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정 Oct 17. 2020

엘리자베트 벡 게른스하임의 <모성애의 발명>

책을 통해, 고정관념인지조차 의식하지 못했던 사실에 대해 다른 관점이 있다는 걸 알게 되면, 한동안 머리가 멍한 상태로 있게 된다. 예전에 긍정적 사고에 대한 비판적인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걸 ‘긍정’하던 내게 그 책은 충격적이었다. 긍정주의 뒤에 숨어있던 검은 의도는 전혀 예상치 못했다. 물론 처음에는 그런 생각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아마 서평에서 그 글을 부정적으로 썼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아주 서서히 그 글이 무슨 의미였는지 이해하게 되었다.

이 책도, 나의 근본적인 믿음을 뒤흔든 꽤 충격적인 내용이다. 나의 그동안의 고정관념이 뒤틀려지고 깨지고 부서졌다. 과연 어떻게 서평을 써야 하는가 오랫동안 고민하게 만들었다.


오늘날 우리에게 친숙한 모성의 형태는 의외로 아주 새로운 제도다또한 유례가 없는 것으로 부유한 사회의 산물이다.”


어린 시절 엄마와 맺은 애착관계에 따라 그 아이의 심리적 안정이 결정된다는 시각의 책을 즐겨 읽었다. 우르술라 누버의 <심리학이 어린 시절을 말하다>, 알리스 밀러의 <천재가 될 수 밖에 없는 아이들의 드라마> 등의 심리학 관련 도서는 물론, 소설 장르로는 김형경의 <사람풍경>, <좋은 이별>, <만 가지 행동> 등에서 그런 내용들이 담겨 있다. 이런 일련의 책을 읽으며 어린 시절 부모, 특히 어머니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로 인해 평생 가슴 저 깊숙이 상처를 안게 된다는 것, 그렇기 때문에 제대로 된 사랑과 관심이 중요하단 생각을 많이 해 왔다. 부모의 마음이 상처 받은 그대로라면 그 감정이 아이에게도 대물림된다는 사실도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어린 아이를 혼자 놔두고 일하는 것보다는 경제적으로 조금 가난할지라도 아이에게 생활을 맞추어야 한다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부모의 생활을 놓지 못하는 건 이기적이란 생각도 했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난 지금은 조금 혼란스럽다.


이 책은, 일과 가정의 양립 문제, 육아와 교육 문제, 아이 문제를 다루고 있다. 독일의 문제를 쓴 것이지만 오늘날 한국의 문제로 보아도 전혀 문제가 없다. 먼저 이 책의 제목인 ‘모성’이란 것의 내용부터 살펴보자. 어머니 노릇이라 부르는, 자녀교육의 중요성은 언제부터 시작된 것일까.

저자에 의하면, 모성이라는 의미의 어머니 노릇은 19세기 말 여성들의 직업 활동이 활발해지기 시작하며 등장했다. 중간 부르주아나 상층 부르주아계급의 기혼 여성들은 과거의 일상 노동에서 많이 자유로워지지만 직업을 갖기에는 여전히 많은 제약을 받았다. 따라서 그 여성들은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고자 자기만의 직업을 만들어 내는데 바로 그것이 “자녀교육”이다.


약간의 하인을 두고 시장을 통해 집안 살림을 꾸려가는 상류 부르주아계급의 여성들을 보자이들은 농장이나 가내공장에서 일하면서 겪게 되는 근심과 고통에서 자유롭다그러나 동시에 이런 노동을 통해 얻는 경험을 가지지는 못한다그 경험이란 자신의 능력을 평가하고 성취를 경험하며 인간과 가축자연과의 활발한 교류 속에서 자신이 쓸모 있다는 초보적인 느낌을 얻는 것을 말한다또한 한 집안이 해체됨으로써 자유의 공간이 탄생하는데이것은 비어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부르주아 여성의 역할 반경이 그토록 협소하다면 무엇으로 그 빈 공간을 채울 수 있겠는가일상에 더 많은 의미와 근거몰두와 만족을 주는 것은 어머니 역할뿐이다이제 어머니 역할은 전문적이고 미래 지향적이며 모든 능력을 발휘할 것을 요구하는 사명으로 정의된다.”


이 부분이 나에게는 다소 충격적이었다. 하지만 생각할수록 자연스러운 흐름이란 걸 알 수 있다. 노동의 의미, 가치는 돈에만 있지 않다. 우리는 노동을 통해 존재의 의미를 확인할 수 있고, 자신감과 독립성을 얻는다. 또한 노동의 대가로 받는 돈은, 자신만의 소망과 계획을 가질 수 있게 한다.

매일 갈 곳이 있고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있으며 그 가치를 눈에 보이는 무언가로 타인을 통해 확인받는 것, 그것은 마치 공부한 노력의 정도를 성적표로 확인받는 듯한 느낌이기도 하다.


