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종 한국인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반드시 한국어를 잘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오히려 외국인의 입장에서 한국어를 ‘학문’으로 공부한 사람이 더 자세히 알지도 모른다. 말을 할 줄 안다는 것과 지식으로서 제대로 아는 것은 다른 것이니까. 번역이나 통역을 할 때, 혹은 이렇게 서평이나 일기를 쓸 때 나는 우리의 말, 국어를 잘 모른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그런 경험을 한 이에게 이 책은 굉장히 유용하다.
“이 책은 어감, 뉘앙스, 미묘한 뜻이 다른 비슷한 단어들의 의미를 좀 더 섬세하게 밝히고 싶은 소박한 욕망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같은 듯 다른 말의 동질성과 이질성을 제대로 한 번 톺아보고 싶었습니다. 30년 넘게 사전을 만들면서도 미처 건드리지 못한 우리말 유의어의 세계를 들여다보고 싶었지요.(p13)”
책의 제목 그대로 ‘사전’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차례대로 읽어도 좋고 궁금했던 단어만 찾아서 읽어도 된다. 공부처럼 외우듯 읽어도 되지만 나처럼 단어를 바라보는 저자의 생각을 수필 읽듯 읽어도 된다.
# 고독과 외로움
고독. 요즘 머릿속에 맴돌던 단어이기에 마음이 멈추었다. 오래전 일기에서 나는 ‘고독(孤独)’을 ‘고독(古毒)’, 즉 오래된 독이라 정의했다. 나에게는 그랬다. 어릴 때부터 나는 이 단어와 왠지 친숙했다. 외롭다는 것과 혼동될 때도 있었지만 외로움보다는 고독이 나에게는 더 가까운 감정이었다.
“고독은 외로움의 ‘혼자 있음’, ‘쓸쓸함’에 더해 ‘자발적 고립’의 요소까지 포함하고 있다. ‘자발적 고립’이란 자신의 의지로 홀로 있음을 선택한 것을 뜻한다.(p66)”
고독이나 외로움 둘 다, 혼자일 때 느끼는 쓸쓸한 감정을 말한다. 하지만 저자도 말하듯 완전한 동의어는 아니다. “외로움이 유년을 포함한 모든 인간과 무정물에 대해 쓸 수 있는 데 반해, 고독을 유년을 제외한 인간에 대해서만 쓸 수 있다(p65)”는 점이나, 고독은 “자발적 고립을 통해 내면을 성찰하고 관조하는 상태(p66)”를 가리킨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나의 오랜 고독은, 외로움을 포함한 자발적 고립도 있다. 내면을 성찰하며 성장하기 위해서라는 거창한 이유는 아니다. 어쩌다 보니 외롭다 느끼는 날들이 많았고 나중에는 어쩔 수 없는 환경이라고 말하지 않게 되고 스스로 원한 외로움, 고독이라 여기게 되면서 즐기게 된 것뿐이다. 행복한 순간에도, 평온한 순간에도 고독을 원하기도 한다. 오랜 독(古毒)인 것이다, 나에게 있어서.
# 공허하다와 허전하다
공허한 느낌이나 허전한 느낌은 누구나 한 번쯤은 느껴봤을 감정이다. 생각해보면 나는 아직 공허한 마음은 잘 모르겠다. 그 이유를 이 책을 통해 알게 된다.
“누구나 살아가는 동안 마음이 공허하다고 느낄 때가 있다. 모두 이루었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모든 것이 부질없어 보일 때, 악착을 떨면서 살아온 것이 문득 후회스러울 때, 부와 명예를 거머쥐고도 조금도 행복하지 않을 때 공허감이 무겁게 밀려온다. ‘공허함’은 삶에서 아무런 의미나 보람도 읽을 수 없는 자의 쓸쓸한 내면 풍경이다.
