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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 Oct 17. 2020

김형경의 <좋은 이별>

이 책의 저자는 올해 들어 내가 처음 가장 좋아하게 된 작가다. ‘좋아한다’라는 단어를 붙일 수 있는 무언가를 만나는 일은 참 행복한 일이다. 좋아하는 음식, 좋아하는 일, 좋아하는 책, 좋아하는 친구, 좋아하는 사람. 무엇이든 ‘좋아한다’는 말과 만난 단어는 그 단어 혼자 있을 때에 보이지 않던 빛이 생긴다.


이별이란 단어는 뭔가 차갑고 허전하고 시린 느낌이 든다. 그 단어가 ‘좋다’라는 단어와 만났다. 좋은 이별.

처음 이 제목을 접할 때는 연인과의 이별만을 떠올렸다. 나에게 사랑은 사치라는 생각이 많기 때문에 읽어야 하나, 순간 고민했다. 하지만 저자의 다른 책을 읽고 반해 저자의 나머지 책들도 읽고 싶은 마음이었기에 읽기로 했다. 처음 내 마음은 그랬지만 읽다보니 제목에 대한 나의 생각은 편견이었다. 이 책은 남녀 간의 이별만을 다룬 것은 아니었다. 다행이다.


상실과 애도를 책의 주제로 잡은 것은 그것이 정신분석적 심리 치료의 핵심 개념이기 때문이다개인적 사회적 병리의 모든 원인은 사랑을 잃거나 소중한 대상을 상실한 후 그 감정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다.”


여기서 이별이란 것은 단어 그대로의 이별, 헤어짐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상실, 결핍을 의미한다. 그리고 저자는 이에 대해, 모든 심리적 문제의 원인은 ‘상실이나 결핍’이며, 그 해결책은 ‘애도’라고 말한다.


아픈 걸 아프다고 말하고, 슬플 때 슬퍼라고 말할 수 있다면 건강하다고 생각한다. 쉬운 듯 보이지만 생각보다 그게 쉽지 않다. 오랜 연인과 헤어지고 아플 게 틀림없건만, 괜찮니? 라고 물으면 응, 생각보다 아무렇지 않아, 라고 말하는 사람도 많다. 정말로 괜찮을 때도 있겠지만 내면의 목소리를 듣지 못해 아픈 줄도 모르고 지내는 사람도 많다.


예전에 언니가 갑자기 일어나지 못해서 응급실에 실려 간 적이 있다. 나에게는 엄마와 같은 존재였기에 너무 놀랐다. 갑자기 도저히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며 죽을 것 같다고 호소하는 언니 옆에서 조카와 함께 응급차를 타고 병원에 갔다. 그리고 병원에서는 온갖 검사를 다 했지만 알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응급차를 타고 가는 동안, 그리고 병원에서 언니를 지켜보며 밤을 지내는 동안, 삶의 슬픔에 직면하는 나, 그리고 조카의 모습을 보았다. 분명 어린 조카는 엄마의 아픈 모습에 당황하고 슬프고 많이 놀랐음이 틀림없을 텐데 너무나 아무렇지 않은 듯 행동했다. 처음 병원에서 잠을 자게 되어 신기하다는 둥 병원 밥이 맛있다는 둥 그 행동이 너무나 부자연스러웠다. 나도 침대에 누워있는 언니를 보는 게 너무 힘들었다. 물건을 챙기러 집에 가서 일부러 천천히 짐을 싸며 조금이라도 아픈 모습을 멀리 하고 싶었다.

다행히 언니는 뇌의 이상이 있던 것도 아니었고 심각한 병도 아니었다. 귀의 달팽이관의 문제로 몸의 중심을 잡을 수 없어 일어나지 못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각종 검사에서도 나타나지 않았다고 한다. 무슨 헤프닝처럼 끝나 지금은 농담처럼 그 일을 얘기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 날 보여준 나와 조카의 슬픔에 대처하는 모습은 잊혀지지 않으며, 장난으로도 웃을 수 없다.


슬플 때 슬프다고 말하고 아플 때 아프다고 말하는 것, 불안할 때 불안하다 말하는 게 생각만큼 쉽지 않다는 걸 나는 그 날 보았다. 그리고 그게 나 자신만이 아니라 어린 조카도 마찬가지였다는 사실이 가장 마음 아팠다. 이후 나는 조카가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할 수 있도록 신경을 쓰게 된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왜 우리는 우리의 감정에 솔직하지 못한 것일까. 왜 힘들 때 힘들다 말하지 못하고 소리 내어 울지 못하는 것일까.


슬픔을 참는 이들은 대체로 한번 울음을 터뜨리면 자기가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안고 있다. (중략잘 갈무리된 사회적 얼굴을 헝클어뜨리는 순간 자신이 해체될까 봐 두려운 것이다우리는 불안 때문에 슬픔을 감추면서 날마다 더 많은 불안감을 쌓아가고 있는 셈이다.”


