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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 Oct 17. 2020

김형경의 <사람풍경>

행복한 고민을 하는 순간이 몇 번 있다. 도서관에 가득 찬 책꽂이를 보며 어떤 책을 읽을까 고민하는 순간과 지금 이 책처럼 마음에 드는 구절이 너무 많아 그 중 무엇을 중심으로 서평을 쓸까 고민하는 순간이다.


어떤 책이 너무 좋다, 라는 생각이 들 때 동시에 무엇이 좋은 걸까라는 질문도 나에게 던진다. 보통은 감각으로 그저 좋다는 느낌만 남기 때문에 이유를 바로 댈 수 없다. 만약 이 책에 대해, 왜 좋은 거냐고 묻는다면 이 한 마디는 바로 할 수 있을 것 같다. 내 속의 나를 만난 듯한 느낌이 들어 좋았다고.

내 속에 있던 나도 알지 못했던 밝은 면을 만날 수 있는 책도 물론 좋겠지만 나의 어두운 면을 책과 나만이 비밀처럼 공유하고 그 감정과 행동들의 근원을 해석해 준 책을 만나는 것이 어쩌면 나는 더 좋다.

또 다른 나로 여겨지는 책. 그리고 어두운 모습마저 토닥여주고 그래서 그랬던 거야, 그니까 괜찮아, 라고 위로해주고, 너는 그냥 너로 충분해, 라고 말해주는 것 같다. 이 책은 나에게 그런 책이다.


저자는 무의식에 대해, 무의식이 곧 우리 생의 은밀한 비밀 창고이자 보물 창고라고 말한다. 유난히 강한 척 하며, 가장 가까운 친구에게는 물론 부모, 형제에게조차 기댈 줄 모르는 강한 자주성을 보이는 사람. 늘 사람들과 투명한 유리벽을 사이에 두고 상처 받지 않는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려는 사람, 사랑을 할 때조차 그 거리를 좁히지 못하고 질투의 감정을 냉정함으로 무장하는 사람. 이런 식으로 늘 삶에서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려는 사람. 사람들과 보낸 시간만큼 혼자만의 공간으로 돌아와 희석의 시간을 가져야만 하는 사람. 마음이 닿는 사람을 그렇게 찾아 헤매면서도 사람들과 함께 머무르지 못하는 사람. 늘 완벽한 엄마, 완벽한 친구, 완벽한 사랑이라는 이상들에 둘러싸여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사람.

나는 그런 사람이다.


그 외에도 내 외피에는 무의식이 낳은 많은 요소들이 장식품처럼 주렁주렁 달려 있다. 그것들이 나를 괴롭힐 때마다 나는 왜, 란 질문을 하며 살아왔다. 이러한 부정적인 요소들의 근원에 대해 저자는 제임스 F.매스터슨의 <참자기> 중의 일부를 인용하며 이렇게 말한다.


세상에는 완벽한 어머니도 없고 완벽한 자식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모든 사람은 참자기가 생겨나서 독특하고 자율적인 자기에 통합되기 시작하는 생후 첫 3년의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많은 사람들이 성인이 되어 겪는 어려움이 어린 시절의 사소했던 갈등의 잔재 때문이고 그 결과 창조성과 자율성성적 친밀감에서 경미한 문제를 일으킨다는 뜻이다.”


그리고 저자는 또 이렇게 말한다.


생의 모든 문제는 사랑에서 비롯된다고 한다프랑스 정신분석의인 줄리아 크리스테바는 <사랑의 역사>라는 책에서 인간의 한평생은 거대하고 영원한 사랑의 과정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저자는 인간의 삶은 곧 사랑의 역사라는 표현을 한다. 나는 작년까지, 아마도 작년까지 일 것이다, 사랑은 나와 무관한 단어라는 듯이 살아왔다. 사랑은 곧 이성간의 사랑뿐이며 내 삶에서 사랑은 이질적인 존재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책을 읽을 때도 사랑이야기가 들어간 책은 글자들이 따로따로 눈앞에서 둥둥 떠다니는 것 같아 그 내용을 읽을 수 없었다. 조금 늦긴 했지만 다행히 지금은 그런 잘못된 생각에서 벗어나고 있는 중이다. ‘생의 모든 문제는 사랑’이라는 저자의 말을 그대로 품을 만큼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사랑이 중요하다는 것은 어느 정도 알게 되었고 이젠 나에게 없는 것이란 비겁함으로 회피하지 않고 정면에서 마주보려 한다.

