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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 Oct 17. 2020

앤서니 스토의 <고독의 위로>

이 책은 두꺼운 표지와 여럿 등장하는 외국 작가들의 사례로 인해 어려운 책인듯 오해 할 수 있다. 하지만 저자의 요지는 의외로 간단하다.


친밀한 애착관계는 삶이 전개되는 하나의 중심축일 뿐유일한 중심축은 아니다.”


인간관계가 삶에서 매우 중요하다는 말을 많이 한다. 그 말이 틀리진 않았지만 인간관계가 행복의 전부인양 과장해서 생각할 필요도 없다는 것이다.

저자에 의하면, 친밀한 인간관계를 건강과 행복의 기준으로 강조한 것은 비교적 최근의 현상이라고 한다. 또한 창의적인 사람, 창조의 재능을 보인 사람들은 인간관계를 유일한 구원의 수단으로 미화하지 않았다는 것, 오히려 혼자인 시간, 고독의 시간을 통해 더욱 더 큰 자아성장을 이룩했다는 사실을 이 책에서 말하고 있다.

창조의 재능이 있는 사람은, 심한 경우 인간관계보다도 자신이 목표로 하는 분야를 훨씬 더 중요하게 여기며 그것을 삶의 의미를 주는 것으로 생각하기도 한다고 말한다.


오늘날 우리는 인간관계에 지나치게 큰 의미를 두고 있다사실 인간관계와 행복의 연결 고리는 매우 허약하다제대로 된 인간관계를 맺는다면 삶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할 것이고행복하지 못하다면 그 인간관계는 분명 뭔가 잘못된 거라는 우리의 생각은 지나친 것이 아닐까.”


늘 인간관계가 서툴다는 생각을 안고 살던 나로써는 저자의 이런 말에 안심하게 된다. 내 지금까지의 삶이 부정당하지 않는 느낌이다.

어릴 때 나는 낯가림이 너무 심해서, 가족 이외의 사람들은 우리 집에 오지도 못하게 하고 들어와도 내 얼굴도 못 보게 했다고 한다. 어떤 날은 엄마가 나를 안고 다른 분과 얘기하는데 내가 너무 울어서 가림막을 치고 대화했다는 일화도 들었다. 그 정도로 낯가림이 심했다고 한다. 초중고 시절에는 내가 낯가림이 있다는 사실을 잊을 만큼 활발한 성격이었고 지금도 통번역으로 처음 사람을 만나는 상황에서 스스럼없이 말을 잘 나눈다. 정말 내가 낯가림을? 할 정도로. 하지만 거기까지다. 누군가와 진심으로 가까워지는 것이 너무나 힘들다. 업무적 관계로서는 밝고 친근하게 쉽게 다가가지만 그 이상 내 영역에 누군가가 들어오는 것은 쉽게 용납하지 못한다. 마치 내 안의 성이란 것이 있고 그 성벽은 너무나 견고해서 쉽게 허락하지 않는 듯한 생각을 하기도 한다. 가족도 그 성벽을 넘을 수 없고 친구 중에서도 17년 된 친구 한 명만이 간신히 내 성안에 들어 올 수 있게 되었다. 나 스스로도 이 벽이 너무 답답할 때도 많다. 내가 쌓은 벽이건만 넘을 수도 부술 수도 없을 때가 있다.

늘 그런 나 자신을 답답하게 생각했는데 이 책을 읽으며 혼자만의 시간, 공간을 즐기는 것이 그렇게 틀린 것이 아니라는 것, 그저 사람들과 다른 것일 뿐이라는 안심을 하게 된다.


끊임없이 자신을 발견하려 하고자신의 정체성을 바꾸려 하고자신의 창조물을 통해 우주에서 의미를 찾으려고 노력했던 사람들 (중략그들에게 가장 의미 있는 순간은 새로운 통찰을 얻는 순간다시 말해 새로운 발견을 하는 순간이다그리고 이런 순간은 혼자 있는 순간이다언제나 그런 것은 아니라 해도 대개는 그렇다.”