울음은 나약함과 미숙함의 증거로 보는 문화가 우리를 울지 못하게 하는 것은 아닐까. 그깟 사랑이 뭐라고 세상에 널린 게 남자, 여자인데 뭘 그렇게 호들갑 떠느냐고 슬퍼하는 사람을 다그친 것은 아닐까.


예상치 못한 상실로 충격을 받을 때 몸과 마음이 제일 먼저 하는 일은 그 충격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일이다재빨리 감정과 감각을 마비시켜 충격이 몸과 마음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한다.”


여러 가지로 힘든 상태의 있는 친구에게 괜찮냐고 물으면 늘 괜찮다고 말한다. 익숙해져서 아무렇지 않다고 말한다. 그 괜찮냐는 말을 들을 때 친구로서 나는 가장 힘들다. 그냥 한 마디만이라도 아니 힘들어, 그래도 견디어 볼라고, 라고 말한다면 조금은 그 친구가 편해지지 않을까 생각하곤 한다. 늘 모든 것을 혼자 짊어지고 혼자 견디는 친구. 너무나 내 모습을 닮았기에 더 마음이 아프고, 그럴 때 그 친구에게 해 줄 수 있는 말을 나는 알지 못하기에 더 가슴이 아프다.


예전에는 철저하게 계획을 세웠다. 몇 년까지 무엇무엇을 이루겠다고 구체적으로 꿈의 목록을 세웠다. 하지만 가장 간절히 원하던 꿈일수록 그 꿈은 깨져버렸다. 99.9% 당연히 이루어질 것이라고 생각했던 일들이 계속해서 깨져버렸다. 이후 나는 그런 구체적이고 먼 날에 대한 계획은 세우지 못하게 되었다. 세우지 않기로 했다고 해야 더 옳은 말이다. 더 이상 꿈이 깨어지는 것을 보고 싶지 않다는 고집이니까. 지금도 이상으로서의 꿈은 있지만 예전처럼 무언가를 간절히 원하지 않는다. 간절히 원하는 것일수록 절대로 나에게는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인생에 대한 불신감이 있다.


그러한 지금의 나의 모습은, 결국 계속해서 깨진 꿈에 대한 상실감을 제대로 애도하지 못한 탓이라는 걸 이 책을 읽으며 알게 된다. 그 상실감으로 인한 것일까, 나는 무엇도 소유하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날 좋아하지 않고 내가 간절히 원하는 것은 늘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생각이 내 안에 흐르고 있다. 그것이 무소유를 낳았고 어떤 것에도 집착하지 못하게 만든다. 누구도 영원히 곁에 있어 준 사람이 없다는 생각에 사람이든 물건이든 꿈이든 무엇이든 나는 집착하지 않으려 한다.


어떤 사물에 정이 들까 봐 조심했고만년필이든 책이든 애착이 깊어진다 싶으면 얼른 그것을 처분했다어디에도 마음을 주지 않으려 노력했고어느 대상에게도 마음이 묶이지 않도록 애썼다.”


마루야마 겐지의 <천년동안에 1, 2>(문학동네, 2011)라는 소설에는 흐르는 자라는 개념이 나온다.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고 속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 책을 만난 이후 나는 흐르는 사람이 되기로 결심했고 흐르는 삶을 살자고 마음먹었다. 그리고 나와 사람들과의 관계는 흐르는 관계로 살고자 생각하고 있다. 이유는 하나다. 그것이 나를 덜 상처 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그렇다, 회피다.

병원에서 아픈 언니를 마주대할 수 없어 아무렇지 않은 척 했던 것처럼 사람들과의 이별과 멀어짐, 다툼, 어긋남을 견딜 자신과 용기가 없기 때문에 처음부터 눈을 돌려버린 것이다.


저자는 말한다. 제대로 이별하지 못한 것들에 대해 ‘애도의 작업’이 필요하다고. 여기서 애도 작업이란 상처입은 곳으로 돌아가 그때 충분히 슬퍼하며 울지 못한 울음을 다시 우는 것이다. 왜 이러한 작업이 필요할까. 영원히 괜찮다고 생각하며 살면 되지 않을까. 나처럼 회피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아닐까. 이런 나의 생각에 저자는 말한다.


멀리 떠나는 사람들은 먼 길을 돌아와서야 비로소 알아차린다그렇게 해도 마음의 문제삶의 문제는 고스란히 남아 있다는 사실을.”


여행을 떠나 듯 문제에 대해 멀리 떠남으로, 회피함으로 해결하고자 했다. 실제로 그게 가장 손쉬운 듯 보인다. 하지만 그렇게 도망치더라도 그 문제는 결코 해결되지 않는다. 해결되지 않은 상처는 나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불쑥불쑥 튀어나와 괴롭히게 된다. 그럼 어떻게 애도해야만 하는가. 어떻게 해야 좋은 이별인가.


