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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 Oct 17. 2020

나쓰메 소세키의 <한눈팔기>(문학과 식사, 1998)

이 책은 이미 작년에 읽었다. 하지만 불편한 느낌만을 안은 채 서평을 쓰지 못했다. 나쓰메 소세키의 일련의 작품을 읽고 서평쓰기 작업을 하는 요즘, 어떻게든 이 책에 대해서도 서평을 쓰고 싶었다. 단 한 줄이라도 흔적을 남기고 싶었다. 그리고 다시 읽었다. 읽으면서 나는 역시 이 책의 내용을 여전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왜 서평을 쓰지 못했을까를 생각하며 읽어나갔다. 내용이 이해하기 어려운 것도 아니고 구조가 복잡한 것도 아니다. 내 취향이 아니어서도 아니다. 하지만 뭔가 알 수 없는 불편함이 이 책을 정면으로 응시할 수 없게 만드는 느낌이 들었다.


이 작품은 소세키가 완성한 최후의 장편소설이며 그가 쓴 유일한 자전적 소설이다그의 생애 중 이 작품만큼 적나라하게 자신과 주위에 대해 그대로 쓴 작품도 드물다.(p8)”


유일한 자전적 소설이라는 이 책. 이 책의 주인공 겐조는, 유학에서 귀국한 후 대학에서 강사로 일하며 바쁜 일상을 보낸다. 하지만 그의 아내와는 사이가 너무 좋지 못하다. 이야기의 반 이상은 아내와의 말다툼이 다. 그리고 이야기의 나머지 반은, 겐조가 어릴 적 양자로 간 적 있었던 양부모가 느닷없이 매일 찾아와 돈을 뜯어내는 내용이다. 아내의 친정집도 사정이 어려워 돈을 요구하고 자신의 누나 네 집 사정도 좋지 않아 돈을 보태주고 있다. 누나의 건강도 좋지 못하며 누나 네 부부 사이 역시 좋은 편은 아니다.


아내와도 자신의 양부모와도, 형제 사이도 좋지 못하다. 마음을 터놓을 친구도 딱히 없다. 남들 눈에는 유학도 다녀오고 잘난 듯 보이지만 그의 경제 상황은 최악이다. 매일 돈에 시달린다. 그는 아내와의 불화, 경제적인 어려움, 강사로서의 어려움 등으로 인해 신경쇠약에 시달린다.


귀국 후 2년 간은 소세키 생애에서 가장 비참한 시기에 해당된다경제적 핍박아내와의 불화과도한 강의 등그를 둘러싼 주위 사정은 그에게 한치의 여유도 허락하지 않는 것들뿐이었고(p7)”


위의 문장은 ‘옮긴이의 말’ 중 한 구절이다. 그렇다. 책 속의 내용은 곧 그대로 자신의 이야기였다. 생애에서 가장 비참한 시기를 소세키는 그대로 소설로 담고 있다. 어느 것이 소설이고 어느 것이 자신의 이야기인지 구분할 수조차 없다.


두 번째로 이 책을 읽은 이후, 서평을 쓰다 포기하기를 몇 번 반복하던 즈음, 친구를 만났다. 친구와 이 책에 대해 조각조각 이야기를 나누고, 나의 가족이야기, 그녀의 가족이야기를 나누며 이 책을 떠올렸다. 그리고 문득 나에게 묻고 싶어졌다. 부부란 무엇일까. 가족이란 무엇일까, 라고.


끊임없이 서로를 비난하고 지겹도록 다투는 겐조 부부. 서로를 상처 주기 위해 존재하는 것만 같은 가족들. 이 책 속의 그 모습은 현실과 너무 닮아 있다. 그 닮음으로 인해 소름이 끼칠 만큼 무기력해진다.

가족이란 상처를 주고받기 위해 존재하는 것일까. 부부라는 것은 사랑이 아닌, 나는 도저히 알 수 없는 그 어떤 것으로 묶여진 관계인 걸까. 결혼하지 않은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그 무언가로 인해 답답함과 불편함이 책을 읽는 내내, 그리고 책을 덮은 후에도 지워지지 않았다.


