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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 Oct 28. 2020

소설 읽기

비프케 로렌츠의 <타인은 지옥이다>

내 삶에 변화를 주고 싶다. 내가 아는 나에서 나도 몰랐던 나를 찾아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 시도 중 하나로 그동안 읽지 않았던 소설을 읽어보기로 했다. 소설은 내 감정을 너무 흔든다. 지나친 감정이입에 적어도 하루 이상 혹은 몇 달 후에도 나도 모르게 떠올리곤 한다. 대부분의 소설에는 완벽한 행복도 없고 완벽한 기쁨도 없다. 슬픔과 절망과 좌절과 상실들이 들어 있다. 책을 덮어도 해결책도 보이지 않고 그 무거운 감정들만이 남는다. 물을 잔뜩 흡수한 스펀지가 내 몸에 더덕더덕 붙어 있는 느낌이 나는 버거웠다. 


# 소설을 읽고 싶었다


이 책을 선택한 이유는 두 가지다. 이 책의 역자 서유리 번역가의 번역이 좋았다. 작가가 아니라 번역자다. 그녀가 번역한 책을 읽고 싶었다. 언제 처음 그녀의 번역서를 읽었는지 어떤 책이었는지도 이제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그녀의 이름만이 내 책상 앞에 붙어 있었다. 그리고 마치 마쳐야 하는 방학숙제처럼 읽어야만 한다는 사실만이 남아 이 책을 선택했다.

두 번째 이유는 제목이다. 원제는 '모든 걸 감춰야 해'라는 제목이지만 번역된 제목은 '타인은 지옥이다'다. 원제는 소설의 줄거리를 생각할 때 적당한 단어다. 하지만 맛은 없다. 원문인 독일어를 모르기에 독일어로는 어떤 느낌인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한국어로는 매력있는 제목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타인은 지옥이다라는 말이 유행처럼 쓰이고 있어서(내 기준에) 원제보다 매력적인 건 사실이지만 솔직히 이 제목이 멋지다라는 생각도 들지는 않는다. 다만 원제보다는 훨씬 났다는 생각을 해 본다. 왜냐하면 이 제목에 나도 모르게 이 책을 들고 말았으니 적어도 나란 사람에게는 충분히 책장을 펼치게 만든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 소설을 읽는 이유는 무엇일까


작자 설명에 보면 "타인에게 살의를 느끼는 심각한 강박증을 앓았던 본인의 경험을 살려 쓴 이 작품"이라고 되어 있다. 책의 뒷 쪽에 있는 옮긴이의 말에는 소설의 줄거리가 군더더기 없이 잘 요약되어 있다. 역시 작자 이외에 번역자만큼 어떤 책을 쉼표까지 꼼꼼하게 읽은 사람이 또 있을까 싶다. 


소설에 대한 서평은 사실 어렵다. 굳이 쓰지 않아도 된다. 써야 하는 이유는 하나도 없다. 쓰지 않아도 되는 이유들만이 있다. 그럼에도 나는 쓰고 싶다. 읽었음에 대한 기록의 의미도 있고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글로 적고 싶다는 마음이 크다. 적다보면 이것이 정말 나의 생각인가 싶을 정도로 나도 모르는 글자가 적혀 있을 때가 있다. 그것을 알고 싶어서 쓰는 지도 모른다.


어쩌면 강박증도 이런 느낌일까. 행동하지 않는 생각들. 생각 속에서는 무엇을 하든 자유롭지 않은가. 나도 그러한가 생각해본다. 아니다. 나는 생각조차 규제한다. 절대로 안되는 것들이 내 생각에는 있다. 나 자신을 나 스스로 혐오하지 않도록 생각에조차 기준을 들이댄다.


소설만 읽는다는 친구는 말한다. 내가 살아보지 못한 삶을 엿보는 게 좋아서 소설을 읽는다고. 당연한 말인데 나에게는 낯선 표현이었다. 그래서 소설을 읽고 싶어진 것인지도 모른다. 그녀의 그 말의 의미를 알고 싶어서. 


# 소설은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


잘 모르겠다. 치밀하고 흥미진진한 미스터리로 다음이 궁금해서 하루만에 다 읽어버렸다. 그동안 읽어왔던 인문학 도서처럼 중간 중간 독서를 멈추면서 생각하고 마음에 드는 구절을 모으지도 않았다. 문장 조각을 모아서 정리한들 그것이 이 소설을 대표하는 문장도 아닐 것이다. 소설을 읽는 방법을 나는 아직 모른다. 그저 우리 인생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어디로 향하는지도 모른 채 한 장 한 장 일정한 속도로 넘겼다. 그리고 마지막 페이지에 이르러서 모든 일들이 하나로 이어졌다. 그리고 역시나 소설 속 주인공의 상황에 감정이입이 되어 무거워진 마음이 되고 만다.


책을 읽는 이유는 똑똑해지고 싶어서는 아니다. 내가 읽는 이유는 친구를 만나는 것과 같은 느낌이다.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을 만나 공감하고 위로받고 편안해지고 싶은 마음, 어떤 의미에서 치유의 공간이다. 글을 쓰는 이유도 이와 같다. 이러한 관점 그대로 소설이라는 장르는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소설에 대해서는 다른 자세가 필요할 게다. 우리 인생처럼 사소한 하나하나에 지나치게 의미를 부여하여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말고 인내심을 갖고 모든 것은 잘 되리라, 모든 것은 다 지나가리라는 믿음으로 인생의 물결에 나를 온전히 맡기고 마지막까지 끊임없이 나아가는 것. 내 뜻대로 할 수 있는 것보다는 내 뜻대로 할 수 없는 것들이 더 많다는 걸 나이를 먹을 수록 알게 된다. 순응해야 할 것과 극복해야 할 것을 구별하는 지혜가 필요함을 자주 깨닫는다. 소설은 어쩌면 그런 인생의 모습과 닮아있는 게 아닐까 싶다. 나에게 부족한 삶의 자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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