사랑을 노래한 시나 소설은 사랑에 빠진 연인들이나 읽는 책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세상에 사랑할 수 있는 존재는 정말 많다. 자기 자신은 물론, 삶을 사랑할 수 있고 자신의 일, 친구, 신神 등 너무 많다. 아니 그것들은 ‘사랑 할 수 있는 것’이라기보다 ‘사랑해야만 하는 것’들이었다.

사람이든 무엇이든 제대로 사랑하는 법을 모를 때 우리는 우리의 무의식 속에 억압된 부정적 측면들이 낳은 비뚤어진 행동을 하게 된다. 그 사랑하는 법을 배우기 위한 기본이 될 최초의 사랑으로 저자는 ‘엄마와의 애착관계’를 들고 있다.


생애 초기에 엄마와 제대로 된 애착관계를 맺지 못한 사람이 갖는 문제 중에는 타인과 친밀한 관계를 맺는 데 어려움을 느낀다는 점이 있다애착관계를 맺는 방법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만이 아니라 그 시기의 결핍이 정신의 일부로 형성되어 있어 무엇으로도 메워지지 않기 때문이다또한 그런 아기들의 내면에는 불만족스러운 현실의 엄마를 대신해서 이상적이고 미화된 엄마에 대한 환상이 자리잡게 된다그 결과는 성인이 된 후에도 제대로 된 현실 인식을 갖지 못하거나 이상적인 연인을 찾아 방황하는 방식으로 나타난다.”


이 문장을 읽으며 나의 모든 행동들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가 되었다. 딸 셋 집안의 막내딸로 환영받지 못하며 태어났다. 더구나 아버지는 외아들이었기에 엄마는 아들을 낳아야 한다는 압박감이 심했다고 했다. 셋째마저 딸이라는 말에 엄마는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나를 쳐다보지도 않으셨다고 들었다. 게다가 내가 태어날 쯤부터 아버지의 사업이 잘못 되었다고 하니 나의 탄생이 그리 달갑지 않았을 것이다.


가끔 생각한다. 나의 어린 시절에 비하면 지금이 얼마나 행복한가를. 지금이 너무나 행복해서가 아니다. 어린 시절에 ‘비하면’ 지금은 천국이다. 유치한 비유지만 그렇다. 그 정도로 나에게 어린 시절은 결핍과 외로움과 방황, 모든 것의 부재였다. 여전히 아버지에 대해 마음을 열지 못하는 것도 어린 시절 기억으로 인한 분노의 표현이란 생각을 한다.


우리가 생에서 만나는 모든 문제가 사랑에서 비롯되는 이유는 기대했던 사랑이 결핍되었을 때의 감정과 관계 있기 때문이다분노우울불안공포중독질투시기심... 그 치명적인 감정들을 뒤집어보면 사랑의 부재라는 문제가 존재한다. (중략거리를 방황하는 청소년들폭주족들거식증이나 폭식증 환자들의 진정한 욕망도 사랑해달라는 외침이다도박알코올마약일 중독에 빠지는 사람들의 진정한 욕망도 사랑받고 싶은 욕망이다.”


잠시도 연인이 없던 적이 없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누군가 내 옆에 있는 것이 오히려 어색한 나 같은 부류의 사람이 있다. 나는 사랑은 영원하지 않을 거라 믿고 있으며 그렇기에 굳이 애써서 사랑을 찾으려고 하지도 않는다. 이는 내가 자주적이고 의존적이지 않아서라고 생각했지만 결국 누구보다 의존적이지만 의존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는 깊은 불신감에서 온 반대적 표현이란 걸 알았다.

누구보다 안정되고 깊은 사랑을 갈구하면서도 표현할 줄 몰랐던 것이다. 그래서 누구에게도 쉽게 마음을 열지 못하고 세상에 믿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을 놓지 못하며 사람들 속에서는 늘 불안하고 불편하고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지만 혼자라는 외로움을 견디기 힘들어하는 악순환의 고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사랑이란 세상에 존재하는 무수히 많은 사람 중에서 어떤 한 사람을 특별하고 소중한 존재로 인식하게 되는 과정이라고 한다.”


