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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 Oct 17. 2020

김형경의 <만 가지 행동>

무언가를 키운다는 행위는 생명력을 느낄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식물을 키울 수도 있고 강아지를 키울 수도 있으며 사랑스런 아이를 키울 수도 있다. 그리고 자기 자신을 키울 수도 있다.

나는 무언가를 키우는 게 좋다. 변화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기쁨을 즐긴다. 늘 잔잔한 평온함을 꿈꾸면서도 일직선과 같은 평온함보다는 차라리 역동하는 물결선처럼 변화하는 삶을 고대하기도 한다.


나는 나를 키운다. 내가 자주 쓰는 말이다. 어제보다 조금은 더 마음이 온화해지고 조금 더 사람들을 품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마음속 독(毒)들을 소화시킬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해 나가길 바란다. 지금까지는 그런 부분들이 불완전했기 때문에 세상과 부딪히고 사람과 삐걱거렸다. 이제는 조금씩이라도 세상과 사람과 맞추어가며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김형경의 일련의 책들, 그리고 이 책은 아마 그런 나의 오랜 바람이 이끈 자연스런 만남일지도 모른다.


며칠 전, 그동안 늘 불편함을 마음 한 구석에 느끼고 있던 사람과 만날 기회가 있었다. 평소의 나라면 우선은 그 만남을 피했을 테고, 만나고 나서도 불편한 마음에 어쩔 줄 몰라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엔 피하지 않았다. 알고 싶었고 보고 싶었다. 나는 얼마나 성장했을지 시험해 보고 싶었다.

한동안 불편한 느낌을 주는 사람들에 대해 생각하기에 앞서, 무엇을 나는 불편해 하는지 그 이유는 무엇인지 생각해보곤 했다. 그리고 실제로 그 만남의 자리에서 나를 들여다보았다. 불편해 하는 나를 보는 게 싫어서 무조건 회피했었는데 이제는 조금은 자연스럽게 그 자리에서 사람들을 바라볼 수 있고 나 자신을 바라볼 수 있었다.


마음을 비우라는 말의 진짜 의미는 무의식에 억압하고 회피해 둔 것들을 끄집어내어 자기 것으로 인정하고 의식 속으로 통합하라는 뜻이었다정확하게 표현하면 마음을 비우는 게 아니라 외면해 온 마음을 끌어안는 일일 것이다무의식 속 결핍결함결점들을 내 것으로 인정하자 내면이 가볍고환하고편안해졌다간혹 불편이 느껴지는 일을 만나더라도 이렇게 생각하면 금세 답이 나왔다.

지금 불편을 느끼는 내 마음은 무엇이지’”


마음 비우기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곤 했다. 비운다는 것은 무엇이며 어떻게 할 수 있을지 알고 싶었다. 위의 문장을 읽으며, ‘비우다’라는 단어 그 자체와는 오히려 반대 뉘앙스라는 점이 처음엔 의아했다. 하지만 나를 불편하게 했던 것들을 돌아보며 버리기 위해서는 끌어안아야 한다는 것을 실제로 실행해 보았다. 몇 번의 반복 경험을 통해, 이제는 저자의 이 말이 무슨 의미인지 조금씩 이해가 된다. 언젠가 내 마음을 끌어안아 비움을 배우고, 그러고 나서 사람들의 마음을 끌어안을 수 있게 되고 싶다.


글쓰기는 인정받고 지지받기 위한 방편이 아니라 나의 삶의 일부이며자기실현 과정이며나의 경험을 독자들과 나누는 방법이었다어떻게 독자들과 잘 소통할 것인가에만 마음을 쓰면 되었다.”


곳곳에 글쓰기에 관한 표현이 들어 있었다.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일기를 쓰며 무의식적으로 자신을 치유하는 방법으로 썼다는 말이나, 글쓰기를 통해 세상을 이해하면서 자기 정체성을 형성해 갔다는 것. 저자는 자신에게 있어 글쓰기는 성장기 내내 심리적으로 나를 지켜 준 도구라고도 표현한다.


