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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 Jun 27. 2021

이평의 <관계를 정리하는 중입니다>

‘솔직한 삶’은 편할까. 솔직하게 살고자 노력하며 나름 그렇게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나의 관점에서 말하자면, 솔직한 삶은 편하지만 편하지 않기도 하다. 말장난이 아니다. 말 그대로다. 나 자신에게는 물론 타인에 대해서도 솔직하게 대하며 살아왔다. 처음부터 솔직하게 대할 수 없는 관계들에 대해서는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고 나의 에너지를 쏟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래서 삶이 편했는가 하면 그건 또 아니다. 좋고 싫음이 명확했던 만큼 유하게 주변 사람들을 품어주지 못했기 때문에 고집스러운 사람처럼 보였을 수도 있고 인간관계의 폭이 좁은 것도 사실이다. 때론 그게 편하지만 때론 씁쓸하고 허전하기도 하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이것이 나란 사람이니까. 나란 사람을 알고, 나란 사람과 잘 지내기 위해, 나란 사람을 나라도 이해해주기 위해, 이해해주고 싶어서 이평 작가의 이 책을 손에 들었다.      


진정으로 스스로를 사랑하는 당신이 되었으면 한다     


이 책을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다음 문장이 아닐까.     


진정으로 스스로를 사랑하는 당신이 되었으면 한다불완전하지만 그래서 살아있는 나 자신을.”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있느냐고 물을지도 모르지만, 생각보다 자신을 아끼지 못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그리고 그와 마찬가지로 자신‘만’을 아끼는 사람도 의외로 많다. 지나칠 만큼 자신‘밖’에 모르는 사람에게는 위의 문장을 건네고 싶지 않다. 그건 아마 저자도 의도한 바는 아닐 것이다. 


지나치게 타인을 배려하고 타인의 시선에 신경을 쓰다 보니, 자신의 생각과 마음이 항상 뒷전이 되는 사람, 그래서 혼자가 되었을 때 그런 자신을 책망하고 마는 사람. 그런 사람에게 건네는 말이 아닐까 싶다.     


타인을 사랑하게 되기 전에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있어야 한다내 어두운 구석 모퉁이 외로움까지 모두 아우르면서 말이다. (...) 세상으로 외출하기 전에 선크림을 두텁게 바를 줄 알아야 한다.”     


이 책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문장이다. 선크림을 바르고 외출하듯 마음에 선크림을 바르고 사람들을 만나야 한다는 저자. 당장 눈에 보이는 효과는 솔직히 모르겠지만 외출 전에는 항상 선크림을 꼼꼼히 바르고 있다. 예쁘게 꾸밀 줄도 모르고 딱히 좋아하지도 않는 나지만, 나 자신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는 생각으로 선크림은 잊지 않고 바른다. 따가운 햇살로부터 나를 지켜줄 선크림처럼, 우리 마음에 바를 수 있는 선크림이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나에게 있어 선크림은 무언지 생각해본다. 타인에게 무심하게 칼을 꽂는 사람들로부터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한 방어책, 그 방어책은 무엇일까. 관계에서 문제가 생기면 난 습관처럼 나부터 책망한다. 내 문제점부터 찾는다. 참 오랫동안 그렇게 나는 나를 책망하느라 바빴다. 나는 나를 지켜주지 못했다. 다행히 지금은 다르다. 지금은 나만의 선크림이 있다. 지금은, 나 자신에 대한 비판적 분석 이후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문제를 바라보며 나 이외의 문제, 나로서는 어찌할 수 없었던 외부의 문제를 찾으려 한다. 그리고 내가 해결할 수 있는, 해결해야 하는 문제와 내가 해결할 수 없는 외부의 문제를 구분한다. 만약 내 문제라면 반성하고 고치려고 한다. 반대로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외부의 문제에 대해서는 나의 잘못이 아니라고 선을 그으며 구분하고자 한다. 그렇게 내가 바꿀 수 있는 것과 바꿀 수 없는 것들을 분별하는 시간, 그것이 내가 나에게 바르는 선크림이 아닐까 싶다. 