대학원에서 졸업논문을 쓰던 시절, 나는 그런 가시적인 성적표를 갈구했었다.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그 ‘열심’의 결과를 얻지 못하고 지도교수님께 계속 지적받으며 나는 과연 성장하고 있는가, 후퇴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알 수 없어 괴로웠다. 내 노력의 결과가 성적표처럼 눈에 보이는 무언가로 나타나, 어디가 부족한지 알려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생각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인생을 제대로 살고 있는지, 어디가 부족한지를 측정할 수 있는 지표가 있었으면 좋겠다.


점점 더 많은 여성들이 고등교육을 받게 되자 직업에 대한 욕구 역시 분명하게 증가했다많은 여성들은 단지 돈벌이만을 위해 직업을 가지려는 것이 아니라 독립성을 원하며그래서 결혼과 출산 이후에도 계속 직업을 가지려 했다그러나 노동세계에는 그런 이중 부담을 위한 자리가 없기 때문에 두 영역에 참여한 여성들 중 다수가 일상생활에서 지속적으로 긴장 상태를 경험했다.”


대학원 졸업 후 바로 결혼한 친구가 있다. 나보다 더 똑똑하고 뛰어난 성적이었지만 결혼 후 집에서 육아만 하다 보니 많이 지친 듯 보였다. 자신의 존재의 의미에 대한 갈급과 삶의 회의, 아이를 사랑하지 못하는 자신을 자책하며 아이들이 유치원이나 학교에 간 동안에는 바깥을 배회하는 듯했다. 그 친구와 연락을 주고받던 것은 몇 년 전이다. 나는 그때도 지금도 결혼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그 친구의 그 공허함을 이해하지 못했다. 분명 그때보다는 조금 더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할지라도 나는 그 친구의 마음을 온전히 이해하진 못할 것이다.


그때는 그 친구의 그런 투정이 배부름으로 느껴졌다. 경제적인 어려움도 없이 원하는 것은 모두 갖추었으면서 무엇이 불만일까, 라는 생각을 했다. 원하는 사람과 사랑해서 선택한 결혼이며 아이들도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다. 한 해에 몇 번씩 해외여행도 가고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살 수 있고 할 수 있다. 그 친구에게는 무엇이 부족한 것일까. 이해할 수 없었다.


결혼을 한 사람들은 알 수 없겠지만 누구나 원한다고 결혼할 수 있는 것은 아니란 생각을 하곤 한다. 요즘은, 결혼이란 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는 ‘선택’ 사항이 되었다고 하지만 그럼에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사람들도 많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그 친구의 투정이 그저 배부른 소리로 들렸다. 나의 편협한 생각이었다. 이제야 그걸 알게 된다.


오늘날 어머니가 되는 것을 가로막는 가장 결정적인 장애는 개인적인 자유를 바라는 마음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어머니도 여자이며 사람이며 한 명의 개인이라는 사실. 나는 그것을 가슴 깊이 이해하지 못했다. 부모로부터 충분히 사랑받지 못했다는 것이 어른이 된 지금의 나에게 큰 상처로 남았다고 생각하기에, 어머니, 부모의 자리에 대한 이상과 기대가 지나치게 큰 것일지도 모른다.


과거에는 남자가 바깥에서 일을 하고 여자는 집에서 아이를 보며 집안일을 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었다. 하지만 산업화 이후 여성들의 사회진출이 늘어나며 여성들도 직업을 갖게 되었다. 더 이상 돈을 목적으로만 직업을 갖지 않게 되었다. 그렇지만 여전히 아이에 관한 문제는 여자의 문제, ‘어머니’ 역할로 남아 있다.


어머니 노릇은 남성과 여성의 삶의 가능성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를 고착시킨다남성에게는 시장이 요구하는 독립성이여성에게는 육아가 요구하는 자아 포기가 삶의 가능성이 되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가 있는 여성은 자신의 인생을 바꿔야 하는데 아이가 있는 남성은 생애의 한 시기만을 바꾼다는 사실이다이 말은 아이가 있는 남성은 계속해서 자기실현을 할 수 있지만여성은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과거의 중상층 부르주아계급 기혼자들이 어머니 노릇을 강조하던 그 시대 그대로 오늘날에는 어머니의 역할을 완수할 수가 없게 되었다. 결혼은 선택이 아니라 당연한 일이었던 시대에는 아이를 갖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자신을 희생해가면서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야 하는가에 의문을 던지는 여자들이 많아지고 있다. 이러한 의문과 망설임, 신중한 검토는 단순히 개인적인 갈등이 아니다라고 저자는 말하며, 또한 그 이면에는 전근대사회에서 근대사회로의 획기적인 변화가 놓여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유능한 실력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아이들만을 돌보며 집안에 갇혀있는 생활을 괴로워했던 친구의 마음의 혼란은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라 오늘날의 시대를 반영한 괴로움이었다. 저자는 말한다. 직업과 아이의 바람직한 조화란 환상이다다시 말해 그것들은 전혀 조화를 이룰 수 없다. (중략노동에 노동을 더하는 것이다그리고 그 결과는 기진맥진이라고.


