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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 Oct 17. 2020

<사랑은 지독한 그러나 너무나 정상적인 혼란>

엘리자베트 벡의 <모성애의 발명>이란 책을 읽고 또 다른 책인 이 책도 읽게 되었다. 이 책은 [책을 펴내며]에도 쓰인 바와 같이 부부가 함께 사랑의 문제를 본격 탐구한 연구서다.


책을 읽다보면, 그 속에서 부러운 것, 갖고 싶은 것들을 자꾸 발견하게 되곤 한다. 이 책에서는, 부부가 함께 하나의 책을 썼다는 점이 제일 부러웠다. 그리고 책을 읽으며 비슷한 내용이 다른 언어로 반복된다는 생각이 들었던 이유를 비로소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하나의 장면, 상황을 두 사람이 함께 쓴 책으로, <냉정과 열정사이>가 있다. 에쿠니 가오리와 츠지 히토나리라는 두 작가에 의해 하나의 인생이 완성된다. 그 책에 대한 평가는 다소 의견이 갈리기는 하지만 그렇게 하나의 장면을 두 사람의 시각에서 썼다는 점이 신선하게 다가왔던 기억이 있다.

이 책을 읽으며 그 책을 떠올렸다. 그리고 이런 상상도 해 본다. 작가 부부가 만나 사랑의 시작부터 결혼, 육아, 말년에 이르기까지 각자의 시각에서 글을 써 간다면 어떤 모습일까. 상대방을 이해하고 싶어도 이해할 수 없는 영역에 대해,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책을 펴내며]에는 이 책에 대한 다음과 같이 설명이 있다.


삶은 감정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사람들은 돈을 벌어야 하고돈을 벌기 위해 일자리를 얻어야 하고일자리를 얻기 위해 교육받고 훈련받아야 하며 그런 와중에 사랑을 해야 한다저자들은 근대성의 근간을 이루는 산업사회의 구조를 들여다보고 산업 사회의 노동시장이 개인에게 요구하는 명령들을 살펴보면서 남녀 사이의 사랑에 작동하는 구조적 힘들을 밝혀낸다.”


현대인들이 ‘사랑’에 지나친 희망을 둔다는 저자의 관점이 솔직히 나에게는 약간의 충격이었다. 얼마 전까지는 사랑은 그저 이성 간의 사랑이 대부분이며 이성 간의 사랑은 사치라고 생각했던 적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사랑은 많은 형태가 있으며 다양한 사람들 간의 사랑으로 인해. 극단적으로 말하면 사랑만이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것일 수도 있단 생각도 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런 사랑에 대한 예찬이 지극히 현대적인 산물이었다는 걸 듣고 조금 놀랐다.


근대성의 등장으로 개인은 미리 정해진 신분적 운명이나 전통’, 또는 자연적 제약으로부터 자유로와졌지만 이 자유는 또한 무한정의 불확실성타협선택지들 앞에 내던져질 자유이기도 했다. (중략현대인은 집단 소속도전통도 떨쳐낸 오롯한 로서 이러한 불확실성의 세계를 항해하도록 요구받는다그러한 그/그녀에게 사랑은 그 자신을 정박시킬 수 있는 마지막 희망이다내 신분내 계급내 직장내 국적그 어느 것도 진정한 를 보증해 주지 못하는 것으로 판명날 때사랑은 나의 존재와 나의 존재의 의미와 나의 진정한 자아를 확인시켜 줄 최후의 보루이다.”


그런데 문제는 최후의 보루로 남긴 사랑, 결혼, 부모 되기 등이 더 이상 의무가 아닌 선택이 되었다는 것이다. 로미오와 줄리엣 시절과 같은 전통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졌지만 이제는 우리는 노동시장에 속박되어 있다. 가족들과의 시간은 일하지 않는 시간에만 가능해졌다. 일을 적게 할수록 경제적인 자유는 줄어들고 경제적인 자유를 얻기 위해서는 반대로 개인적인 시간을 바쳐야만 하는 또 다른 속박의 시대에 살고 있다. 하지만 노동시장에 그렇게 전 삶을 바친다고 해서 경제적으로 부유해지는 것도 아니며 평생 그 경제적인 면을 보장받지도 못한다. 이런 환경에서 결혼한 두 사람은 또 다른 문제에 직면한다.


