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일기(壬辰日記)』 - 이순신 [서평]
난중일기(임진일기); 임진년(1592)부터 시작된 7년의 전쟁을 기록한 충무공 이순신의 일기.
이 책을 읽은 이유는 간단하다. 난 가끔 타인의 은밀한 일기장이 궁금할 때가 있다. 그런데 그 일기장의 주인이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이순신 장군이라면? 게다가 그 일기가 국보 제 76호이자 유네스코 문화유산이란 권위에 표지마저 초판본의 실제 디자인이라면? 당신을 참을 수 있겠는가? 그의 내밀한 것들을, 일거수일투족을, 그의 형언할 수 없는 지혜를 탐하여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 일기장이 아닌 그의 기상을 펼쳤다.
이 일기를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곧은 절개로 평생 죽도록 일하면서 전쟁 중에 고통받다 처연히 생을 마감하는 한 인간의 덧없고 처절한 삶"이다.
이 책은 군더더기 없는 간결한 문체와 단순함이 특징인데 그중에서도 가장 많이 반복되는 3가지의 대표 문장을 가져왔다. 이 3가지의 문장만 알면 이 일기의 절반을 읽은 것과 다름없다. 진심이다.
1."동헌에 나가서 공무를 보았다."(여기에서 동헌은 장군들의 직장이라고 보면 된다.)
2. 활을 n순 쏘았다"(여기에서 순은 활을 10발 쏘는 단위이다. 즉 3 순 쐈다고 하면 30발을 쏜 것이다.)
3. 몸이 매우 불편하다."(몸이 매우 불편하다의 다양한 버전이 있는데 이 버전이 제일 많다.)
이토록 이순신이란 인간 자체의 삶은 지독할 정도로 단순하기 그지없다. 아니, 재미없다란 말이 적확하다. 오죽하면 이 책의 한 구매 리뷰에서 "아이에게 이 책을 읽게 하고 싶은데 계속 같은 말만 반복되니 아이가 책에 흥미를 갖지 못한다."라고 학부모가 볼멘소리를 할 정도이니 말이다. 그러나 오히려 나는 이것이 인생을 완벽하게 표현한 최고의 글이라고 본다. 사실 인간이 태어나하는 짓이라곤 먹고, 자고, 움직이는 것이 전부 아니겠는가. 지루함도 배움이고 지루함을 견디는 것 또한 배움이다. 사실 지루함 그 자체가 인생인 것을 우리는 안다.
이 책은 어떠한 조미료도 치지 않은 한 사람의 인간을 그대로 투영하는 정수이다. 온갖 화학재료가 첨가되어 발칙한 맛이 나는 군것질을 먹다 슴슴한 것을 먹으려니 입맛에 안 맞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내 곧 소담하며 히수무레하고 부드러운 육수의 맛을 아는 순간 평양냉면의 그윽한 맛에 빠져 들어가듯 각자의 맛이 존재한다. 그리고 난 이 맛을 참 사랑한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다소 난해해 보이는 책의 위엄과 달리 몇 개의 어휘만을 숙지하면 누가 읽어도 술술 읽힐 정도로 쉬운 문장으로 쓰여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누구에게 보여줄 용도도 아니었으며 외압에 의해 작성된 기록도 아니기에 이순신이란 사람이 궁금하다면 이 일기만이 진정한 그를 마주할 수 있는 유일한 장소이다. 최근 이상한 예술병에 걸린 친구들의 글을 읽다가 사리가 딱딱 맞는 담백한 글을 읽으니 진정 기쁘다.
초딩 시절, 역사책을 통해 알게 된 이순신 장군의 명대사는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나의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 마라" 사실 이 표현의 원문인 《이충무공전서》에선 "싸움이 한창 급하니 내가 죽었다는 말을 하지 말라."라고 기록됐으나 이것을 아군 또는 적으로 의역되어 널리 인용됐다.