허전한 마음은 공허한 마음과 달리 어떤 사람이나 사물의 부재로 인해 가슴 한구석이 텅 빈 것 같은 마음을 가리킨다.(p76)”
아직 나는 무언가를 이루었다든가 하는 감정을 느껴본 적이 없다. 아직도 나는 발달 과정에 있으며 아직도 쉽게 넘어지고 주저앉기를 반복한다. 이런 나이기에 공허하단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 하지만 허전한 마음은 안다. 소중하다 여기는 사람을 죽음으로 잃어본 적이 없던 나에게 찾아온 지인의 소식은 여전히 익숙하지 않다. 고독한 순간, 누군가가 그리워지는 순간, 마치 돌아가신 부모를 찾듯 그녀를 떠올린다. 허전하다는 단어를 떠올리진 않지만 그 텅 빈 마음이 곧 허전함일 게다. 보고 싶은 그녀의 빈자리가 남긴 감정이다.
# 솔직하다와 정직하다
나는 솔직한 사람인가? 정직한 사람인가? 솔직하고 정직한 사람으로 살고 싶었고 그러고 싶지만 그렇게 사는 삶이 항상 편하고 옳은 것은 아니다.
“솔직함이 지나쳐서 탈이 되는 경우도 있기 마련인데, 자기감정에 충실한 나머지 상대방의 마음에 상처를 주거나 너무 눈치가 없어서 분위기를 망치는 수가 있음을 두고 이르는 말이다. 정직함이 지나쳐서 탈이 되는 경우도 있는데, 원칙만을 고집하여 답답하거나 도덕적 당위만을 중시하여 손해를 보는 수가 많음을 두고 이르는 말이다.(p207)”
생각해보면 나는 솔직한 사람은 아닌 것 같다. 적어도 사회적인 상황 속에서는. 가까운 사람들 속에서는 솔직하게 내 생각을 말하는 편이지만 나이를 먹으며 사회적 가면을 쓰게 되면서 솔직함보다는 입 다물기를 선택하는 순간이 많아졌다. 다만 정직하게 살고자 하는 마음만큼은 굽히지 않았다고 자부하는데 이것이 답답하고 융통성 없는 사람이 될 수 있음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된다.
무엇이든 적당함이 가장 좋다는 건 알지만 나에게는 그것이 가장 어렵다. 적당히 정직하고 적당히 솔직하고 적당히 사람과 친하고 적당히 사람을 좋아하고 적당히 일을 좋아하고...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것이 적당히다.
# 존경하다
이 책에서는 존경하다와 공경하다, 존중하다를 비교하고 있는데 나는 ‘존경’이라는 단어에 마음이 멈추었다.
“누군가 ‘당신이 존경하는 사람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망설임 없이 대답할 수 있다면 그는 최소한 삶의 나침반을 단단히 그러쥔 사람이다. 그의 생각, 행동, 족적을 통해 삶을 배우고 성찰하며 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p313)”
요즘 가끔씩 찾아오는 목마름의 이유를 ‘존경’이라는 단어를 통해 알았다. 만약 지금의 나에게 ‘존경하는 사람이 누구인가’라고 묻는다면 아무리 시간을 주어도 대답이 떠오르지 않는다. 주변에 존경할 만한 사람이 없어서가 아니다. 나에게 필요한 부분을 찾아내지 못한 나의 나쁜 시력이 문제다. 지금의 나에게 필요한 배움이 무엇이며 그 배움을 충족시켜줄 만한 대상, 그것이 사람이든 사물이든, 그것을 찾지 못하고 있는 나의 문제이다.
존경은 공경과 달리 도덕적 당위가 아니다. 본받고 싶다는 자발적인 이끌림에 의한 감정이다. 이 자발적 이끌림을 느끼지 못하여 내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찾지 못하고 있다는 이 상황으로 인해, 정체된 듯한 답답함을 느끼고 있다. 성장하고 싶지만 어떻게 성장해야 하는지, 어떤 성장이 필요하고 어떤 배움이 필요한지 모르겠다. 그래서 그 ‘무엇’이 도대체 무엇인지 알기 위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고 있다. 그것이 바로 읽기다. 읽고 생각하고 쓰며 나의 부족함이 무엇인지를 찾아내려 발버둥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