재정적인 독립과 취업에 대한 여성들의 관심은 애정어린 부부 관계와 모성에 대한 요구와 충돌한다. (중략여성이 개인으로 되어가는 복잡한 과정 전체가 자기 자신의 인생을 사는 것과 다른 사람을 위한 존재’ 간의 불편한 동요를 드러내주고 있는 것이다.”


그 어느 시대보다 사랑이 필요한 시대가 되었고 그 사랑으로 하나가 된 가정 안에는, 전통사회에서처럼 가족을 위해 삶을 희생할 엄마와 아내가 사라지고 있다. 여성들도 교육을 받게 되고 사회에 진출하게 되면서 가정에는 아이들만 남게 된다. 예전의 전통적인 삶의 방식이 고정관념처럼 머릿속에 남아 있지만 사회는 빠르게 변하고 있기 때문에 더 이상 그 방식은 통하지 않는다. 그로 인해 이곳저곳에서 많은 문제도 발생한다.


결혼은 곧 자신의 삶의 포기인 듯한 이미지도 있다. 결혼자체를 기피하는 젊은이도 많아지고 있다. 결혼을 통해 행복해지고 안정되길 원했지만 오히려 결혼이 갈등을 만들고 있는 면도 있다. 마치 아이는 이제 어른이 되었는데 어릴 때 입던 옷을 억지로 입혀 놓은 듯한 답답함이다.


평등하고 자유롭기를 원하는 두 개인은 과연 어떻게 두 사람의 사랑이 자라날 수 있을 공동의 지반을 찾아낼 수 있을까? (중략어쩌면 먼 미래에 이 두 평행선은 결국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어쩌면 그렇지 않을지도 모르고지금 우리는 결코 그것을 알지 못한다.”


불안한 사회에 대한 도피처로 선택한 영원한 안식처 결혼. 저자는 말한다. 오늘날의 가족과 결혼을 하나로 묶어 주는 것은 물질적 안정과 애정이라기보다는 오히려 혼자가 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라고.

이런 종류의 책을 별로 안 읽은 탓일까. 모든 내용들이 신선하다. 늘 나의 문제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알고 보니 시대적 사회적 문제였던 것이란 걸 알게 된다.


저자는 현대에 만연하는 사랑으로 인한 문제들에 대해 몇 가지 해결법을 제시한다.


가족을 개방적으로 만들어 가족 구성원들이 홀로 있기를 꿈꿀 수 있게 하는 것이와 동시에 정체성 위기와 결혼의 소용돌이보다 오래갈 수 있는 우정의 망을 키우는 것은 기대가 지나치게 부푼 결혼을 구제하고 이혼의 공황과 혼란을 가라앉힐 수 있는 두 가지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달리는 기차에서는 기차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어디에서 출발했는지 알 수 없다. 우리는 역사 속에 살고 있다. 지금이라는 시간이 지나, 언젠가는 조금 더, 남자와 여자가 도망치듯 외롭지 않기 위해 결혼을 선택하지 않고 결혼이나 아이가 자아의 방해물이라 여겨지지 않는 시대가 왔으면 좋겠다. 그리고 오로지 일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인 듯, 일하는 삶이 바람직한 삶이라는 듯한 인상을 주지 않는 시대가 오길 바란다.


혼자서도 살 수 있는 두 사람이 만나 하나가 되는 것, 그게 바람직한 사랑이라고 나 나름대로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또한 한때는 지금 이곳이 싫어 저곳으로 가고 싶단 생각을 하던 때도 있지만 지금은 알았다. 이곳이 싫다는 마음이 있다면 이곳이 아닌 어느 곳을 가도 똑같다는 것을.

이 기차가 어디에 도달할지 알 수 없지만 그래도 희망을 놓고 싶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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