진정으로 마음과 마음이 통했다고 느끼는 지인들은 정말 소수에 불과하다.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영혼이 빠져나가는 듯한 허전함을 시리도록 느끼게 하는 사람들과의 억지스런 시간보다는 소수의 사람들과의 조금은 한정된 인간관계가 나를 숨 쉬게 한다. 억지로 사람들을 만나려 하고 늘리려 하고 가면을 쓴 적도 한 때 있었지만 사람과 사람의 관계는 ‘만드는 것’이 아니란 걸 이제는 안다. ‘만들 수 없는’ 그 무언가가 있다.


“‘혼자 있는 능력은 학습과 사고와 혁신을 가능하게 하며 변화를 받아들이게 하고 상상이라는 내면 세계와 늘 접촉하게 하는 귀중한 자질이다. (중략인간관계보다는 자신의 삶에서 의미와 질서를 만드는 것에 주로 관심을 기울이는 창의적인 사람들도 많다.”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사람들과의 시간이 너무나 귀하고 소중하고 기쁘지만 그럼에도 나는 나와 만나는 고독의 시간이 좋다. 나의 외부에 펼쳐진 시간들 못지않게 내 내부의 세계도 그 차원이 넓다. 외부에 배워야 할 것들도 많지만 그와 마찬가지로 내 내부에 들어가기 위해 배워야 할 것들도 너무 많다.


얼마 전 읽은 <영혼의 연금술사>란 책을 읽고, 진정한 소통을 위해서는 내면을 비우고 내면 깊숙이로 들어갈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단 구절을 가슴에 담았다. 이후 나는 내면을 비우는 것이 어떤 것인지 배우고 싶단 생각을 하고 있다. 진정한 소통을 위해서라면 내면을 비우는 법을 배우고 싶다.

그리고 이 책 중에도 가슴에 담고 싶은, 배우고 싶은 느낌이 있었다.


창의력이 풍부한 사람들은 흔히 어린 시절에 자연과 하나가 되는 신기한 경험을 했다고 얘기한다.”


자연과 하나가 되는 느낌이 탐난다. 얼마 전 읽은 책에서 예술은 자연을 통역한 것이란 문장이 있었다.

멋진 문장이었다. 자연을 통역한 것이 예술이라니.. 멋지다. 현재 통번역 일을 하고 있고 앞으로도 하고 싶고 더 나이가 들어 통번역일이 힘들어 질 때는 나의 글을 쓰고 싶다는 멀고 먼 꿈을 꾸고 있다. 글쓰기와 통번역의 세계는 전혀 다른 세계란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그 문장을 읽고 결국 같은 것이었단 생각을 한다.

나는 자연을 통역하고 싶다. 자연과 하나 되는 느낌을 느껴 보고 싶다. 내가 나를 비우지 못하면 나는 결코 자연과 하나가 될 수 없을 것이다. 내 성벽과 내 것을 고집하는 한 나는 상대의 말에 진심으로 귀를 기울일 수도 없을 것이며 내 색깔이 너무나 강해서 그 어떤 것도 투명하게 바라보지 못할 것이다.

나를 비운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어떻게 하는 것인지 모르지만 자연과 하나가 된다는 것과 나를 비운다는 것은 어쩌면 같은 선상에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그리고 자연과 하나가 되는 느낌이 갖고 싶은  또 하나의 이유는, 창의력이 풍부한 사람이 탐나기 때문이다.

점점 욕심이 늘어난다. 예전에는 세상을 향한 욕심이었다면 이제는 점점 더 내 내부에 대한 욕심이 늘어난다.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내 내부에 갖고 싶은 것들이 늘어나 이렇게 욕심부려도 될까 싶을 정도이다.


저자는 위니콧의 말을 빌려 또 멋진 표현을 한다.


인생이 살 가치가 있다고 느끼도록 만드는 것은 다른 무엇보다 창의적 통각이다.”