아내의 발작은 겐조에겐 크나큰 불안이었다그러나 대개의 경우 그런 불안 위에는 그보다 더 큰 자애의 구름이 드리워져 있었다그는 걱정보다도 측은해졌다약하고 가엾은 존재 앞에 머리를 깊이 숙이고 빌었다. (중략아내의 병은 겐조에게 두 사람 사이를 부드럽게 녹여주는 방법으로서 절대적으로 필요했다.(p211)”


나는 나의 아버지에게 오랜 불만이 있다. 그것이 원인인지 모르지만, 대화가 길어지면 아버지에게 무례한 딸이 되고 만다. 평소에도 애교 없이 무뚝뚝한 막내이면서 굳이 부모 앞에서 옳고 그름을 피력하고 마는 고집스런 딸이다.


어제 아버지가 감기몸살이 심하게 앓으셨다. 젊은 자식들보다 건강하셨는데, 어제는 하루 종일 식사도 못하시고 쇳소리 나는 목소리에다, 어깨마저 구부정한 자세로 식탁에 앉아 몇 수저 뜨지 못하시고 결국 누으셨다. 약한 소리는 결코 안하시던 아버지가 아프시단다. 차라리 미워하고 원망할 수 있다면 마음이 편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동안의 툴툴 거리던 모습은 사라지고 이것저것 챙겨드리며 살갑게 몸 상태를 묻고 있는 나와 언니가 있었다. 그리고 이 책이 떠올랐다. 이런 게 가족인 것이구나, 라고.


주인공 겐조가 그렇게 아내와 다투고 아내가 친정에 가길 바라고 가고 나면 오라고도 안 하고 자유로운 시간을 한 달 넘게 만끽하는 그. 아내에 대한 불만, 불평을 끊임없이 토로하면서도 그럼에도 그녀의 존재를 필요로 하는 사람. 부부라는 건, 연인이 아니라 가족이었던 것이다. 참 당연한 이 말이 피부로 다가온다.


그는 왜 자기가 가장 비참했을 때의 모습을 일부러 써서 세상에 발표했을까그것도 그의 생명이 앞으로 일 년 반밖에 남아 있지 않은 시기에.(p8)”


‘옮긴이의 말’ 중에 있던 질문이다. 이 질문을 읽고 난 참 당연하다는 듯 내 안에서는 바로 답이 나왔다. 가장 비참했기 때문에 글로 남길 수밖에 없었던 것이 아닐까. 더구나 앞으로 생명이 1년 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에 더더욱 글로 남길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무의미하게 시간을 죽인다는 건 그가 무엇보다도 두려워하는 것이었다그는 살아 있는 동안 무엇인가를 완수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에 사로잡힌 남자였다.(p63)”


주인공 겐조의 대사다. 무의미하게 시간을 죽이는 걸 참지 못하는 사람이다. 양부모가 돈을 달라고 찾아와 돌아가지도 않고 계속 그의 서재에 눌러 붙어 있을 때, 돈을 얼마라도 쥐어줘야 그제 서야 일어설 때, 겐조는 그 시간들이 아깝다는 생각을 한다. 그런 시간들이 무의미하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그런 그를 신경쇠약이라고 하고, 자기 자신은 성격이라 생각한다. 신경쇠약인지 성격인지 알 수 없지만 무언가 의미 있는 삶을 살고 싶다는 그의 바람은 소설 전체적으로 강하게 전달된다.


