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아서 더 눈부셨던, 봄의 한 장면에 대하여
벚꽃이 피던 날이었다.
세상은 유난히 밝았고, 바람은 가볍게 우리 어깨를 스쳐 지나갔다.
나무마다 연분홍빛이 가득 매달려 있었고, 그 아래를 걷는 사람들의 얼굴도 모두 조금은 부드러워 보였다.
아마 그날의 우리는, 봄이 만들어낸 가장 다정한 풍경 속에 서 있었던 것 같다.
너는 별것 아닌 말에도 잘 웃었다.
나는 그 웃음을 듣는 일이 좋았다.
정확히는, 네가 웃는 순간 세상이 조금 덜 외로워지는 것 같아서 좋았다.
사람은 누군가의 웃음 하나만으로도 하루를 견딜 수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벚꽃은 참 이상하다.
가까이서 보면 연약하고, 멀리서 보면 찬란하다.
손에 쥐면 금세 흩어질 것 같은데, 눈으로 바라볼 때는 세상의 어느 꽃보다도 오래 기억에 남는다.
어쩌면 우리의 시간도 그랬는지 모른다.
아주 짧았지만, 그래서 더 환했고
너무 아름다워서 도리어 오래 아픈 기억이 되었다.
우리는 그 아래서 참 많이 웃었다.
무엇이 그렇게 즐거웠는지 이제는 자세히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네가 웃으며 고개를 뒤로 젖히던 모습,
흩날리는 꽃잎이 네 머리카락과 어깨 위에 내려앉던 장면,
그리고 그 모든 걸 바라보며 나도 따라 웃고 있던 순간만은 아직도 선명하다.
기억은 늘 정확하지 않다.
말은 흐려지고, 날짜는 지워지고, 계절의 순서마저 희미해진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어떤 장면은 남는다.
햇살의 온도, 바람의 방향,
웃음이 터지기 직전의 짧은 숨,
그리고 ‘아, 이 순간이 지나가면 다시 오지 않겠구나’ 하고
이유 없이 마음 한쪽이 시려오던 감각까지도 그대로 남는다.
사랑은 꼭 영원해야만 아름다운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잠시 머물다 간 봄처럼,
만개했다가 바람 한 번에 흩어지는 꽃처럼,
짧았기 때문에 오히려 더 눈부신 순간들도 있으니까.
우리가 함께 웃던 그 날은 오래 지속되지는 못했지만,
그 짧음 때문에 오히려 내 안에서 한 계절 전체가 되어 버렸다.
이제는 안다.
행복은 거창한 약속이나 대단한 사건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걸.
벚꽃 아래 나란히 걷던 걸음,
서로를 바라보다 동시에 웃어버리던 순간,
말보다 먼저 마음이 닿았던 짧은 침묵 같은 것 속에도
사람이 평생 꺼내 보게 되는 아름다움은 숨어 있다는 걸.
해마다 봄이 오면 나는 다시 벚꽃을 본다.
예전과 같은 길을 걷지 않아도,
예전과 같은 사람 곁에 서 있지 않아도,
꽃은 여전히 피고 바람은 여전히 분다.
그리고 그때마다 나는 조용히 떠올린다.
한때 이 세상 어디엔가
벚꽃 아래 함께 웃던 우리가 있었다는 사실을.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이제는 조금 믿게 되었다.
사라진 것은 사라진 대로 아프지만,
한 번 진심으로 웃었던 기억은 끝내 없어지지 않는다.
꽃은 지고 계절은 바뀌어도
그날의 웃음은 내 안에서 아주 작고 따뜻한 빛으로 남아
오래도록 삶을 비춰준다.
그러니 나는 오늘도 봄을 미워하지 않는다.
비록 어떤 봄은 그리움을 데려오고,
어떤 꽃잎은 지나간 사람의 이름을 닮아 있어도,
그 아래서 우리가 분명 행복했다는 사실까지 지워지지는 않으니까.
벚꽃 아래, 우리의 웃음은
이미 지나간 시간이 아니라
한때 내가 참 잘 살아 있었음을 증명하는 장면이다.
누군가를 진심으로 바라보았고,
그 사람의 웃음에 따라 나도 웃을 수 있었던
아주 귀하고도 눈부신 한때의 봄이다.
2026년 3월 6일 "오늘의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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