그때의 나는 이 죽음을 당최 받아 이해할 수 없었다. 그 잼민이 시절의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를 나이 먹은 아저씨가 다 되어서야 드디어 풀게 됐다. 그 당시의 바다로 떠나보자.(명량대첩) 大捷 큰 대, 이길 첩. 크게 이김. 또는 큰 승리.
"'적선 133여 척이 우리의 배들을 둘러쌌다. 대장선 홀로 적진 속으로 들어가 포탄과 화살을 비바람같이 쏘아 대건만 여러 배들은 관망만 하고 진군하지 않아 사태를 헤아릴 수가 없었다. 여러 장수들은 적은 군사로 수많은 적과 싸워야 하는 상황임을 직감했고 살기 위해 회피할 생각만 하고 있었다. 우수사 김억추가 탄 배는 이미 물러나 아득히 먼 곳에 있었다. 나는 노를 재촉해 앞으로 돌진하면서 지자총통과 현자총통 등 각종 총통을 빗발치듯 쏘아 댔다. 마치 바람이 불고 천둥이 치는 것 같기도 했다. 군관들이 배 위에 빽빽이 서서 화살을 빗발치듯 쏘았다 그러자 적의 무리들은 감히 덤벼들지 못했다. 그러나 적에게 몇 겹으로 둘러싸여 일이 앞으로 어떻게 될지 예측할 수 없었다. 배에 있는 군사들은 겁에 질려 있었다. 나는 침착하게, '적선이 비록 1,000척이라도 우리 배에는 감히 곧바로 덤벼들지 못할 것이다. 조금도 흔들리지 말고 마음과 힘을 다해 적을 쏘고 또 쏘아라.'라고 했다. 여러 장수들이 먼바다로 물러나 있었다. 나는 배를 돌려 군령을 내리고 싶었지만 적선들이 그 틈을 노려 덤벼들 수도 있기 때문에, 나아가지도 물러나지도 못하는 난처한 상황에 처해 있었다. 그래서 호각을 불게 하고 초요기를 올리게 했다. 거제 현령 안위의 배와 미조항 첨사 김응함의 배가 먼저 왔다. 나는 배 위에 서서 안위를 불러 말했다. '안위야, 군법에 죽고 싶은 것이냐. 도망가서 산다면 어디에서 살 수 있겠느냐.'라고 하자 안위는 몹시 당황해 적선 속으로 돌진해 들어갔다. 또 김응함을 불러 이르기를, '너는 중군장으로서 멀리 피하고 대장을 구하지 않으니 그 죄를 어찌 면할 수 이겠느냐. 당장 처형하고 싶지만 상황이 급박하므로 우선 공을 세우게 해 주마.'라고 했다. 김응함 또한 적선 속으로 돌진했다. 그때 적장이 탄 배가 휘하의 배 2척을 지휘해 한꺼번에 안위의 배에 달라붙어 서로 먼저 올라가려고 했다. 안위와 그 배의 군사들은 죽을힘을 다해 몽둥이로 치기도 하고, 긴 창으로 찌르기도 하고, 수마석 덩어리를 던지기도 했다. 배 위의 군사들은 기진맥진했고, 안위의 격군 7~8명이 물에 뛰어들어 헤엄을 치는데 거의 구하지 못할 것 같았다. 이때 나는 뱃머리를 돌려 적을 향해 빗발치듯 쏘았다. 적선 3척이 거의 뒤집힐 때 녹도 만호 송여종과 평산포 대장 정응두의 배가 줄지어 뒤쫓아 왔고, 힘을 합쳐 적을 쏘아 죽이니 살아 움직이는 적이 1명도 없었다.'
이순신, 「정유년」, 『난중일기(임진일기)』, 더스토리(2023), 498-499쪽.
