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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 Mar 18. 2021

저우신위에의 <심리학이 돈을 말하다>

  약 십 년 전 한 예능에서 A라는 사람이 B에게 이렇게 물었다. ‘돈 많은 사람과 정 많은 사람 중 어떤 사람이 좋은가요’라고. 물론 상대를 곤란하게 하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하지만 B는 ‘돈 많은 사람이 정도 많더라구요’라며 웃음을 자아냈다. 처음 그 장면을 보았을 때는 ‘잘 피해갔다, 재밌다’ 정도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오늘날의 사회에서 저 말은 더이상 우스갯소리가 아닌 것 같아 씁쓸해진다. 물론 돈 많은 사람이 모두 잘 베푼다는 의미는 아니다. 하지만 돈이 있어야, 가능한 많아야, 정도 많을 수 있는 사회가 되어 버렸다.    

  

돈에 대해 왜 배워야 하는가   

  

  어릴 때 나는 아빠의 구두를 닦거나 흰머리를 뽑고 100원씩 받곤 했다. 그런데 어느 날 대여섯 살밖에 안 된 내가, 그 동전을 들고 은행에 가서 통장을 만들어 왔다고 한다. 도장도 없거니와 보호자도 없는 꼬마에게 통장을 개설해 줄 수는 없었을 텐데 꼬마의 맹랑한 당당함을 거절할 수 없었던 것인지 은행원은 어린 나를 내치지 않았고 실제로는 사용할 수 없는 통장이지만 하나를 쥐여 주었던 모양이다. 솔직히 나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가족들이 가끔 그때의 내 이야기를 하면서 웃음꽃을 피우기 때문에 가족들을 통해 나의 과거를 기억할 뿐이다.     


  이것이 나와 돈과의 첫 인연이다. 돈이란 무엇인지, 어떻게 벌어야 하고 어떻게 써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배운 적은 없다. 막연하게 어릴 때부터 삶의 일부가 되어 그럭저럭 내 나름의 신념을 찾고 수정하기를 반복하며 살아가고 있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도 그럴지 모른다. 그럼에도 딱히 살아가는 데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그럼 왜, 돈에 관한 책을 읽고 배워야 하는 것일까. 이 의문에 대해 저자는 돈을 제대로 쓰는 법을 알아야 우리는 행복을 극대화할 수 있다(p16)”고 답한다. 무조건 돈을 많이 벌면 행복도 극대화되는 것이 아닐까. 이런 의문에 대해서 저자는 니체의 말을 인용하며, 정당한 소유는 인간을 자유롭게 하지만 지나친 소유는 소유 자체가 주인이 되어 소유자를 노예로 만든다고 말한다. 즉 돈을 대하는 자세 그것이 곧 삶에 대한 자세가 되기 때문에 우리는 돈에 관해 진지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저자가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결론은 페르난도 사바테르의 <청소년을 위한 이야기 윤리학>(웅진지식하우스, 2005) 속 다음 문장이 아닐까.     


“윤리학의 목표는 (중략)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멋진 삶이 어디에 있는지를 찾아내는 거란다. 우리는 멋진 삶이 물질에 의존하고 있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님을 알고 있다. 사물은 사물로서 취급하고 인간은 인간으로서 대우해야 한다.”     


  ‘윤리학’이라는 단어 대신에 ‘돈’을 넣어 읽어도 말이 통한다. 윤리학이든 경제(돈) 이야기든 결국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삶의 의미, 가치는 무엇인지’라는 ‘삶을 살아가는 방법’이라는 관점에서는 둘 다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다. 삶의 주인이 되어, 한 번뿐인 이 인생을 잘 살아보고 싶다는 것, 그것이 우리가 돈에 관해 ‘제대로’ 배워야 하는 이유이다.      


당신의 양심은 얼마인가요     


  만약 내가 이 책을 읽은 것이 2021년의 한국이 아니었다면 다음 문장이 이렇게 가슴에 시리도록 남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사람은 신념에 따라 행동한다그리고 그 신념은 곧 자기 자신이 되고 어떤 마음으로 살아갈지를 결정한다돈은 이러한 자기중심적 경향을 더 강력하게 만든다원래 성격이 좋지 않은 사람이었다면 돈은 그 사람의 성격을 더 망친다자기애가 넘치는 사람이었다면 돈은 그 사람의 자기애를 훨씬 더 넘치게 한다하지만 심성이 바르고 착한 사람이었다면 돈은 그 사람을 더 착한 사람으로 만들기도 한다.”(p51)   

  

  어느 사회든 어느 시대든 부조리는 있다. 그럼에도 유난히 크게 다가오는 요즘이다. 온갖 부조리가 난무하는 이 사회 속에서 정직, 성실, 공정 등이 지닌 가치의 무게는 과연 얼마나 될까. 그동안 내 삶의 기준점이 되었던 신념이 폭풍 속에 서 있다. 누군가를 속이고 혜택을 보면서도 오히려 속는 자를 비웃는 것이 당연한 듯 행동하는 집단들이 판을 치는 이 시대를 견딜 수 있는 새로운 가치관을 아직 찾지 못했다.   