    

사랑할수록 외로워진다면     


타인을 사랑하면 할수록 점점 외로워져 갔다타인에게 사랑받는 것처럼 큰 축복은 없지만 대개 그렇지 못한 경우가 허다하니까사랑받는 것은 무척 아름다운 일이지만사랑을 갈구할 만큼 타인에게 의존적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 문장을 읽으며 마음이 아팠다. 나도 이러한 감정을 느낀 적이 있고 어떤 외로움인지 알기에 마음이 아팠고 이 문장 속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더욱더 외로워질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어 더 안타까웠다.     


타인을 사랑해도 외롭지 않을 수 있을까. 있다. 사랑을 받으려고만 하지 말고 사랑을 주는 기쁨을 알게 된다면 외로워지지 않는다. 대가를 요구하는 사랑은 외로울 수밖에 없다. 타인에게 기대는 사랑은 언제나 부족하다. 구멍 난 항아리와 같다. 사랑은 타인에게서 오는 것이 아니라 사랑은 내 안에서 넘쳐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의 나는 그렇다. 흘러넘쳐 나에게서 타인에게로 들어갈 때, 그때 비로소 사랑을 해도 외롭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문장을 읽으며 한 친구를 떠올렸다. 그녀는 자신의 이상형을 말할 때면 언제나 이 말을 한다. 자신을 완전히, 조건 없이 완벽에 가깝도록 사랑해 '줄' 사람이라고.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 타인에게서 사랑을 갈구한다. 그것도 완전하게, 그리고 자신이 기댈 수 있는 사람이라고. 그런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있다고 한들 그 사랑은 완전할 것인가, 오로지 타인에게서 나오는 사랑으로 나를 채울 수는 있을까, 이런 의문을 지울 수 없다.      


적어도 내가 생각하는 사랑은 그런 모습이 아니다. 먼저 혼자 두 발로 인생 위에 온전히 선 후에야 제대로 된 사랑 또한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언제나 말하지 못한다. 아니 말하지 않는다. 나의 이 생각이 그녀에게는 답이 아닐 수도 있으니까. 각자에게는 자신만의 답이 있다. 그렇게 각자의 답을 따라 살아가기에 서로 다른 삶의 길을 걷게 되는 것일 게다. 닿지 않는 말, 나에게만 정답일 수 있는 말을 굳이 하는 것, 들을 마음이 없는 사람에게 말하는 것, 그게 살아보니 그리 좋은 결과만을 남기지는 않았다. 삶이 알려준 이 생각으로 이제는 굳이 말하지 않으려 한다. 이 또한 내 삶의 선크림일 게다.      


나답게 산다는 건      


삶에 정답은 없지만 오답은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언제나 나는 나의 믿음을 끊임없이 의심한다. 의심하고 검토하고 검토 후에 다시 믿는다. 꼰대가 되지 않기 위해 귀를 열지만 지나치게 귀를 열어서 중심이 흔들리지는 않아야 하니까 열고 닫고 검토하기를 반복한다. 

그러한 과정들을 통해 내가 얻고 싶은 것은 ‘좋은 사람’, ‘멋진 어른’이 아니다. 그냥 나는 나로 살고 싶은 것뿐이다. 나답게 살기 위한 과정일 뿐이다. 나답게 살겠다는 것이 고집이 되고 아집이 되고 고집불통의 외골수가 되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나를 담금질하고 있다. 정답은 없지만 내가 들고 있는 답이 반드시 최선의 답이라는 확신 또한 없으니까.      


관계를 정리한다, 나 자신을 지킨다, 자신을 사랑하자, 이러한 주제의 책이 베스트셀러라는 현실이 참 마음 아프다. 나 또한 이러한 위로가 필요해서 이 책을 펼쳤고 나와 같은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에 위안보다는 씁쓸한 심정이 된다.      


어른이 되니 누구도 칭찬해 주지 않는다. 건강까지 내주면서 노력해도 그 노력을 알아주는 곳이 없어지는 게 어른인 것 같다. 월급이 곧 노력의 결과를 보여주는 한 수단이 되기도 하지만 노력을 왜곡하는 것 또한 월급이다. 어른이 되니 가장 고픈 것은 어쩌면 누군가의 칭찬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럴 때 나를 가장 잘 아는, 나와 가장 오래 지낸 나 자신이 노력한 나를 칭찬해 주어야 하지 않을까. 누구보다 가장 노력했다는 건 나 스스로가 제일 잘 아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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