이순신 장군이 죽을 수밖에 없는 이유가 모두 이 글에 적나라하게 밝혀졌다. 그는 진즉에 필사즉생 필생즉사의 정신으로 '행동하는 리더'였다. 응당 인간이라면 자신의 목숨이 걸린 전쟁과 살기등등한 적군의 기세 앞에 당연히 뒷걸음질 쳐질 것이다. 게다가 수적으로도 열세하여 전장으로 들어가는 것이 마치 자살행위와 같다면 답은 불 보듯 뻔하다. 이순신 장군은 그 점을 누구보다 잘 아고 먼저 직진으로 무자비하게 뛰어들었으며 의기충천한 모습으로 아군의 사기를 드높였다. 그러면서도 적 앞에서 도망치거나 군율을 어기는 자들은 목을 잘라 효시함으로써 엄정한 공포를 각인시키는 것을 잊지 않는 치밀한 공포를 설계하는 혜안을 발휘한다. 군주론에서도 잔인하다는 평판이 없으면 군대는 어떤 지휘나 단결 상태도 유지할 수 없다 했는데 그 점을 잘 알고 있는 지혜로운 리더였다.
누군가는 이 책을 읽으며 '뭐야 생각보다 별 내용이 없네'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분명 어느 정도 공감은 되지만 역설적이게도 이 글은 어떠한 변장도 없는 날 것의 그대로인 일기이기에 더욱더 가치가 있다. 이순신 장군이 인재를 고르는 안목이나 군사들의 사기를 증진시키는 법, 부모와 가족을 대하는 효와 예, 혼자 고통을 외로이 감내하며 다스리는 법 등 무궁무진한 지혜들이 꽁꽁 숨어있다.
특히, 장수들이 음탕한 쾌락에 젖어들어 본분을 망각할 때 혼자 꿋꿋이 신념을 지키는 것은 가히 충무공 이순신이라는 시호를 받을만한 성웅이라는 것에 이견이 없다. 겁에 질려 꽁무니 빼는 행동이 훤히 보이는 약은 장수라 할지라도 상대의 체면을 위해 대놓고 무안을 주지 않는 그의 인격적 성숙함과 치밀한 처세술은 특히 감명 깊다.
이 세계는 타인의 기를 죽이지 못해 안달인 사람들이 적잖다. 난 그러한 경솔함이 곧 나에게 더욱 날카로운 가시로 돌아온다는 것을 알기에 함부로 언행 하지 않으려 부단히 노력한다. 그러나 살다 보면 가끔 선을 넘는 이들이 언제나 존재하기 마련인데 그럴 땐 짐승의 방법으로 또는 정공법으로 부딪히는 방법을 하는 수 없이 택한다.
현명한 이들은 누구에게나 그러한 방법이 있지만 그럼에도 자신을 존중해 준다는 것을 일찍이 깨닫고 더욱 상호 존중하며 식견이 부족한 자는 언제나 그렇듯 그것을 약함의 신호로 받아들여 이용하려 든다. 아마 그런 이들은 그러한 행동 자체가 스스로를 가장 약한 인간으로 정의한다는 것을 못 깨닫는 듯하다. 사람은 겉으로 대놓고 판단하지 않는다. 뒤돌아섰을 때 그 사람을 곱씹으며 진정으로 판단한다. 그 자리에서 그러한 사람은 살아남을 수 없다.
이순신 장군은 치열한 전투 중 상욕 하나 없이 장수와 군사들을 적진으로 용맹하게 뛰어들게 하는 리더십을 발휘했다. 그걸 해내는 방법은 자신이 먼저 진정으로 죽음을 포기하는 길을 택하는 것이다. 그것이 진심이라면 함께하는 이들은 누구보다 빠르게 알아챌 것이며 작은 들불을 막아설 수 없듯 곧 한 산을 덮칠 듯 불이 번질 것이다.
난 그런 작지만 따뜻한 불을 지니고 싶다. 정확한 용기는 가장 어렵고 두려운 것이나 차근차근 올곧게 조금씩 나아간다면 나 또한 언젠가 용맹한 사람이 될 것이라 기대해 본다. 어릴 적 나의 상상처럼.
