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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 Oct 17. 2020

책을 대하는 자세

# 책을 대하는 자세


가끔 끝까지 읽어나가기 힘든 책을 만날 때가 있다. 다 읽은 후에 서평 또한 쓰기 힘들다. 책의 내용의 문제는 아니다. 나의 자세의 문제다. 보통은 책을 고를 때, 먹고 싶은 음식을 고르듯 가슴이 원하는 내용이 담긴 책에 손을 뻗는다. 읽기 전부터 그 책을 집어 든 것만으로도 이미 설레다. 그러나 가끔 ‘읽어야 하는’ 책을 만나기도 한다. 즉 나의 욕망이 없는 책이다.


책을 전부 읽고도 써지지 않는 서평 앞에서 며칠을 고민했다. 억지로 읽는 것도 사실 힘들었다. 먹고 싶지 않은 음식을, 배고프지도 않은 상태에서 쑤셔 넣는 듯한 느낌조차 들었다. 다행히 끝까지 읽을 수는 있었다. 읽혀지지 않는 한 권의 책을 ‘한 사람’의 인간으로 보고, 그 한 사람이 나 한 사람을 위해 이야기하고 있다고 생각했더니 끝까지 읽을 수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문체는 아니지만, 내가 듣고 싶었던 말은 아니지만, 한 사람의 삶의 이야기라고 생각하니까 들을 수 있게 되었다.


문제는 역시 나였다. 책마다 다른 방식으로 대해야 한다는 걸 잊고 있었다. 시, 소설과 같은 문학책은 내용뿐만 아니라 문체 자체의 매력도 크다. 단순히 겉만 화려한 기술이 아니라 내용을 보다 잘 전달하기 위한 정제된 언어가 많이 들어 있다. 그래서 그 언어를 줍느라 정신없이 빠져든다. 쉼없이 감탄하며 몇 번이고 다시 사랑에 빠지며 책을 읽어나간다. 반면, 철학 등과 같은 인문학 도서는 내용에 집중하는 게 좋다. 내용 자체의 승부일 때가 많아서 문체에 감동할 때보다는 내용 자체에 감탄해서 문장을 줍곤 한다. 다만 애매한 것이 수필이다. 수필은 한 사람의 인생, 삶의 단상들이 들어 있기 때문에 문체나 가치관에서 호불호가 갈리기 쉽다. 호불호뿐만 아니라 맞고 안 맞음이 나에게는 크게 작용한다. 


취향이 아닌 책도 참고 읽어야 하는가, 란 생각을 한참 했다. 다양한 장르의 책을 읽는 것, 물론 그건 좋은 일이다. 좋아하지 않았지만 좋아질 수도 있다. 나는 이것이 좋다, 라는 고정관념에 이것 아닌 다른 어떤 것을 다가오지 못하게 하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하지만말이다. 읽고 싶은 책들을 읽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부족한데 정말 참고 읽어야만 하는가. 한 번도 읽지 않은 게 아니라 읽어도 관심이 가지 않은 장르를 참고 읽는 것, 참아야 한다는 게 과연 더 옳은 일일까. 욕망에 따르는 독서는 나쁜 것인가. 전공 서적을 읽을 때는 흥미 없는 내용일지라도 참으며 끝까지 읽었다. 이해하기 위해 읽었다. 사실 이해해야만 했다. 하지만 지금은 참으며 읽는 독서를 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독서의 목적이 다르기 때문이다. 지금은 욕망에 따르는 독서를 원한다. 지금 나에게 독서의 목적은, 지식의 습득이 아니라 ‘대화’가 목적이다. 말이 통하는 사람과의 대화를 갈망하며 책을 읽고 있다. 다른 생각의 책, 내가 몰랐던 지식을 넓혀 주는 책은 물론 읽는다. 읽으며 감탄하고 다시 한 번 생각을 바꾸고 시야를 넓힌다. 하지만 역시나 숙제하듯 의무로 읽는 책, 맞지 않는 책을 읽는 데에는 반감이 있다.


읽기 힘든 책을 읽어내고, 서평을 쓰기 위해 몸부림치다가, 그 책에 대한 나의 미안한 마음을 변명하며, 사죄하며, 이렇게 글로 남긴다. 어디까지나 이건 지금의 생각이다. 언젠가 나의 마음이 조금 더 성장해서 지금의 생각보다 한 층 더 자라고 조금 더 유연해져 있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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