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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 Nov 03. 2020

관계 - 점, 선 그리고 면

엘리자베스 퀴블러로스 외의 <인생수업>

# 점이 선이 되고 면이 되는 사람


지금 내 곁에 있는 그를 십 년만에 다시 만났을 때 그는 말했다. 가끔 오래 전 사람들이 그리워지고 연락하고 싶어진다고. 그렇게 십년 전 사람인 나에게 연락을 했고 몇 번의 만남을 거듭하며 연인이 되었고 부부가 되었다.


가끔 나는 그의 말이 풍경처럼 떠오른다. 그 말을 듣던 그때는 이해하지 못한 그 말의 색깔을 어느 순간 내 삶 속에서 어렴풋이 이해하게 될 때가 있다. 아니다. 어쩌면 그 말이 내 안에 들어와 마치 처음부터 내 안에 있었던 것처럼 새겨져 버린 것인지도 모른다. 어떤 마음에서 그는 오래 전 사람들의 연락처를 들여다보게 되었을까. 


인간관계는 점과 선으로 이어졌다고 생각하곤 한다. 지금 이 순간은 점이다. 이 순간의 점들이 이어져 선이 된다. 하지만 점으로 끝나는 사람도 있고 가로의 시간과 세로의 깊이가 더해져 면이 되는 사람도 있다. 그는 나에게 한때 수많은 점 중에 하나였다. 그러다 지금은 굵은 선이 되었고 면이 되어 가고 있다. 삶의 점이었던 사람들과 선이었던 사람들을 떠올려본다. 내 어린시절을 지켜주던, 면이었으나 이제는 지워져버린 집단에 대해서도 생각한다. 삶은 한 편의 소설과도 같다. 이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읽기 전까지는 마지막까지 등장할 주요 인물도, 관계도도 완성할 수 없다. 언제나 현재진행중이다. 


# 배움을 얻는다는 것은 자신의 인생을 사는 것이다


내가 가진 몇 개의 단점 중 하나는 노는 법을 모른다는 점이다. 대학교 때 한 친구는 '너는 무슨 재미로 사니?'라고 말했다. <리스본행 야간열차>의 백발의 주인공 그레고리우스처럼 나는 늘 같은 것을 한다. 삶의 반경은 짧다. 철도처럼 정해진 곳을 밟는다. 나에게 일은 취미이자 내 삶의 전부이며 존재의 이유다. 문제는 그 일이 나를 지켜주지 못한다고 느낄 때, 내 존재의 의미마저 흔들리고 만다는 점이다. 타인에게는 쉽게 내뱉었던 위로의 말들을 나 자신에게는 해 주지 못한다. 너는 존재 그 자체로 충분히 가치가 있어,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네가 있다는 그 사실만으로 힘이 되는 사람들을 생각하렴, 너는 이미 충분히 사랑받을 만한 사람이야. 이 말들은 나에게서 나갈 수는 있지만 나에게는 돌아오지 못한다.


엘리자베스 퀴블러로스는 자신의 책 <인생수업>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삶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이 배움들은 무엇일까요? 수십 년 동안, 죽음을 앞둔 이들과 아직 살아 있는 이들을 치료하면서 우리는 인간에게 필요한 배움들이 결국은 누구에게나 같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것들은 두려움, 자기 비난, 화, 용서에 대한 배움입니다. 또한 삶을 받아들이는 것에 대한 배움, 사랑과 관계에 대한 배움입니다. 놀이와 행복에 대한 배움들도 있습니다. 

배움을 얻는다는 것은 다른 사람이 아닌 자기 자신의 인생을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 세상을 더 깊이 이해하고 자기 자신과 더 평화롭게 지내는 것을 의미합니다. (...) 삶의 배움을 얻는다는 것은 삶을 완벽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삶을 받아들일 줄 알게 되는 것입니다.(p19)"


엘리자베스 퀴블러로스의 이 문장을 몇 번이고 읽고 또 읽는다. 한 구절도 놓치고 싶지 않아 읽고 또 읽는다. 누군가는 외로울 때 사람들을 찾는다. 나는 외로울 때 글자를 만진다. 글자에 숨어 있는 사람을 만지고 싶어서일 수도 있고 단지 겁이 많은 것일 수도 있고 또 어쩌면 외로움이라는 감정을 다룰 줄 몰라서 그런 걸지도 모른다. 타인의 글에서 내 마음을 읽는 것, 그것이 내가 나를 보듬는 방법인지도 모른다.