  

  외눈박이 세상에서 눈이 두 개인 사람은 돌연변이가 된다. 모두가 불법을 저지르는 사람들 속에 있다면 불법을 저지르지 않는 자신이 어리석게 여겨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정말로 궁금하다. 공직에 있으면서도 공직자의 윤리를 지키지 않는 삶에 대해, 단 한 번이라도 죄책감을 느끼거나 양심의 가책을 느낀 적이 없을까.   


죄책감은 한번 잃고 나면 다시 되돌리기가 무척 어렵다는 것이다사람들은 도덕성의 하한선을 뛰어넘으면 그 뒤로는 예전 상태로 돌아가기 힘들다.”(p151)     


  돈은 긍정적인 것도 부정적인 것도 아니다. 오로지 그 돈을 소유한 사람에 따라 각기 다른 성질로 변해간다. 돈을 대하는 자세는 곧 자신이 인생을 바라보는 모습을 대변한다. 2021년 한국 사회의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의 양심은 얼마냐고.    

 

우리가 가야 할 곳은 어디인가   

  

  정치면, 사회면 뉴스를 읽을 때마다 마음이 무거워진다. 더이상 아름다운 세상을, 희망을 꿈꿀 수 없게 되었다. 미래를 생각하면 막막해진다.     

 

‘희망 없는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더 나은 삶을 위해 가야 할 곳은 어디인가?’     


  조지 밀러 감독의 <매드맥스:분노의 도로> 영화 속 엔딩 자막이다. 불법과 핍박과 부당함이 전부인 희망 없는 땅을 버리고, 녹색의 땅을 찾아 떠나는 주인공들. 목숨을 건 위험한 도박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들이 꿈꾸던 녹색의 땅은 없었다. 우리는 어디로 향해야 하는가. 마지막 희망의 끈마저 끊어진 그들이 내린 결론은 이것이다. 자신들이 목숨 걸고 도망쳐 나온 그곳으로 되돌아가는 것. 희망 없는 그 땅에 자신들의 힘으로 희망의 씨앗을 심는 것, 그것이 그들이 내린 선택이었다. 이렇게 영화는 끝나고 감독은 엔딩 자막을 통해 우리에게도 질문을 던진다. 희망 없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어디를 향해야 하는가, 라고.     


  희망 없음에 막막해지는 이 사회를 바라보며 멈추어 서 있다. 어디로 발걸음을 내딛어야 할지 모르겠다. 어떠한 신념으로 살아가야 할지 모르겠다. 그동안의 내 옳음이 낡고 고루해 보인다. 내가 희망의 씨앗을 심어야 하는 곳은 어디일까.      


  적게 일하고 많은 돈을 벌수록 능력 있어 보이고 똑똑해 보인다. 돈이 많으면 정도 많아 보인다. 이 사회 기준에서 보면 나는 정도 없고 능력도 없는 사람이다. 영리하지 못한 나는 어디로 향해야 하는 것일까. 어디에 희망의 씨앗을 심어야 하는 것일까. 이 질문들 끝자락에서 내가 내린 결론은 ‘내가 생각하는 나의 옳음을 지킬 수밖에 없다’이다. 내 삶의 주인이 되기 위해서는 나만의 기준으로 행복을 지키는 것이 최선이다. 그래서 나는 부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이른바 물질적 자유로움은 배를 채울 충분한 빵과 따뜻함을 얻을 난로그리고 낭만적이지만 쓸데없는’ 시나 음악을 배울 수 있는 환경을 말한다또한 물질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잘못된 일에 틀렸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돈이 충분한 안정감과 자유를 준다고 생각할 때 사람들은 자신이 아주 강하다고 느끼며하고 싶은 말을 마음대로 하게 된다더는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세속적인 것을 추구하며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이다인생의 주인이 된 기분을 한껏 누리게 해 주는 것그것이 바로 물질적 자유로움이다.”(p49) 

    

  내가 꿈꾸는 부자의 모습이다. 돈 앞에서 비굴해지지 않고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 타인의 시선 때문에 세속적인 것에 매달리지 않을 수 있는 용기, 그런 용기를 가진 정신적 부자가 되고 싶다. 그러한 부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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