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규 / 한겨레신문사
치기 힘든 공은 치지 않고, 잡기 힘든 공은 잡지 않는다
제가 이 책을 인생의 책 중 한 권으로 택한 이유가 이 문장 하나로 설명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꼭 전체 책을 다 봐야만 그런 기운이 느껴지는 것은 아니잖아요?
저는 이 문장을 '어깨에서 힘 빼고, 인생을 너무 진지하게 살지 말자.'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렇다고 너무 흑백논리로만 받아들이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진지하게 살지 말자고 대충 살자는 뜻은 아니거든요. 항상 진지하게만 살면 어깨도 뭉치고 쉽게 지치잖아요. 단지, 내가 걸어가고 있는 길 묵묵히 걸어가다가 주변도 둘러보고, 사람을 만나면 이런저런 이야기도 해보고, 이렇게 좀 여유롭게 살았으면 하는 겁니다.
저는 회사일로 한 달에 한 번씩 부산으로 출장을 갑니다. KTX가 없었을 시절부터 다녔는데 그때는 1박 2일로 갔습니다. 오고 가는 시간은 길었지만 거래처를 만나는 일에는 좀 여유가 있었습니다. 마음이 맞는 거래처 분과는 저녁을 먹을 시간도 있었고요. 그런데 KTX가 생기고 나서는 부산에 하루 만에 다녀올 수 있게 되었습니다. KTX가 생긴 취지대로라면 빨리 다녀올 수 있는 만큼 저에게는 시간이 여유가 생겨야 하는데, 오히려 더 바빠지게 되었습니다. 하루 만에 모든 거래처를 다 돌아야 하거든요. 다른 분야의 발전들도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컴퓨터가 빨라질수록, 핸드폰이 많아질수록, 사람들에게는 더 많은 여유시간이 생겨야 하는데 오히려 더 많은 일을 하고 더 바쁘기만 하잖아요. 내 여유시간은 내가 찾지 않으면 안 되는 것 같습니다. 사회가 발전한다고 내 여유시간이 저절로 생기는 건 아니더라고요.
요즘 '헬조선'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많은 분들이, 특히나 많은 청년들이 힘들어하는 것이 마음이 아픕니다. 이런 분들에게 '여유'라는 말이 얼마나 공허하게 들릴까 하는 걱정도 됩니다. 이 문제는 또 다른 방법으로 같이 연대해서 풀어나가야 하겠죠. 하지만, 그때까지는 힘든 와중에서도 잠깐이나마 웃음 짓는 여유를 가질 수 있도록 같이 보듬어 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