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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 Jul 18. 2021

내가 나로 사는 법

친구와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녀는 이제 책을 읽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예전에는 좋아했고 많이 읽었지만 지금은 그 책 속의 말들이 틀렸다는 것이다. 책 속의 말들은 모두 그들의 진실일 뿐 자신에게는 적용되지 않는 틀린 말들이기에 이젠 책을 읽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나를 생각한다. 나에게 책은 어떤 존재일까.     


내가 책을 읽는 이유는, 아니 좋아하는 이유는 여러 가치관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나 쉽게 큰 비용을 들이지 않고 정돈된 생각을 만나는 건 책이 아니면 맛볼 수 없는 가치다. 물론 요즘은 유튜브 등의 매체가 있어서 저 너머 다른 세상에 사는 사람도 쉽게 만날 수 있다. 하지만, 책은 책만의 가치가 있다. 대략적인 대본이 있을지라도 생각나는 대로 말하는 것과 수십 번, 수백 번의 검토를 거쳐 글자로 인쇄된, 그래서 오타 한 글자 찾기 쉽지 않은 책 속의 글을 읽는 건 전혀 다른 무게라고 생각한다.      


또한 나는 책 속의 모든 내용이 진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책은 문제집의 정답지가 아니다. 책은 나에게 있어 친구다. 나와 같은 생각을 만나면 혼자가 아니었단 생각에 반갑고 기쁘고 다른 생각을 만나면 신선해서 좋다. 그리고 저자와 의견이 다를 경우에는 서평이나 일기의 형식을 통해 반박을 한다. 나는 책에게도 순종적이지 않다. 어찌 보면 나는 세상 모든 것에 그리 순종적이지는 않다.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을 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다.     


나에게 책 읽기는 공부도 아니고 지식을 얻기 위한 목적도 아니다. 책을 많이 읽는다고 자랑할 거리도 아니고 그렇다고 안 읽는다고 부끄러워할 필요도 없다. 애당초 공부란 것 자체가 잘한다고 자랑할 것이 아니지 않는가. 실제로 학력과 경력이 그 사람의 인격과 비례하지 않는 경우를 너무 많이 보았다. 

서울대 청소담당자들의 직무 시험문제에 영어나 한자쓰기 문제가 나왔다는 뉴스를 보았다. 시험 문제를 출제하고 이 문제지를 출력하고 그리고 담당자들에게 이 문제지를 배포하고 채점하는 과정에서 이 시험지를 본 사람은 한두 명이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그 과정에 있던 어떤 누구도 의아함을 지적하거나 수정하거나 하지 않은 채 그대로 진행된 그 사실이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시험문제 작성자 본인은 ‘무지’했을지라도 그 시험지를 본 다른 어떤 이도 이의를 제기지 않는 혹은 못하는 집단이라면, 그곳에서의 배움은 어떤 의미인지, 그들에게 배움과 지성은 도대체 어떤 가치인지 묻고 싶다. 공부나 학업이 악세사리처럼 자랑의 도구로 사용되는 곳인가라는 생각도 해본다. 그러한 도구로 삼을 수 있다는 것은, 삼으려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은, 악세사리로서 우러러보는 사람들이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나 자신에게 가장 경계하는 돌아봄이 두 가지 있다. 편협한 고정관념과 이기심이다. 이 두 가지는 나에게 있어 어린왕자의 바오밥나무 씨앗과 같다. 어린왕자가 자신의 별에 자라지 못하도록 씨앗일 때부터 정성스럽게 뽑아내듯 나도 그렇게 늘 지켜보고 있다. 


어릴 적 나의 삶의 기준이 되었던 종교를 떠난 이후 말 그대로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내 가슴에 커다란 구멍이 난 것만 같았다. 그 빈 자리를 채울 옳은 신념, 기준이 나에게는 간절히 필요했다. 돌아보면 나의 이십 대, 삼십 대는 그러한 기준과 신념 만들기 시간이었다. 하지만 그 신념들이 자칫 고정관념과 선입견, 편견이 될 수 있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퍽퍽한 현실을 버티기 위해 지금은 나를 돌봐야 하는 때라며 나를 지키는데 최선이었던 시절, 여전히 현실은 퍽퍽하지만 나를 지키는 것이 최선이라는 이 마음이 지나치면 이기적인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어른이 되고 보니 평범한 삶을 사는 것조차 쉽지 않음을 알게 된다. 어릴 적 마음껏 꿈꿀 때처럼 한 분야의 최고가 되겠다는 꿈은 이젠 서랍 안쪽에 숨겨 두게 된다. 버리기엔 아직 젊고 그렇다고 무모하게 꿈을 꾸기엔 현실을 너무 알아 버린 나이. 그러나 단 한 가지, 나로 살겠다는 꿈만큼은 당당히 꺼내어 놓는다. 조금 세상과 맞지 않아도 내 생각이 편협하지 않고 이기적이지 않고 내 안에서 나온 것이라면 그 생각을 믿고 나로 살겠다는 것, 이것만큼은 당당한 나의 꿈이다. 이 꿈을 위해 나는 책을 읽고 고민하고 일기를 쓰고 반성하고 다시 세상에 나가 사람들과 부딪히고 반성하고 하는 이 과정을 반복하고 있다. 이것이 내가 나로 사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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