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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 Oct 26. 2020

반성일기2

정혜윤의 <사생활의 천재들>(봄아필, 2013)

오늘도 나는 반성일기를 쓴다.


나는 그와 자주 다툰다. 다툰다고 하지만 정확하게는 언제나 내가 화를 낸다. 화를 내고 나면 언제나 가슴 언저리가 아프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소리를 지르고 화를 내는 내 자신이 너무나 싫어진다. 그럼에도 나는 그렇게 한다.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대화법이라 생각했다. 내 기억에 남은 엄마와 아빠의 모습이 이러했다. 소리치며 다그치는 엄마와 입을 다물고 피하는 아빠. 엄마의 목소리는 점점 더 높아지고 아빠는 결국 자리를 피해 버린다. 나는 아빠처럼 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아빠처럼 피하지 않고 엄마의 물음에 답하자고. 그렇게 대화로 풀어가자고. 나는 아빠처럼 되고 싶지 않았던 것뿐인데 나는 엄마가 되어 있었다. 내가 그렇게 되고 싶지 않았던 모습이 내 안에 들어 있었다.


사실 나도 알고는 있었다. 내가 생각한 대화법이 옳지 않다는 것을. 그럼에도 다른 방법을 나는 알지 못했다. 책을 찾아 읽고 책 속에서 알려주는 대로 하고 싶지만 현실과 책은 달랐다. 


책에서 답을 찾는 나지만, 이번만은 다르다 생각했다. 내가 틀렸다는 것을 알면서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고 이대로는 소중한 사람을 잃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나보다 먼저 아내가 되고 엄마가 된 친구에게 조언을 구했다. 그녀는 젊은 나이에 부모님을 모두 암으로 잃었고 그녀 자신마저 희귀병을 안고 있다. 치료는 불가능한 병이란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기 전에는 오랫동안 아파하셨다. 언제 죽음이 찾아올지 모르는 불안함 속에서 아파하시는 부모님을 오랫동안 지켜본 그녀. 그녀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난 아이랑 신랑한테 어떤 것이든 나쁜 일만 안 생기면 그걸로 만족하는 것 같아'

'난 신랑과 싸우지 않아. 싸우면서 내 감정을 소비하고 싶지 않거든.

 싸울 일도 당연히 있지. 근데 내가 아예 화를 내지 않으니까 신랑도 화를 안 내.

 참는 거랑은 다른데, 싸워서 내가 뭘 얻지? 전쟁에서 이겨서 식량을 뺏어야 하는 상황도 아닌데.

 집에서는 평화롭게 있고 싶어. 우린 회사에서 이미 전쟁이잖아.'


그리고 이런 말도 했다.


'난 내 남편과 내 아이가 내 인생에서 중요한 부분이라서. 내 가족이 인생의 일부잖아.'


그녀의 말을 들으며 내 자신이 참 많이 부끄러웠다. 그래서 그녀의 말을 몇 번이고 되새겼다. 그녀는 알고 있었다. 자신의 삶에서 소중한 것이 무엇이고 그 소중한 것을 어떻게 지켜야 하는지. 일찍 돌아가신 부모님에 대한 죄책감에 그저 단순하게 살고 싶어서 그런 거라고, 그저 가족만 생각하는 이기심이라고 덧붙였지만 그건 그녀의 겸손함이라 생각한다. 친구들보다 가족을 먼저 생각하고 있다는 미안함일 뿐이다.


그녀의 말들을 몇 번이나 되새긴다. 나는 참 오만했음을 깨닫는다. 머리로는 소중한 사람들을 소중히 여기는 방법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착각이었다. 나는 참 오만했다. 나는 진정으로 소중한 것을 지키고 아끼는 법을 몰랐다. 이미 충분히 나에게 맞춰주려 노력하고 있고 충분히 사랑 받고 있음에도 언제나 나는 부족함을 느끼고 욕심을 부리며 내 기준을 들이대며 사소한 것에조차 화를 내고 내 얘기를 들어달라고 아이처럼 졸라댔다. 


그녀가 말한 것들은 포기도 아니고 희생도 아니고 양보도 아니다. 그녀가 말해준 지혜를 설명할 적합한 언어는 찾지 못했다. 하지만 그녀의 말이 계속해서 내 가슴에서 나를 다그친다. 나는 무엇을 얻고 싶었던 것일까. 무엇을 위해 나는 그렇게 사소한 것에조차 나만의 기준을 들이댔던 것일까. 부끄러움만이 남는다. 그동안의 나를 참아주고 이해해준 남편에게 미안함과 고마움이 든다.  


정혜윤 작가는 자신의 책 <사생활의 천재들>(봄아필, 2013)에서 이렇게 말한다.


"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을 알게 되면 두려움이 사라집니다그것만 있으면 다른 건 다 필요 없는내 삶에서 가장 중요하게 붙들고 싶은 것 그것 하나가 있다면 두려움은 사라집니다아주 소중한 거 하나만 남기고 다 비울 수가 있게 됩니다.(p286)"


그녀는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알고 그것을 아끼고 사랑하는 법을 알게 되었기에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희귀병 앞에서도 이렇게 담담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무언가를 잃어야만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는 어리석음을 저지르지 않고 싶다. 


참 많이 부끄럽다. 내 안에 새겨진 부모가 남긴 철로 새긴 글씨 탓이라고 변명할 수도 없다. 책을 왜 많이 읽는가 라고 누군가 묻는다면 나를 키우기 위해서, 지혜로워지고 싶어서, 라고 답하곤 했다. 하지만 나는 책을 읽기만 했던 것일 뿐 그 책을 내 삶으로 만들어 내지 못했다. 


오늘의 이 글은 같은 실수를 앞으로 반복하고 싶지 않아서 앞으로의 나에게 쓰는 편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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