저자에게 글쓰기가 가지는 의미의 무게만큼은 아니겠지만, 저자의 글쓰기에 대한 그런 마음이 나와도 일부 연결된다. 내가 나로 있을 수 있는 공간이 일기, 끼적거림이라는 것, 그것이 나를 숨 쉬게 한다는 것, 그것은 나도 마찬가지다. 아마 저자의 일련의 책들이 나의 일부로 여겨진 것은 이러한 교집합으로 인해 동질감을 느낀 탓인지도 모른다.


나의 존재를 타인에게 증명할 이유가 없으며나의 삶을 누군가에게 승인받을 필요가 없었다.”


존재의 이유, 살아가야만 하는 이유에 대한 답을 찾던 나의 오랜 질문에 종지부를 찍게 한 것은 아마 이 저자의 책이 아닐까 싶다. 물론 이 저자의 일련의 책이 해답지라는 것은 아니다. 답을 찾아 헤매는 동안 곳곳에서 비슷한 생각을 들었고 그때는 튕겨나가거나 이해하지 못했는데 드디어 저자의 책에서 비로소 마음으로 흡수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일 게다.


나는 나의 존재의 이유와 의미에 대해 누군가에게 증명할 필요도 없으며 승인받을 필요도 없다. 나뿐만 아니라 우리는 세상에 태어났다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 가치가 있고 의미가 있다. 아이가 엄마에게 사랑받기 위해서는 예쁜 짓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아이의 존재 자체가 엄마, 아빠에게는 사랑이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우리의 존재 자체만으로 인생으로부터 무상의 사랑을 받는다. 아직도 이 말을 가슴 깊이 새기지 못하고 가끔은 피부에서 들뜰 때도 있지만 끊임없이 머릿속 이 말을 가슴으로 내려가도록 하고 싶다.


인생은 어떤 것이 아니라 항상 어떤 것이 되는 기회바로 그것이다,”


불완전한 모습의 나와 우리지만, 우리는 죽은 인형이 아니며 고인 물이 아니다. 우리는 항상 그 어떤 것이 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고 있다. 그것이 우리를 살게 하는 것이 아닐까.


자기 마음의 주인이 되는 것자기 인생의 주인이 되는 것그것이 바로 내가 이해한 어른의 의미였다.”


늘 내 마음의 주인이 되고 싶었다. 내 시간의 주인이 되고 싶었고 내 인생의 주인이 되고 싶었다. 그런 바람은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그렇기 때문에 책을 읽고 나를 돌아보고 해내지 못했던 것들을 수첩에 적으며 하나씩 숙제처럼 해결하고자 한다. 흐르는 삶. 고인 물이 아닌 흐르는 삶을 살고 싶다.


모름과 혼돈 상태에 머물 때에야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하고 신비로운 세계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늘 정확한 답을 요구하고 명확하지 않으면 움직이지 못했다면 이제는 ‘모르는 채로 머물기’를 해 보고 싶다. 늘 그래왔던 나를 앞으로도 늘 그래야 한다고 속박하고 싶지 않다. 그동안은, 내 문제의 답을 찾기 위해 내 속으로 점점 파고들었다면 이제는 내 문제의 답을 타인의 말을 통해 찾는 법을 배우고 싶다. 오늘 내가 만나는 사람들, 비록 나와 교집합이 없는 사람들일지라도 그럼에도 그들에게 배울 수 있는 것들을 찾을 수 있게 되고 싶다.


세상은 신비하고삶은 기적 같고존재는 불가사의하다.”


이 책의 서평 마지막은 위의 문장으로 마치고 싶다. 서평을 쓰다보면, 가끔 내가 읽었을 때와는 다른 느낌으로 내용이 채워질 때가 있다. 이번 서평도 내가 생각했던 내용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다. 아마 이 책의 줄거리와도 다소 어긋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핵심적인 주제를 건너뛰며 부수적인 부분들에 집중한 서평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이 서평이 이 책에 대한 가장 솔직한 지금의 감정이다.


세상은 살만하고, 삶은 기적이며 우리의 존재는 불가사의하다. 이 말이, 이 책의 많은 훈습과정의 결과, 결국 우리의 마음에 ‘심어야 할 꽃’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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