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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 선 Oct 26. 2020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지만. 먹고사는데 귀천이 생기다

먹고사는 것 자체가 귀천이 되어버린 안타까운 요즘.

-'여러분, 직업에는 귀천이 없습니다.

부모님이 하시는 직업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여러분도 커서 좋은 직업을 갖도록 노력하세요.'

(뭐지. 귀천이 없는데 좋은 직업을 가지라고 하는 건)


-'열심히 공부해야 돼. 안 그러면 너 저 아저씨처럼 된다.'

아이들이 참, 혼란스럽겠다. 직업에 귀천이 없다만 가능한 좋은 직장을 갖도록 노력해야 하고 열심히 하지 않으면 눈 앞에 땀 뻘뻘 흘리는 아저씨처럼 된단다. 이미 학교와 가정에서의 답은 다 정해져 있는 것 같기만 하다.


1. 열심히 공부한다.

2. 좋은 직장을 갖는다.

3. 마음에 드는 직장이 아니었어도 귀천은 없으니 열심히 산다.

4. 그 직장에서 열심히 살아야 성공한다.


서른 살이 넘어 남들이 그리 원하던 직장에 합격한 지인이, 나에게 상담을 한다.


-저기. 나 있잖아.

너무 박봉이라 힘들어서 그만두고 택배 할까 생각 중이야. 조금만 힘들게 하면 물량 많을 때는 월 오백도 가능하데.


직업에서는 땀 흘리는 직업보다 화이트 칼라를 선택하라 배웠건만 먹고 살려니 귀한 것이란 다르게 정의된다.  자식들 먹이고 가르치고 키우는 데 어려움이 없는 돈벌이를 할 수 있는 아빠의 직업은 귀한 것이다. 부러움을 넘어서 경외로움의 대상이다.

안정적인 수익을 가정에 가지고 오는 엄마의 직업은 귀한 것이다. 

왜냐하면 먹고사는 과정을 천하지 않게 만들어 주었기 때문이다.


먹고사는데 귀천이 생겨버렸다.

귀하게 사는 사람은 다시 말한다.


-'여러분, 직업에는 귀천이 없습니다.

부모님이 하시는 직업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여러분도 커서 좋은 직업을 갖도록 노력하세요.'


나는 진심으로 바라는 삶이 있다.

먹고 사느라 목숨을 걸고 자신의 몸집보다 훨씬 큰 리어카를 끌며 차도로 다니는 이들을 위한 길.

먹고사는 방법을 모른 채로

어떻게든 살기 위한 의지를 가지고 있어

새벽부터 더 많은 파지를 줍기 위해 나오는 이들.


내가 돈 공부를 하게 된 이유는 딱 하나였다. 훗날 우리 엄마 아빠 파지 주으러 다니게 하지 않으려고.

직장을 다닐 수도 없는 형편이시니

나이 많고 아침잠 없는 노인들이 먹고 살기 위해 할 수 있는 게 무엇이 있겠는가. 

지난여름.

내리막길에 그 큰 리어카를 끌고 10차선 도로를 헤매는 할아버지의 모습은 나를 너무 힘들게 했다.


내가 원하는 내 삶의 후반기는.

그들을 위한 단체를 만드는 것. 그래서 점차 리어카가 아닌 자신의 직업을 끌고 나가도록 기회를 제공하는 것.

그리고 단체에 닿지 않는 분들을 위해 매달 일정액은 현금으로 들고나가 무작정 현금을 기부하고 싶은 것이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 했다.

먹고 사는데도 귀천이 없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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