창의적 통각. 아름다운 표현이다. 통번역 일을 하며 내가 이해할 수 없었던 말 중 하나가, 전자제품을 향해 ‘아름답다’는 말을 하는 개발자들의 말이었다. 사각의 메틸소재로 된 냉장고나 영혼이 없는 청소기 등을 보며 어떻게 아름답다는 감탄사를 쓸 수 있을까. 나도 언젠가 그 말을 내 가슴에서 나와 통역해 보고 싶단 생각을 하곤 한다.

아마 그 공대 분들이 이해할 수 없는 표현은 내가 ‘창의적 통각’이란 말에서 느낀 아름다움이 아닐까.

인생이 살 가치가 있다고 느끼도록 만드는 것은 다른 무엇도 아닌 창의적 통각이다. 멋지다. 곱씹어도 멋지다.

글을 쓸 때 비로소 존재의 이유를 느낀다는 고전 작가가 있었다. 그는 자신의 존재의 이유를 글쓰기라고 말했다. 곧 그가 살 가치를 느끼는 것이 바로 글이었고 살아있음을 느끼는 것도 글이었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그 글쓰기는 영감의 신 뮤즈가 내려와 아무런 고통 없이 술술 쓰는 쾌락의 시간이 아니었을 것이다. 분명 자신의 과거와 한정된 사고를 뛰어넘기 위해 남모를 괴로움을 느꼈을 것이다. 바로 창의적인 ‘통각’이다. 그럼에도 그 작가는 살 가치가 있고 존재의 이유를 느꼈다, 글쓰기에서.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는 일, 순간. 그 보다 더한 것이 필요할까.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는, 온 애정과 사랑과 열정을 쏟아부어도 아깝지 않은 그 무언인가를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또 무엇을 욕심낼 필요가 있을까.


대부분의 사람은 주로 다른 사람들과의 상호 작용을 통해 발전하고 성숙한다. (중략예술가나 철학자는 스스로 성숙한다그들 삶의 진전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보다는 작품 성격의 변화와 작품의 성숙에 따라 정해진다.”


창의적인 사람의 작품에 나타나는 아주 재미있는 특징 하나는 그 작품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하는 방식이다창의력이 뛰어난 사람은 자신의 작품에 절대 만족하지 않는다하나의 작품을 완성하고 난 후에 한동안 우울증을 겪다가 다음 작품을 시작하고 나서야 그 우울증에서 벗어나는 일이 흔히 있다내가 볼 때 창작능력은 고립 상태에 있는 개인의 발달에 다른 무엇으로도 얻을 수 없는 기회를 제공하는 듯하다.”


탐나는 문장들이다. 책을 읽을 때마다 이렇게 자꾸 욕심만 늘어나서 어쩌지? 하는 생각이 자꾸 든다. 그럼에도 탐난다. 따듯한 사람들, 영혼과 영혼이 닿는 나의 소중한 사람들, 그 사람들과의 시간이 너무 귀하고 좋지만 그럼에도 나는 내가 혼자 있는 시간이 좋다. 나의 내면에 들어가 있을 수 있는 이 시간이 없으면 물 밖에 나와 있는 물고기나 우주밖에 맨 몸으로 나온 인간처럼 숨이 막혀 죽을 것 같다.


자신은 누군가에게 거부당하거나 비난받지 않을 것이고 별나게 취급당하지도 않을 거라고 확신하면서 내면 가장 깊은 곳의 느낌에 접촉하고 그것을 표현할 수 있을 때마음속에서 어떤 종류의 재배치나 분류 과정이 일어나면서 평화로운 느낌진리의 우물 깊은 곳에 정말로 닿았다는 느낌을 경험한다.”


사람들과의 관계도 좋지만 혼자가 편한 사람, 고독한 사람들에게 저자는 그런 당신 모습 그대로 괜찮다고 위로하는 책이다. 왠지 마음이 편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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