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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 Jul 17. 2021

그런 날

토요일, 일요일. 드디어 주말이 찾아왔다. 평일에는 시간만 생기면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해야지 하며 그렇게 다짐하건만 막상 주말이 되고 나면 의욕이 생기지 않는다. 당연히 해야만 하는 집안일들부터 해치운다. 사실 자잘한 집안일은 생각하고 해야 할 일은 아니다. 자전거 타기처럼 그냥 몸이 제 마음대로 움직인다.     


무엇보다 여름이면 가장 좋아하는 집안일 중 하나는 손빨래다. 세탁기로 돌릴 수 없는 옷, 염색이 빠지는 옷은 매일 이렇게 손빨래를 한다. 인간 세탁기가 되어 조물조물 거리다가 거품이 사라질 때까지 헹군다. 그리고 잠시 섬유유연제에 담가두었다가 바깥에 있는 건조대에 널어놓는다. 이때 난 일부러 빨래의 물을 꽉 짜지 않는다. 물이 똑, 똑 떨어지는 빨래를 들고 황급히 거실을 가로질러 현관문을 열고 건조대로 향한다. 거실에는 나의 발걸음을 따라 물방울이 똑똑똑 떨어져 있다. 아마 이런 나를 대부분의 사람들은 의아해 할 게다. 굳이 왜 손빨래를? 탈수를 하면 될 것을? 등등. 이유가 있다. 나에게는.     


해야 할 일들 목록은 하나도 지우지 못했는데 도저히 의욕이 생기지 않는 오늘 같은 날. 그런 날이면 더더욱 빨래에게 자주 간다. 하루에도 여러 번 빨래를 만져보며 옷에서 떨어져 나간 섬유유연제의 정도를 손으로 체크하곤 한다. 햇살이 뜨거운 요즘. 뜨겁다 못해 타들어 가는 듯한 따가움도 느껴지는 요즘, 하지만 빨래에게는 이 햇살이 고마운 존재처럼 느껴진다. 뜨거운 햇살에 빨래가 조금씩 말라가는 그 변화가 난 참 좋다. 바람에 실컷 흔들리는 옷자락을 바라보는 것도 좋다. 잠시 멈춰서서 움직이는 옷자락을 멍하니 바라본다. 처음 널어놓았을 때보다 더 크게 흔들린다는 건 그만큼 물기가 많이 빠졌다는 뜻이다. 이런 순간 살아 있음이 느껴진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조금씩 조금씩 가벼워지며 점점 더 크게 흔들리는 옷자락을 바라보는 것. 그건 내 주말의 취미 중 하나다.     


가만히 빨래를 바라보던 나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건조대 앞에 있는 직사각형 모양의 작은 화분으로 옮겨진다. 보통 그 화분에 파뿌리를 심어 두곤 하는데, 한동안 잘 자라다가 며칠 비가 온 후로 비실비실하더니 전부 말라버려 다 뽑아 버렸다. 그래서 분명 텅 비어 있던 화분이다. 그런데 오늘 문득 바라본 화분에 두 개의 싹이 자라고 있다! 이건 잡초는 아니다. 정확하게 한가운데에 그것도 똑같은 모양과 크기로 두 개가 동시에 자라고 있으니까. 곰곰이 생각해 본다. 내가 여기다 무얼 심었더라. 확실하진 않지만, 레몬을 먹고 그 씨앗을 심었던 기억은 있다. 하지만 그건 파뿌리를 심기 이전이었다. 파뿌리가 자라고 말라서 죽어가던 그 시간 동안, 그 안에서 씨앗이 새싹이 되어 가고 있었다는 게 말이 될까? 설마 정말로 이게 레몬일까? 새싹이 부끄러워할 정도로 계속해서 씨앗을 노려보듯 바라본다.      


마치 <어린왕자>가 바오밥나무 씨앗과 아닌 씨앗을 구분하기 위해 매일 별을 청소하며 자라난 씨앗을 가만히 들여다보듯 나 또한 가만히 들여다본다. 그러나 아직은 알 수 없다. 이 씨앗이 자라 어른의 얼굴을 하고 있어야 비로소 알 수 있을 게다. 그래, 이건 기다릴 수밖에 없는 일이다.      


만약 레몬의 씨앗이 아니라 잡초일지라도 상관없다. 아무것도 없이 휑하던 화분에 찾아와 준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애당초 잡초라는 건 내가 그 풀의 이름을 모르니 잡초라고 부르는 것일 뿐 그 풀에게는 내가 모르는 이름이 분명 있을 것이다. 그리고 만약 나의 화분에 와서 나의 꽃, 나의 풀이 되어 준다면 그 아이는 더 이상 잡초가 아니다. 내가 아무 노력도 하지 않았음에도 나에게 찾아와준다면, 그 아이를 감사히 키우고 싶다.     

빨래가 바람에 흔들리고 빨래에서 떨어진 물자국이 조금씩 조금씩 줄어들어 간다. 빨래 앞 화분에는 호기심으로 기다리는 어린 새싹이 두 개 자라고 있다. 


산처럼까지는 아닐지라도 해야 할 일 목록이 여러 개 나를 기다리는, 그러나 의욕은 생기지 않고 나른하기만 한 이런 주말에, 나의 소소한 일상들이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 준다. 여전히 의욕이 생기지는 않지만, 마음껏 생명을 뽐내고 있는 그들의 존재를 보며 힘을 내고 싶어진다. 커피의 힘을 빌려서라도 책상 앞에 앉아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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