 않으면 화를 내고 을인 우리끼리 서로 좀 더 갑이 되고자 이빨을 드러낸다.

그러면서 대기업의 갑질은 힘을 주어 욕을 한다. 


나는 아이들에게 가능한 눈높이를 맞춘다.

내가 교사라서 권위로 누르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그리고 늘 이 이야기를 한다.

D로 시작해 D로 끝나는 이야기를


 아빠(Dad)는 화를 엄마(Mom) 에게 풀어.

그러면 엄마(Mom)는 화를 아이(Child)에게 풀지.

그렇다면 아이(Child)는 화를 어디에 풀까?

맞아. 다시 D에게 푼단다. 

어려서는 강아지(Dog)에게 푼단다..

힘이 세지면 자신을 힘들게 했던 아빠(Dad)에게 풀겠지.  (그런데 이 말은 차마 아이들에게는 못하겠다)

자신보다 조금이라도 더 약한 자에게 화를 푸는 것. 그렇게라도 갑이 되고 싶은 것.  


나는 성직자가 아니다. 그리 잘난 사람도 아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경찰, 소방관, 상담가, 복지사 그리고 교사들에게 소명 감만을 요구하는 것은 싫다.

그리고 그 앞에서는 그들의 당연한 소명감을 요구하며 본인의 갑질을 하는 것은 더 싫다.  서비스를 제공해야 되는 그들이 잘못된 거야. 그러니 나의 민원으로 모두 고치리라 생각하는 그게 참 안타깝다. 조금만 우리끼리 감싸며 살면 안 될까. 어차피 우리는 모두 을인 것을.



내가 서비스를 받는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들을 을로 규정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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