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석의 <인간이 그리는 무늬>(소나무, 2013)
인문학이란 무엇인가. 이 책은 한마디로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다. 인문학이란 무엇이며 왜 배워야 하는가. 그 이유는 간단하다.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기 위해서다. 자기 삶의 주인으로 살아가기 위해서, 살아 있는 사람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다. 이를 위해 우리는 자신의 욕망을 진실하게 대면해야 한다고, 그것이 인문학이 우리에게 알려주려는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즉 인문학이란, 결국 나의 욕망을 알고 나 자신으로 사는 것이며, 선택당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다. 너를 위해 나를 주는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해 네가 필요하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는 용기를 갖는 것이며 일반명사인 ‘나’가 아니라 고유명사인 ‘나’, 개별적 존재인 ‘나’가 되는 것이며, 레이스 커튼을 걷어내고 세상을 마주하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나를 지켜 준다고 믿었던 신념과 이념, 가치관이 오히려 나를 구속하고 나를 나로 살지 못하게 하며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게 만드는 이유가 되었다. 현실의 나를 받아들이지 못한 채, 세상이, 사회가, 가족이 기대하는 이상적인 존재를 만들어 놓은 후 그 모습만이 진정한 나라고, 그렇게 되어야만 한다고 끊임없이 스스로를 채찍질해 왔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고 데리고 사는 것이 왜 그리 어려운 것일까. 왜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일까. 그것은 자신의 욕망을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즉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제대로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면 보고 싶은 대로가 아닌, 보이는 그대로 볼 수 있을까. 그러기 위해서는 우린 매일 죽어야 한다. 저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자기 살해’다. 여기서 자기 살해의 대상은 ‘가치와 이념으로 결탁된 자아’다. 이 자아를 죽임으로써 세상을 낯설고 생소하게 바라보고 익숙함과 결별할 때 비로소 우리는 세상을 ‘보이는 그대로’ 볼 수 있게 된다. 자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나는 이러이러한 사람’이라는 지식을 버릴 때 비로소 나를 온전히 볼 수 있게 된다.
이 책의 서평을 쓰는 것이 그토록 힘들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책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 나의 글로 풀어내지 못했던 탓도 있겠지만 서평이 조심스러웠던 건 내 안에 이런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 의문이란, 자신의 욕망대로 산다는 것, 그것이 정말 옳은 일일까, 란 점이다. ‘해야 하는 것이 아닌 하고 싶은 것을 따르는 삶’이 정말로 괜찮을까, 자기 욕망에 충실한 삶이 타인에게 피해가 되지는 않을까. 정말로 기존의 지식, 이념, 가치관을 없애도 될까. 물론 과거의 낡은 지식이 없다면 매번 새롭게 세상을 볼 수 있기에 모든 게 신기하고 아름다울 것이다. 하지만 정말로 그렇게 모든 것을 잊어도 되는가, 라는 불안이 있다.
하지만 한 가지 사실은 분명하다. 나란 사람은 알고 싶고 느끼고 싶고 보고 싶은 것이 많은 사람이란 사실이다. 살아 있음을 느끼고 싶고 오랫동안 나를 괴롭혔던 영원함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고 싶으며 불안, 안정, 완벽에 대한 두려움에서도 벗어나고 싶다. 그리고 알고 싶다. 나라는 인간이 그리는 무늬를. 이를 위해서는 나의 욕망에 직면해야 한다. 배고픔, 슬픔, 졸림 등의 모든 욕망을 숨김없이, 그리고 간절히 표출하는 어린 아기처럼 자신의 욕망과 마주해야 한다. 이를 위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현재를 살아가는 것뿐이다. 불안과 불완전을 감당하며 바로 지금 여기를 살아가는 것, 구체적 일상을 살아내는 것. 그것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전부다. 그래서 나는 인문학을 배워야 한다. 이는 나에게는 생사가 걸린 중요한 일처럼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