머리로 생각하면 지극히 당연한 문장이다. 그러나 나는 이 말을 모르고 살았던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이 말을,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보 내 내 안 깊숙한 곳으로 보내고 피부가 온전히 흡수해 나의 것으로 만들고 있다. 아니 그렇게 만들고 싶다.


생의 가장 중요한 문제로 저자는 사랑을 들었다. 그리고 이어서 그 사랑의 뒷면에 있는 것으로 ‘분노’를 들고 있다. 사랑처럼 분노 또한 누구에게나 있는 지극히 정상적이고 당연한 감정이라고 말한다. 오히려 부당한 일 앞에서 화가 나지 않는다면 그게 더 비정상적인 것이라는 설명을 덧붙인다.


사랑이 생의 모든 문제의 근원이듯 사랑의 뒷면인 분노를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따라 한 사람의 삶의 질이 좌우된다분석치료가 역점을 두는 대목도 바로 분노를 다루는 법이다.”


분노는 지극히 당연한 감정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분노의 근원을 직면하고 자신의 의식으로 통합시켜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리고 분노에 이어 우울증에 대해 언급한다. 프로이트 학파 정신분석가들에 의하면, 우울증이란 분노가 억압되어 제대로 표출되지 못할 때 우울증의 형태로 나타난다고 한다. 현대인들에게 우울증은 그저 정신의 감기라고 할 만큼 일상적이다. 그 우울증의 이면에 분노가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나의 경우, 분노를 표출하거나 화를 낼 때가 거의 없다. 분노가 참을 수 없을 만큼 치민 적은 평생 손에 꼽을 정도뿐이고 크게 화를 낸 적도 거의 없다. 온화한 성품이라 그런 게 아니다. 화를 내는 방법, 분노하는 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화가 날 때 그 화난 감정을 상대에게 전하지 못하고 회피하거나 입을 다무는 것으로 표현하기도 하고 혹은 혼자서 삭히곤 한다. 분노든 화든 부정적인 감정은 표현하면 안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고 표현한다 할지라도 나의 분노나 화를 들어줄 사람은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분노나 화를 표현하면 사람들은 내 곁을 떠나갈 거라는 불안도 있다. 어릴 때 부모님의 부부싸움을 너무 자주 보았기 때문인지 싸움은 피해야 하는 것이란 생각이 강하게 자리 잡았던 탓일지도 모른다.

화를 표현할 줄 몰랐기 때문에 가끔 가슴에 쌓인 화나 분노가 독처럼 솟아오를 때가 있다. 독기어린 그 사람은 내가 알던 내가 아니다. 낯설고 때론 혐오스럽고 부정하고 싶은 존재다. 그 독은 타인이나 세상을 향해 뿜어 나오지 않고 오히려 내 안에서 나를 괴롭힌다. 그럴 때면 그런 나 자신을 감당하지 못하고 우울한 감정이 뒤따랐다. 분노의 억압이 우울증의 형태로 나타난다는 정신분석학자들의 분석은 옳다.


우울증에 이어 불안감이란 부정적 감정에 대해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불안감은 생을 위협하는 자연적, 사회적 요인들에 대한 정상적인 반응이라고. 지극히 당연한 요소인 불안이라는 감정을 비정상이라고 생각했기에 불안한 자아를 인정할 수 없었던 것이다.


생이란 본디부터 그렇게 유동적이고 불안정하고 소란스럽고 깨어지기 쉬운 것이라는 것을본래 그런 삶을 유독 불안정하게 느꼈던 것은 내면의 불안감 때문이었으며그것 때문에 정상적인 삶조차 불안하게 받아들였다는 것을.

내면의 불안감을 인식하고 수용하자 오히려 불안정하다고 느껴온 삶의 조건들을 파도타기하듯 누릴 수 있을 것 같았다삶의 안정을 꿈꾸는 대신 어떻게 파도타기의 중심을 잘 잡을 것인가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는 것도 알았다그것은적어도 내게는소중하고 의미 있는 발견이었다.”