임진일기(난중일기)
저자 : 이순신
번역 : 김문정
출판 : 더스토리(231220)
내용 : 충무공 이순신의 의기충천한 기상이 담긴 영혼의 글이자 한 인간으로서의 비애와 통탄. 그리고 덧없는 죽음.
목차
특별 부록 | 그림으로 보는 난중일기
임진년 1592년
1월 : 전쟁의 기운을 느끼다 / 2월 : 전투 준비를 하다 / 3월 : 거북선의 대포를 쏘다 /
4월 : 임진왜란이 일어나다 / 5월 : 옥포에서 왜적과 대립하다 / 6월 : 당항포의 왜적을 물리치다
8월: 부산 앞바다에 이르다
계사년 1593년
2월 : 왜적 소탕을 위해 웅천으로 가다 / 3월 : 왜적과의 대립이 이어지다 / 5월 : 명나라 관리를 맞이하다 /
6월 : 진을 한산도로 옮기다 / 7월 : 진주성이 함락되다 / 8월 : 꿈속에서 유성룡과 만나다 /
9월 : 조총을 만들다
갑오년 1594년
1월 : 잠시 어머니를 뵙다 / 2월 : 호남의 왜적을 물리치다 / 3월 : 아픈 몸으로 수군을 지휘하다 /
4월 : 왜선 100여 척이 절영도로 가다 / 5월 : 왜적을 생포하다 / 6월 : 믿었던 사람을 잃다 /
7월 : 명나라 장수와 만나다 / 8월 : 권율과 이야기를 나누다 / 9월 : 적도에 진을 치다 /
10월 : 왜적을 위협하다 / 11월 : 왜적 수색을 명하다
을미년 1595년
1월 : 나라와 어머니를 걱정하다 / 2월 : 군량을 나누어 주다 / 3월 :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계략을 간파하다 /
4월 : 왜선 50여 척이 진해로 가다 / 5월 : 왜적의 목을 베도록 하다 / 6월 : 어머니의 병환이 완쾌되다 /
7월 : 거제의 왜적이 물러가다 / 8월 : 임금의 뜻을 확인하다 / 9월 : 아끼던 사람과 이별하다 /
10월 : 왜적의 정세를 살피다 / 11월 : 달아나려는 왜적의 목을 치도록 하다 / 12월 : 체찰사와 이야기를 나누다
병신년 1596년
1월 : 왜적의 움직임을 살피다 / 2월 : 둔전에서 벼를 받다 / 3월 : 몸이 불편해 신음하다 /
4월 :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죽음에 대해 듣다 / 5월 : 왜적이 철수할 것이라는 소문을 듣다 /
6월 : 계속해서 활을 쏘다 / 7월 : 도적이 일어나다 / 8월 : 아들들과 시간을 보내다 /
윤8월 : 백성들의 참혹한 삶을 보다 / 9월 : 전라도를 순시하다 / 10월 : 어머니를 위해 수연을 열다
정유년 1597년
4월 : 어머니와 영원히 작별하다 / 5월 : 비통한 심정을 참아 내다 / 6월 : 장수를 잃다 /
7월 : 왜적에게 대패하다 / 8월 : 3도 수군통제사를 겸하라는 임금의 명을 받다 /
9월 : 명량 해전에서 승리하다 / 10월 : 아들 면을 영원히 잃다 / 11월 : 명나라 장수에게 축하를 받다 /
12월 : 임금의 명에 감격하다
무술년 1598년
1월 : 진을 치고 왜적을 치다 / 9월 : 명나라와 협공하다 / 10월 : 뇌물을 받고 명의 군사를 철수시키다 /
11월 : 충무공이 전사하다
참고 문헌
이순신 연보
옮긴이의 말 | 진정한 리더, 충무공 이순신의 《난중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