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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 Oct 17. 2020

존재 양식으로서의 경험의 공유

나는 당신에게 말했다.


"이렇게 아름다운 장면도 사진으로 찍고 나중에 보면 뭔가 아쉬운 거 같아요. 사진으로는 도저히 다 담지 못한다는 걸 매번 느끼게 되요."


나의 이 말에 당신은 말했다.


"그래서 네가 여기에 와줘서 좋았어. 여기가 어딘데 어디가 어떻게 너무 아름다웠어, 라는 설명을 굳이 하지 않아도 되니까. 나중에 언젠가 이 사진을 보면 이 사진만으로는 미처 담지 못하는 것이, 공유할 수 있는 경험이 우리 사이에 생긴 거니까."


누구보다 나는 언어를 사랑하고 언어에 빠져 있다. 하지만 그 사랑의 크기만큼 어쩌면 언어의 한계를 어렴풋이 느끼고 있는지도 모른다. 에릭 프롬도 자신의 책에서 이렇게 말한다. 


"말은 경험을 표현하지만, 말 그 자체가 경험인 것은 아니다. 경험한 것을 사상과 말만으로 표현하는 순간에 그 경험은 이미 사라지고 없다. 그것은, 말라 비틀어져서 죽은 단순한 사상이 되어 버린다. 그러므로, 존재는, 말로는 묘사할 수 없고, 경험을 서로 공유하는 것에 의해서만 그 전달이 가능하게 된다. 소유 구조에 있어서는 죽은 언어가 지배하는 반면, 존재 구조에 있어서는 살아 있고 표현 불가능한 경험이 지배한다.(에릭 프롬의 <소유나 존재냐>, 육문사, 1993, p137)"


말은 하나의 틀이다. 도저히 전체를 담을 수 없음에도 꾸역꾸역 그 틀 안에 집어 넣는 것이 말, 언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에릭 프롬의 말처럼 "말로는 묘사할 수 없고, 경험을 공유하는 것에 의해서만 그 전달이 가능하게"되는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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