이 책을 읽고 혼란스럽다는 표현을 서두에 쓴 것은 이런 부분들이다. 모성의 근원이 무엇이며 왜 현재 육아문제나 결혼에 있어서의 남녀평등 문제가 일어났는지를 역사적인 흐름을 통해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 원인들을 알고 나서 내가 내릴 수 있는 결론, 판단은 아무것도 없다.


노동 및 경제 공동체로서의 가족이 해체됨에 따라 노동시장의 매개를 거처 개개인과 관련을 맺는 생존 보장 형태가 새롭게 등장했기 때문이다이때 직업을 가진 사람의 행동은 사적인 구속을 거의 고려하지 않는 시장의 법칙예컨대 유동성과 유연성경쟁과 출세에 종속된다이 법칙을 따르지 않는 사람은 일자리와 수입그리고 사회적 지위를 내놓아야 한다.”


친구들이 모이면 마치 서로 누가 더 고생하는지 내기라도 하는 듯, 잔업을 얼마나 많이 하는지 상사는 얼마나 악독한지 얘기하느라 정신이 없다. 누가 더 많이 잔업을 하고 일에 시달리는지의 강도가 마치 자랑인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시간의 여유가 있고 자기 시간을 쓸 수 있는 사람은 마치 사회에서 도태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회사 인간으로 사는 게 당연한 것일까, 라는 생각마저 든다. 그렇게 잔업이 당연시되고 주말에도 갑작스레 출근하는 생활, 가족이나 사적 생활이 없는 생활을 하면서 결혼이나 육아를 건강하게 지속할 수 있을 것인가, 라는 의문이 든다.


만날 때마다 회사를 관둘 거라는 말만 하고, 결혼은 하지 않고 자유를 누리겠다는 친구. 그 친구의 삶의 방식도 오늘날에는 하나의 방식이 되었다. 더 이상 특이한 생각은 아니다. 하지만 그런 선택 뒤에는 자유는 얻을 수 있지만 고독과 외로움을 메우기 위한 무언가가 필요해질 것이다.


“‘대중사회 속의 고독’ ‘내면의 고향 상실’ ‘자유의 추위’ 같은 표제어는 근대의 시작과 함께 생긴 자유가 개인에게 도전을 의미하는 동시에 과도한 요구가 된다는 사실을 암시한다여기서 다양한 출구들이 나타난다어떤 사람들은 더 많은 노동과 더 많은 소비에 의지한다어떤 사람들은 구원과 고향을 약속해주는 종교나 정치적 분파에 가담한다또 어떤 사람들은 사적인 길을 선택해 도피로서의 사랑이나 냉혹한 세상에서 항구가 되는 가족을 추구한다개별적으로 매우 상이한 형태로 나타나지만 이런 추구가 공통적으로 가리키는 핵심은 하나다근대의 근본 주제는 자유와 구속의 긴장 관계라는 사실이다.”


현실을 인지하면 할수록 혼란스러워진다. 다른 누군가와 함께 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란 생각도 든다.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라는 것은 혼자서는, 혹은 둘이서는 해결할 수 없는 사회구조적인 문제라는 의미다. 곧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말이기에 힘이 빠지기도 한다.


학자들이 제안하는 것은 동반자 관계남녀평등여성해방이다독립과 자기 인생에 대한 젊은 여성들의 기대를 수용해 살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십년, 오십년, 백년이 지나 과거 이렇게 여성들이 육아와 사회진출로 인해 고민하던 시절도 있었다며 웃으며 얘기할 수 있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재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저자의 다음 문장이다.


현실의 조건이 현재와 같은 한이 나라의 아이들이 학교에 늦게 등교하고 낮에 일찍 하교하는 한언제 어디에나 항상 존재하는 어머니가 신화로 미화되고 직장이 있는 어머니들이 냉혹한 어머니로 낙인찍히는 한아버지들이 가사에 참여할 자세를 거의 보이지 않고 육아휴직이 전적으로 여성에게 맡겨지는 한아이를 가진다는 것은 여성에게 위험을 의미한다.”


이 책을 읽으며 책의 중요성에 대해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지금 현재라는 시간을 알기 위해서 과거를 보아야 할 때가 있다. 한 사람 개인의 문제가 알고 보니 전체 역사적인 관점에서는 큰 흐름의 하나였다는 걸 알게 되면 왠지 구원받은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마치 달리는 기차 안에서 내가 있는 칸 안의 문제들만 들여다보다가, 이 기차가 어느 방향으로 가고 있고 어디서 출발했는지 알게 되는 느낌과도 같다.


여전히 답을 얻지는 못했고 답을 얻었다고 내 인생이 쉽게 바뀌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책을 통해 내가 이해해주지 못했던 친구의 마음과 또 다른 누군가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히 여기려고 한다.

작가의 이전글 <사랑은 지독한 그러나 너무나 정상적인 혼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