나에게는 배움이 필요하다. 재미있게 놀 줄 모르고 논다는 것이 결국은 모두 책상 앞에서 이루어지는 것들 뿐인 나에게 더욱 간절한 배움이 있다. 내 인생을 사는 법. 그것이다. 내가 누구인지 알고 싶다. 명예나 부를 원해서가 아니다. 나를 알아야 내 안의 혼돈과 불안과 자리를 찾지 못한 감정들을 품을 수 있게 되어 비로소 나로 살 수 있을 것 같아서다. 그래야 나는 나로 충분히 살만한 가치가 있다고 나에게 말해 줄 수 있을 것 같아서다. 


# 기억하다


알랭 드 보통은 자신의 책 <영혼의 미술관>에서, 예술의 기능 중 하나는 '기억'이라고 말하며, 망각의 결과에 대응하기 위한 방편으로 글쓰기가 있고 그 다음으로 중요한 것이 미술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점과 선, 면으로 이루어진 그림을 그렸다. 이 그림을 그리게 한 그는 정작 이 말과 이 그림이 자신에게서 시작된지 모른다. 어릴 적 나의 이상형은 나와 비슷한 취미와 비슷한 성향의 사람이었다. 하지만 지금 내 옆에 있는 그는 이상형의 정 반대쪽에 있다. 그는 내 글을 읽지 않고 내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보지도 않는다. 퇴근 후 집에 돌아왔을 때, 없던 그림이 한 장 더 생기면 '한 장 더 생겼군' 정도의 눈빛으로 잠시 눈길을 줄 뿐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가 나의 이상형이다. 내 그림도 글도 들여다보지 않는 그가 나의 사람이다. 그는 발을 딛지 않는 이곳은 철저히 나만의 공간이 된다. 나는 이 안에 나의 보물들을 숨김없이 마음껏 집어 넣어둔다. 


나는 이 그림을 보며 그와 처음 다시 만났던 그 날을 떠올린다. 그날 함께 갔던 장소와 음식과, 함께 들었던 음악, 그리고 오래 전 사람들에게 연락하고 싶어진다는 말을 꺼냈던 순간의 그 눈빛. 정작 그 말을 한 그는 이 그림의 의미도 모를 것이며 그 날의 말도 잊었을지 모른다. 그는 모르는 나만의 비밀을 이 그림이 기억하고 있다. 


그는 내 삶에서 점에서 선이 되고 면이 되어가고 있다. 시간을 만난 선은 점차 길어지고 있다. 그와 나의 '함께'라는 경험으로 이 선은 점차 두꺼워지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알 수 없다. 이 선이 어디까지 갈 것이며 얼마나 두꺼워질 것이며 언제 면이 될 것인지는. 그 유한성으로 인해 우리의 관계는 더 소중해진다. 허무한 것이 아니라 유한성으로 인해 오늘의 점 하나가 깊이를 가지게 된다. 


# '하고 싶다'가 아닌 '해야 한다'


어린왕자가 세상에 하나뿐인 장미꽃을 위해 매일 물을 주고 이야기를 들어주고 지구에 와서도 그 장미를 떠올렸던 것처럼 나는 나에게 소중한 것들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해야 한다'. 언제까지나 건강하게 살아계시면서 나의 투정을 받아줄 거라 믿지 말고 아버지에 대한 늦은 사춘기를 끝'내야 하며' 친구에 대해서도 나만의 엄격한 기준을 들이대는 것도 그만'해야 한다'. 내가 둥굴어질 때 나의 관계들이 둥굴어짐을 느낀다. 결국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은 나뿐이다. 그리고 나는 나 자신에게도 둥굴어지려 한다. 나의 삶은 나를 좋은 곳으로 이끌어줄 것임을 믿고 다시 돌아오지 않을 오늘 이 소중한 우리의 날을 감사히 여'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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