불안감과 맞설 수 있는 믿음. 그 믿음이 필요하다. 그리고 자신에 대한 믿음이 필요하다. 곧 자신에 대한 사랑이다. 내 삶이 완벽하지 않다는 것, 나 자신도 완벽하지 않으며 마찬가지로 사람들도 부모도 완벽하지 않다는 것. 그것을 인정해야만 한다.


나는 내가 선하기도 하고악하기도 하며아름답기도 하고 추하기도 하며정의롭기도 하고비겁하기도 하며이기적이기도 하고 이타적이기도 하며... 그런 얼룩덜룩하고 울퉁불퉁한 존재로서 존엄하고 사랑받을 수 있는 존재임을 알게 되었다그런 나를 사랑할 수 있게 되면서 타인의 그런 점들도 끌어안을 수 있게 된 점이 더욱 만족스럽다.”


내 속의 부정적 요소들에 대해 눈을 돌리지 말고 그러한 아픈 모습마저 그대로 끌어안고 감싸 안아야 한다. 나는 얼룩덜룩 울퉁불퉁한 존재지만 그 자체로 나는 사랑받기에 충분한 사람이다. 그 사실을 가슴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야 타인의 얼룩덜룩하고 울퉁불퉁한 모습을 받아줄 수 있게 된다.


자기 자신을 제대로 사랑할 줄 알아야 타인도 사랑할 수 있다는 말은 중요하다. 자기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은 나르시시스트가 되라는 말이 아니다. 자신의 어두운 면조차도 그대로 포옹하고 인정한다는 의미이다. 자신을 과장해서 떠받들라는 의미가 아니다. 밝지 못하고 아름답지 못하고 선하지 못하고 게으르고 추악한 모습을 가졌지만 그럼에도 나 자신은 사랑받을 만한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믿으라는 의미이다. 사랑받을 만한 그 어떤 것도 하지 않았음에도 나의 존재 그 자체만으로 이미 사랑받을 만한 자격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다는 의미이다. 그렇게 되었을 때 비로소 나와 타인의 모습 그대로를 온전히 감싸 안을 수 있게 된다. 자기 자신을 제대로 사랑할 줄 안다는 것은 그렇기 때문에 중요하다.


지지, 인정, 공감이라는 단어들이 떠오른다. 저자는 <지지 정신치료>라는 책을 통해, 지지는 판단하는 마음 없이 타인의 행위를 인정하는 것충고하고자 하는 마음을 누른 채 타인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또한 공감에 대해서 이런 말도 한다. 공감은 우월의식에서 비롯된 연민과도 다른 것이며, 객관적 태도를 잃은 동감과도 다른 성질의 것이라고 말하며 공감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공감은 중립적이고 비판단적인 태도로 상대방의 내면을 고스란히 함께 느끼는 것이라 한다한 인간의 비통애착공포분노... 그리하여 인간이 그토록 나약하고 불완전한 존재라는 사실을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느끼는 상태이다인정과 지지 역시 공감이 전제되어야 실천할 수 있는 삶의 덕목일 것이다.”


타인에게 진심으로 공감하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의 마음을 돌아볼 수 있어야 한다. 이 말을 저자는 이렇게 표현한다.


자기 마음에 고요히 머물러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타인의 마음에도 잠시 머물 수 있다.”


이기적이고 계산적인 사람들을 보면 거리감을 느끼고 거부감을 느꼈다. 그것은 내 마음에 이기적이고 계산적인 면이 있었기 때문이지 내가 결코 그들보다 선하고 이타적이었기 때문이 아니었다. 나의 어두운 면들을 타인을 통해 보았기 때문에 그 어두운 면을 정면으로 보기 싫어서 회피하며 타인을 향해 거부감을 표했던 것뿐이다.

   여전히 나는 삶의 방식이 서툴고 제대로 걷지 못한다는 느낌을 갖고 있지만 계속해서 걸어갈 것이다나의 모든 면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내 삶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싶다그러한 과정에서 한 사람이라도 내가 타인을 그대로 품고 그 사람의 삶을 받아들여 한 사람이라도 그 사람의 어깨의 긴장을 풀 수 있게 해 줄 수 있다면이라는 욕심도 품어 본다내가 할 수 있는 한계 내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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