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도 근육처럼 사용하지 않으면 녹슨다.
언제부터였을까?
내가 나의 생각이나 의견, 그리고 취향을 이야기하지 않기 시작한 것은. 개인적인 성향 때문인지 나는 꽤 다양한 생각과 가치관을 가진 여러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있다. 그러다 보니 나도 모르게 그들 중 일부라도 혹시나 불편할 수 있는 이야기는 조심해서 하려는 편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 나 자신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까지 잊어버리고 말았다는 것을 몇 달 전에 문득 깨달았다.
이건 마치 무인도에 오랫동안 혼자만 있던 사람이 어느덧 말하는 법을 잃어버린 것과 비슷하다랄까?
한번 사는 인생, 내 맘껏 자유롭게 살고 싶은 마음 하나로 직장인의 삶을 겨우 때려치우고 나왔건만, 자유인이 되어서도 여전히 내가 스스로 나를 옭아매고 있었던 것이다. 역시 배려있는 솔직함의 솔직함과 친철함을 양립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 이제는 정말...
더 이상은 못.해.먹.겠.다.
이대로 살다가는 내가 숨 막혀 죽을 것 같거든. 그래서 이제는 입을 열기로 했다. 내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들, 내 가치관, 다른 누군가에겐 뜬구름 잡는 것처럼 보이는 내 생각들, 민감할 수 있는 정치적 혹은 사회적 이슈에 대한 내 의견들, 주변 사람들에 대한 감상, 내가 해왔던 일들, 하고 있는 일들, 그리고 하고 싶은 일들에 대해 말하고 싶은 것을 말하겠다. 무엇보다도 더 이상 입 다물지 않겠다.
지금부터 하려는 나의 이야기들이 불편한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 사실과 다른 것이 있을 수 있다. 내가 잘못 알고 있는 지식에서 출발한 어떤 의견이나 가치관일 수도 있다. 정치나 사회적 이슈에 대한 생각이나 가치관이 달라 그건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다.
그렇다면? 나에게 솔직하게 이야기를 해주면 된다.
단, 그것은 강요가 아닌 어디까지나 "제안"이어야 한다.
한 마디로 나에게 어떤 이야기를 하는 것은 당신의 자유지만, 그것을 내 안으로 받아들일 것인지에 대한 것은 전적으로 나의 자유라는 것이다. 다른 표현을 쓰자면, 이제 내 인생을 움직이는 운전대는 내가 직접 잡겠다는 말이기도 하다. 누군가 때론 나와 같은 차를 탈 수 있겠지만, 그 자리는 뒷좌석이나 보조석까지이다. 이제까지 내가 반평생을 살며 어렴풋이 깨달아 가고 있는 것 하나는 아무리 운전을 잘할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 나타나더라도 내 운전석을 내주는 것은 상당히 바보 같은 짓이라는 거다.
사고가 나더라도 그 사람은 그저 미안해하는 표정으로 툭툭 털고 제 갈길을 가면 그만이다. "나"라는 자동차는 우리가 알고 있는 자동차와는 다르게 매우 독특하게도 교통사고가 나더라도 동승한 사람은 아무런 피해를 입지 않는다. 오직 그 자동차의 주인인 '나'만 피해를 입기 때문이다.
그리고 몇 개월에 걸친 나름의 고민 끝에 이런 결론을 내린 또 하나의 이유는 이제는,
"내가 생각하는 나"
를 보여주고 싶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도 말과 글(어떤 경우에는 그림이나 사진)이라는 도구를 사용하는 이상 100% 온전하게 나를 전달할 수는 없다. 그래도 그나마. "당신이 생각하는 나"보다는 조금 더 많이 그리고 조금 더 정확한 나를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 그러려면, 나 스스로 자기검열을 적게 하며 이야기를 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제 그렇게 해보려고 한다.
다소 실망스럽거나 다소 의외의 모습의 나를 보여줄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그런 솔직한 나를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진짜 나의 친구가 아닐까?
언제까지 당신이 생각하는 나로 살 수는 없으니까 말이다.
2018년 10월 10일
: Rick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