애도 작업의 핵심은 슬퍼하기이다우리는 슬퍼하지 못하기 때문에 마음이 딱딱해지고몸이 아프고삶이 방향 없이 표류하게 된다. (중략우울증조차 제대로 슬퍼하지 못해 생긴 결과이며슬픔의 왜곡된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울 수만 있다면 마음의 병이 걸리지 않는다고 한다.”


애도 작업에서 중요한 것은 ‘자기 표현’이라고 한다. 저자에 의하면 자기 자신을 표현하는 행위는 그 자체만으로 내면에 깃든 묵은 상처를 치유하는 기능이 있다고 한다. 여기서 자기 표현이란, 고통, 슬픔, 상실, 외로움 등의 감정을 처리하고 소화시키는 방법이다. 아픈 기억을 소화시켜서 유익한 교훈을 얻고 나쁜 기억이나 감정을 떠나보내는 것, 그것이 애도 작업이다.


자신의 그러한 감정들을 자신이 알고 표현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타인에 대해서도 공감할 수 있는 힘이 생기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나는 내 아픔에 대해 솔직하게 표현하지 못하다. 아무리 아파도 일을 빠진 적이 없고 아무리 아파도 죽을 정도가 아니라면 참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엄격한 잣대를 나에게는 물론 타인에게도 그대로 들이대기 때문에 죽을 정도도 아닌데 아프다고 하면 엄살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내 아픔에 나 스스로 귀를 막아버리듯 타인의 아픔에 대해서도 잔인하리만큼 차갑게 되는 것. 그것은 좋은 이별을 하지 못한 탓일지도 모른다.


세상의 모든 가치가 사라지고 생이 무의미해질 때그런 때조차 묵묵히 살아가는 것이 애도 작업의 일부이다인간뿐 아니라 신의 존재에 대해서도 의심이 생길 때의혹을 품은 채 신에게 경배하는 일이 삶의 일부이다실패나 실연을 무릅쓰고 다시 미래를 꿈꾸는 것밥을 먹는 자신에 대한 역겨움을 참아내며 계속 먹는 일이 바로 용기이다.”


애도 작업이라고 해서 반드시 모든 걸 내팽개치고 그냥 슬픔에 젖어 살라는 것은 아니다. 산 사람은 살아야지, 하며 무의미한 삶이라 여겨지는 순간에도 꾸역꾸역 살아내는 것도 애도 작업이라고 저자는 덧붙인다. 당연한 말임에도 그 당연한 말이 가장 필요한 순간에는 떠오르지 않거나 가슴에 스며들지 않곤 한다. 하지만 반드시 기억해야 하며 필요한 순간 떠올려야 하는 말이 있다.


실연은 하나의 관계가 끝난 것일 뿐존재 전체가 거절당하는 일이 아니다.”


누군가 한 사람과 이별했다고 해서 내 존재 전체가 거절당한 것은 아니며 내 가치마저 없어진 것은 아니다.


이별이든 사별이든 한 사람을 잃는 일이 자신의 존재 전체를 잃는 일은 아니다특정 대상과 맺고 있던 관계를 잃는 일이며그 관계에 투자하던 내면의 일부분을 잃는 일이다상실감 이외에 본래부터 가지고 있던 자신의 존엄성용기지혜공감 능력 등은 여전히 그곳에 있으며그것이 우리를 건강하고 안전한 곳으로 이끌어 갈 것임을 믿는다.”


용서에 관한 다음과 같은 표현도 인상적이었다.


정말로 용서하고 싶지 않다면 억지로 용서할 필요는 없다용서하지 않고도 과거를 정리하고 화해할 수 있다하지만 용서하면내면 깊은 곳으로부터 용서할 수 있다면 가해자보다 강해졌다는 뜻이다진정한 자유는 용서한 사람이 받는 선물이다.”


진정한 자유는 용서한 사람이 받는 선물이란 이 말. 그리고 내면 깊은 곳으로부터 용서할 수 있다면 가해자보다 강해졌다는 뜻이라는 이 말. 이 말들을 기억하고 싶다. 이 책 모든 내용의 결론으로 나는 다음 문장을 들고 싶다.


왜 사는지 아는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안다. (중략우리는 복수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랑하기 위해서행복해지기 위해서 살아간다는 사실을 기억한다.”


왜 사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이것만은 안다. 나는, 우리는 행복해지기 위해서 산다는 사실 말이다. 나는 나를 비롯해 나의 사랑하는 사람들이 행복해지기를 매년 기도한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 안에는 나도 들어 있다. 내가 왜 살아야 하는지, 나의 존재의 의미는 무엇인지는 알지 못하지만,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 산다는 그 사실만큼은 분명히 안다.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책이다좋은 책을 만나면 언제나 위로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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