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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 Jun 19. 2022

조숙의의 <숭고>

끌림이라고 해야 할까. 이 책의 표지와 제목을 보는 순간, 읽고 싶다, 읽어야만 한다는 묘한 끌림을 느꼈다. 분명한 이유는 모르겠다. 다만 서문에 있던 그녀의 글을 보며 나의 선택은 틀리지 않았다는 확신을 했다.   

  

사실 글쓰기를 시작하게 된 것은은둔에 가까운 생활에서 오는 사람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었다작가가 작업이 끝나고 텅 빈 작업실에서 느끼는 사람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은유대감의 상실과 소통의 부재에서 오는 것이라고 여겨진다현실은 깊은 사색에서 오는 가라앉은 시선과 문밖 일상의 경쾌함과 가벼움 사이에 존재하고 있다.(p4)”     


조각가인 그녀가 글을 쓴 이유가, 그 이유만으로 내 심장이 요동친다. 이 책은 예술가로서 삶을 바라보는 그녀의 시선이 담긴 책이다. 마지막 페이지를 덮은 지금, 다섯 개의 단어를 떠올린다. 숭고, 인간, 고통, 삶, 예술.  


숭고     


그녀는 왜 ‘숭고’라는 제목을 지었는지가 내 안에 풀리지 않는 의문으로 남아 있었다. 이것이 정답이라는 자신은 없지만 그녀가 ‘숭고’라는 단어 표현을 쓴 곳들에서 하나의 공통점을 찾았다.     


숭고한 인간인 우리가 가지고 있는 내적 자원실재하는 특별한 은총과 사랑에 대한 근원이나 메커니즘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은 거의 없다. (...) 우리 인간은 영적인 몸을 가진 특별한 존재이며 은총을 입은 숭고한 인간으로서 신비로운 존재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p221~222)”     


우리는 실수투성이고 완벽하지 않은 인간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 그자체로서 ‘숭고하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는 듯 하다. 그리고 그 숭고한 인간의 삶을 가치 진정으로 가치 있게 만드는 것은 고통이라고. 고통은 인간에게 피할 수 없는 십자가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다.     


고통     


삶이란 고통과 문제의 연속이다.(p134)”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삶이란 고통과 문제의 연속이다. 이 사실을 인정하지 않은 채 회피하려 하면 할수록 삶은 더욱더 괴로워진다. 저자가 말하듯, 이 고통에 대한 만족스러운 설명은 하기 어렵다. 어떤 잘못이 있기에 합당하게 받는 벌로서의 고통만 존재하지는 않는다. 정당한 고통도 있지만 합리적인 설명이 불가능한 고통을 당하는 경우도 많다. 삶에 동반된 고통은 논리적인 설명이 불가능하다.      


이 모든 어려움도 나를 위해서 일어난다.(p218)”     


숙명 앞에서 한없이 나약한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삶의 십자가와 고통을 삶의 일부로써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뿐이다. 그것만이 할 수 있는 전부가 아닐까. 그렇게 받아들일 때, 고통은 인간의 삶을 더욱 깊고 진하게 만들어 준다.      


예술작품에 있어서만은 인간이 당하는 고통이 중요한 가치로 등장한다. (...) 인류가 사랑한 예술작품들에는 반드시 여러 형태의 고통이 아로새겨져 있다훌륭한 작가는 그 고통을 잘 표현하는 작가이며동시에 숭고한 인간 정신을 드높인다.(p125)”     


곰곰이 생각해보면 마냥 행복한 순간보다는 괴로움에 몸부림칠 때, 내 안으로 더 깊이 침잠할 때, 나는 나를 더욱 가까이 만났다. 삶의 바람이 일어서 표면은 요동칠지라도 내 안 깊은 곳에서 나는 흔들리지 않게 된다. 그럴 때 나는 나의 새로운 모습을 알게 되고 한 단계 성장할 수 있게 된다. 마음에 오랫동안 남은 책 또한 그렇다. 한없이 행복한 순간의 글보다는, 외로움에 사무치고, 슬픔과 애도가 가득 찬 글, 삶에 좌절한 인간의 모습이 더 가깝게 느껴진다. 그러한 글들을 통해 위로받으며 인간을 더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는 인간이 된다.      


예술     


예술가인 그녀가 말하는 예술은 이것이다.      


예술은 무언가를 획득하는 것이 아니라 아픔과 갈등을 필연적으로 받아들이면서 화해의 길을 모색하며 경작되는 것이라는 단순한 진리를 많은 사람에게 전하고 싶었다.(p7)”     


삶은 그 자체가 총체적인 하나의 예술이라고 보아야 한다.(p6)”     


인간의 삶 그 자체가 예술이며, 삶을 살아가는 과정 그 자체가 예술이다. 사랑하는 사람, 소중한 사람과의 시간 그 자체가 하나하나 예술이기에 그 순간들이 모두 소중하고 중요하다고 그녀는 말한다.      


인간은 나약하기 짝이 없다. 혼자서는 걷지도, 먹지도 못하는 상태로 태어나 타인의 도움을 받으며 성장해간다. 그렇고 홀로 서게 되지만 살아가면서도 수많은 장애물을 만난다. 이 장애물들로 인해 주저앉기도 하고 울부짖기도 하고 괴로움에 몸부림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삶의 여정 곳곳에는 행복한 순간들이 숨어 있다. 이것이 삶이며 이 과정 자체가 예술이라고 그녀는 말한다.     

 

제목과 표지만으로 무언가에 이끌리듯 펼친 이 책. 고통과 삶, 예술에 대한 이 책을 통해 나는 위로를 받는다. 인생을 살아가며 이유 없이 만나는 커다란 돌들이 나를 무겁게 하고 겁나게 하지만 그것들을 담담하게 바라보게 하는 이 책이 나를 위로한다. 외로움으로 인해 글을 쓴 그녀를 통해 그녀의 고독을 만지고 내 마음의 고독이 위로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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