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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 Oct 29. 2020

그림일기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

# 어린왕자 아니?


누군가 나에게 어린왕자 아냐고 물으면 난 언제나 '안다'고 답했다. 읽은 적이 있으니까 안다고 생각했다. 

얼마 전 임성훈의 <고전 읽기 독서법>(리드리드, 2020)을 읽고 오랜만에 '안다'고 믿고 있던 <어린왕자>를 다시 읽으며 필사하고 싶단 생각을 했다. 아는 내용이지만 필사하기에는 쉬운 책이 좋겠다 싶단 이유였다.


다시 한 번 읽고 전내용을 워드화했다. 나는 정말 어린왕자의 내용을 알았던 것일까. 만약 누군가 다시 나에게 묻는다면 이제는 '안다'고 답할 수 없다. 안다고 말하는 것이 얼마나 편협한 생각인지 다시 한번 깨닫는다.


# 가장 소중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어린왕자 속 유명한 몇 구절이 있다. 가장 소중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말도 그 중 하나다. 머리는 알고 있는 말이다. 가슴이 몰랐다는 사실은 언제나 나중에 알게 된다. 어린왕자 중 가장 유명한 장면은 보아뱀이 코끼리를 삼킨 장면일 게다. 그리고 그 외에는 어린왕자가 살던 별의 모습이 아닐까. 활화산과 사화산이 있고 도도한 장미꽃이 있고 매일 뽑아야 하는 바오밥나무가 있는 작은 별. 내가 안다고 생각했던 때는 그 장면들이 선명했다. 하지만 모름을 인정하고 난 지금 가장 마음에 남는 장면은 책의 가장 마지막에 나오는 장면이다. 저자가 가장 슬프고도 가장 아름다운 곳이기에 다시 한번 그린다고 표현한 부분이다. 왜냐하면 그곳은 처음 어린왕자를 만난 곳이기도 하고 마지막으로 헤어진 곳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 장면에는 오로지 별 하나만 빛난다. 어린왕자의 모습은 없다. 오로지 모래로 뒤덮인 사막과 별 하나가 떠있는 하늘이 있을 뿐이다. 하지만 내 눈에는 어린왕자가 보인다. 어린왕자가 서 있는 모습이 느껴진다고 해야 더 맞는 표현일지도 모른다. 쓸쓸하지만 따뜻하고 슬프지만 기다림이 있어서 희망이 느껴지는 곳이다. 그 장면을 그림으로 담았다. 


대부분 내 그림에는 이유가 없다. 왜 그리고 싶어졌는지 사실 나도 모른다. 팔기 위한 그림도 아니고 자랑하기 위한 그림도 아니다. 능숙하지도 않다. 그럼에도 그리고 싶어졌고 그림으로 그렸다. 역시나 머릿속 아름다운 장면은 나오지 않았다. 책 속에는 없었지만 작은 나뭇잎도 붙여주었다. 이 책을 도서관에서 빌려 집에 오던 길에 만난 나뭇잎이다. 


# 소중한 것을 지키다


나는 낙엽 줍는 걸 좋아한다. 생각해보니 중학교 때 일기장에도 나뭇잎이 들어 있다. 바닷가에 가면 조개를 주워오고 길을 걷다 예쁜 잎을 발견하면 나도 모르게 줍는다. 내 눈에는 사랑스럽게 보인다. 올 가올을 담은 나뭇잎이다. 바닥에 있을 때는 나에게는 무의미한 존재였지만 이제 하나밖에 없는 나뭇잎이 되었다. 이 나뭇잎을 보며 어린왕자를 읽던 그 순간 느꼈던 여러 감정들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어린왕자가 여우에게 배운 길들인다는 것의 의미와,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리고 어린왕자와의 이별을 통해 이별의 끝이 상실이 아님을 알게 된 것들. 그리고 이 모든 생각들을 나는 이 그림과 이 나뭇잎을 통해 떠올리게 될 것이다. 언어로 담기에는 언어가 너무 부족하다. 내 언어가 가난하다. 그래서 그림이 그리고 싶어졌는지도 모른다. 


# 참는 것과는 달라


요즘 이 단어를 자주 되새긴다. 어린왕자를 읽으면서, 그리고 먼저 결혼한 친구의 조언을 통해서도, 나는 소중한 것을 지키는 방법을 몰랐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친구가 해 준 이 말이 계속해서 머릿속을 맴돈다. 참는 것은 아니라며 그저 나에게는 내 남편과 아이가 소중하기에 남편과 아이가 건강하고 아무 일이 없다면 난 그걸로 만족한다던 그녀의 그 말. 그 말을 계속 되내이다보니 내가 얼마나 그동안 삶에 지나치게 힘이 들어갔던 것인지 알게 된다. 부끄럽다. 얼마나 내가 보지 못했던 것인지 희미하게나마 알게 된다. 보이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말로 하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 감정이라고 생각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 떠나보내기 위해 기록한다


안방 침대 위에는 알랭드 보통의 <영혼의 미술관>이 덩그러니 올려져 있고, 내 책상 위에는 조현용 교수의 <한국어, 문화를 말하다>와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의 <인생수업>이 어지럽게 올려져 있고 부엌 식탁 의자 하나에는 리처드 바크의 <갈매기의 꿈>이 있다. 그리고 남편 책상 위에는 저우칭위안의 <중국 면식 바이블>이 올려져 있다. 읽고 싶은 책, 내용을 다시 보고 싶은 책, 제각기 다른 이유로 이곳저곳에 널브러져 있다. 


남편은 책을 거의 읽지 않는 사람이다. 처음 연애할 때 의미를 부여하며 선물한 책조차 잃어버릴 정도로. 그런 그가 읽고 싶은 책이 생겼다며 책을 구입해 달라고 하기도 하고 출근할 때마다 매일 책을 들고 다니기도 한다. 그의 입에서 읽고 싶은 책이 생겼다는 말을 들었을 때, 우리가 부부가 되어 가는 것일까 라는 생각을 했다. 내 안에 그의 흔적이 남고 그 안에 내 흔적이 새겨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조현용 교수의 <한국어, 문화를 말하다>에 문자의 필요성에 대한 내용이 나온다. 여러가지 의견이 있지만 문자가 생겨서 사람들의 기억력이 나빠졌다고 한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던 내용들이 문자가 생기면서 더 이상 기억하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생각해보면 내가 처음 무언가를 적기 시작한 이유는 잊기 위해서였다. 내가 나로 있을 수 있는 유일한 곳이 일기장이었다. 밝고 사교적이며 잘 웃는 모습으로 보는 사람들 앞에서 어둡고 축축하고 신경질적이며 예민한 모습을 보여줄 수 없었다. 버리고 싶은 감정들을 쓰다보니 글이 삶의 일부가 되었다. 


지금은 기억하기 위해 쓰는 것들도 많다. 소중한 사람에게 일일이 전하지 못하는 감정을, 언젠가 내가 그 소중했던 감정을 잊었을 때 나에게 다시 돌려주고 상기시키기 위해 기록한다. 그리고 만약 할 수 있다면 미처 말로 전하지 못한 내 마음들을 소중한 사람들에게 뒤늦게나마 돌려주고 싶어서 기록한다. 내 마음 조각들을 선물로 주고 싶다는 꿈을 여전히 나는 버리지 못했고 포기하지 못했다. 이루어지지 못할지라도 말이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오늘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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