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정 Dec 28. 2021

강원국의 <나는 말하듯이 쓴다>

특별식처럼 특정 주제에 대해 관심이 생겨서 읽게 되는 책이 있는가 하면, 이러한 글쓰기 책은 언제나 읽고 싶다. 글을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서 타인의 글쓰기 이야기는 언제나 흥미롭다.   

  

책을 쓰고 싶은 사람에게 먼저 말해보라고 권한다특정 주제로 열 시간 이상 말할 수 있으면 당장 책을 써도 된다.(p90)”     


이 책의 핵심 주제는 저 문장이 가장 잘 드러내고 있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말하듯이 글을 쓰라는 것이다. 간단해 보이지만 말하듯이 자연스러운 글을 쓰는 것도 쉽지 않고 10시간을 계속해서 말할 수 있는 주제를 가지는 것도 쉽지 않다.   

   

아버지에 대해     


나에게 있어 글쓰기는 숨 쉴 수 있는 공간과 같다. 쉽지 않은 인간관계의 어려움을 글을 통해 해소하기도 한다. 그런 나에게 있어 글은 선택이면서도 선택이 아니기도 하다. 하지만 저자는 말한다. 누구나 책을 쓰는 시대라고. 아니 써야 한다고. 나와는 조금 다른 관점이다. 그래서 신선하다. 명함으로 여겨서 글을 쓰고 싶단 생각을 한 적은 없지만 생의 마지막까지 함께 하고 싶은 것 중 하나가 글인 건 맞다. 삶에 단계마다 나타나는 여러 고비들을 넘을 수 있었던 것은 글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누구나 책을 쓰는 시대다아니써야 하는 시대다오래 살기 때문이다. ‘어디’ 다니는 사람이 아니라 스스로 정한 누구라는 정체성으로 살아야 할 기간이 길다적어도 책 한 권 분량의 콘텐츠가 있어그것으로 자기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고령화사회에서 책은 명함 같은 것이다그래서 책이 있으면 일할 수 있다그렇지 않으면 매일 산에만 다녀야 한다.(p102)”    

 

위의 문장을 읽으며 문득 아버지가 떠올랐다. 아버지의 삶을 한 권의 책으로 담아드리고 싶다. 명절날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이면 새벽까지 젊은 날의 이야기를 펼쳐놓으신다. 보통은 그런 아버지의 길고 긴 연설이 지루하고 지루했다. 이미 지겹도록 들어서 다 외워버린 연극 대사 같았기 때문이다. 언니들도 나도 더 이상 귀담아듣지 않게 되었던 것 같다. 그러다 새로운 관객인 남편이 사위로 가족 모임에 참석하게 되었다. 남편에겐 신기하고 처음 듣는 이야기이고 그가 살아 있지 않던 시절의 이야기이기에 그동안 우리는 보여주지 않았던 질문을 던졌다. 남편 덕분에 아버지는 이야기의 꽃을 피우며 항상 반복하던 추억을 벗어나 다른 이야기들을 풀어놓으셨다. 아버지의 다른 모습이었다. 너무 가까이 있어서, 생활의 구차함마저 함께 공유한 가족이기에 볼 수 없었던 아버지의 새로운 모습이었다. 일흔이 넘으신 연세에 새벽까지 몇 시간을 지치지 않으시고 말씀하시던 모습. 그 모습이 저 문장을 보며 떠올랐다. 아버지의 그 기나긴 이야기, 그동안 다 안다고 귀담아 들어드리지 못했던 그 이야기들을 한 권의 책으로 담고 싶단 생각을 했다.   

    

간절함에 대해     


간절하게 쓰고 싶은 글이 있고글을 써서 이루고 싶은 꿈이 있으면 누구나 쓸 수 있다안 쓰고는 도저히 버텨낼 수 없는 절박한 상황이면 글쓰기가 두렵지 않다글쓰기가 두렵다면 아직 살 만한 것이다.(p98)”   

  

그러나 아버지에 관한 책 한 권을 쓰고 싶다는 꿈, 생각은 분명 현실이 될 가능성이 없다. 저자의 말을 빌리자면 그렇게 간절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나의 글 또한 그렇다. 글을 통해 위안을 얻고 삶의 힘을 얻고 글쓰기를 통해 내면을 가다듬는 것, 그것이 가끔 누군가에게도 공감이 되고 위로가 된다면 그걸로 만족한다, 그것이 지금의 내 글쓰기다.      


간절함이 무엇일까. 그건 나에게 너무 어려운 단어다. 간절히 원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잘 모르겠다. 반드시 이루어지길 소망하면서 아무리 좌절하더라고 그 꿈을 포기하지 않고 이룰 때까지 끊임없이 도전하는 것, 그것이 간절함이라면 난 그만큼 강하고 질기지 못하다.     

 

40년 이상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지만 아직도 모르는 것들이 너무 많다. 이 간절함이라는 것도 내가 살아가면서 배우게 될 단어가 아닐까 싶다. 간절함을 알게 되는 것이 조금 무섭기는 하다. 간절히 원하는 어떤 것이 생겼으나 그 간절함만큼의 용기와 인내심이 없을 때, 그때 찾아올 무게감이 무섭다. 어쩌면 지금까지 회피하고 있던 감정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삶은 분명 어느 순간 나에게 이 단어의 의미를 삶으로써 알려줄 것을 안다. 그때 당당히 받아들일 수 있기를 소망한다.

작가의 이전글 감정에 이름 붙이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