형은 과거의 사람이었다화려한 전도(前途)란 이미 그에게 없었다말끝마다 옛날을 돌아보려는 그와 마주앉은 겐조는자기가 걸어가려는 방향에서 거꾸로 끌려나오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외로워,’

형과 같은 길을 가기에는 미래의 희망을 잔뜩 가지고 있었다그러면서도 현재의 그는 몹시 외로움을 탔다어쩌면 그 현재에서 차츰 다가갈 미래 또한 외로움뿐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p102~103)”


그는 비참한 ‘현재’를 벗어나 앞으로 앞으로 나가고 싶었다. 하지만 그의 과거가 발목을 잡고 꼼짝도 하지 못하게 한다. 그 과거는 현재와 이어져 있고 아마도 미래와도 연결되어 있을 게 당연하다. 과거를 보고 싶지 않은데 매여 있어야만 하는 갑갑함. 그런 그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었을까.


그의 노트 역시 더워 숨이 막힐 만큼 작은 글자로 깨알처럼 씌어져 있었다개미가 기어간다고밖에 형용할 수 없는 그 초고를 가능하면 많이 만드는 게 그때의 그로서는 가장 유쾌하면서 고통스러웠다그것은 또 그의 의무였다.(p149)”


가장 비참한 시기를 유일한 자전적 소설로 남긴 나쓰메 소세키. 옮긴이는 왜 이 시기를 글로 남겨 발표했는가, 묻고 있지만, 가장 비참하기 때문에 ‘글’로 남긴 것이 아닐까, 라고 질문을 처음 읽은 그 순간부터 나는 생각했다. 자신의 상처를 되새김질하듯 글자로 적어가던 그. 고통스러웠겠지만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작가로서의 자신의 ‘의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것이 고통스러울지라도 삶의 고통과 현실의 무게를 견디게 해 주는 나쓰메 소세키 나름의 견딤의 방법이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작가는 아니지만 나의 서평, 독서, 일기, 모두가 그런 식이다. 가장 행복하고 기쁠 때보다는 비뚤어지고 못난 감정일 때 일수록 그것들을 글자로 새긴다. 글자로 새겨 곱씹고 되새기며 나를 객체화한다. 그것이 내가 찾은 나의 삶을 견디는 방식이다.


“‘언제 이렇게 변했단 말인가.’

인간의 변화에만 정신을 쏟고 있던 겐조는 그보다 더 형용할 수 없는 자연의 변화에 놀라고 말았다.

(중략) ‘나 자신은 어떻게 되는 걸까.’

늙어가기는 해도 의외로 불변하는 인간의 모습변해가기는 해도 날마다 번영해가는 교외의 모습이 자신도 모르게 대조적으로 비쳤을 때겐조는 이렇게 부르짖지 않을 수 없었다.(p187)”


나는 단어 혹은 문장으로 사람, 혹은 장면을 기억한다. 최소 수 십 번 이상은 갔던 곳임에도 여전히 길을 못 외우는 나를 위해, 서울 한복판을 설명해 주던 친구. 새로 들어선 건물과 그 안의 맛집과 그 근처의 조형물을 바라보게 하던 친구. 그렇게 거리를 걸으며 변화한 거리를 보며 위의 문장을 떠올렸고 친구에게 이 구절을 말해주었다. 자연, 환경은 변하지만 사람은 결국 변화하지 않는다는 그 말이 너무나 적확하다던 친구의 대답.

저 문장은 이제 그 친구의 것이 된다. 저 문장 안에는 그 친구가 살고 있다.


인간의 겉모습은 해를 거듭할수록 전신으로 변화를 보여주지만 인간의 알맹이만큼은 나이와 상관없이 불변하는 듯 보인다. 그리고 그 불변하는 인간들과의 계속되는 관계를 통해 우리의 매일 매일이 이루어져 있고 그것이 과거가 되고 다시 미래로 이어진다.


“‘지금의 나는 도대체 어떻게 해서 만들어진 것일까?’(p245)”


과거의 무게로 인해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겐조는 이렇게 묻는다. 그도 알 것이다. 지금은 ‘현재’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과거로부터 이어진 것이라는 것을. 그러면서도 그 과거의 무게가 너무 무거워 숨이 막혀 헐떡이고 있는 것일 뿐이다.


너는 무엇하러 이 세상에 태어났는가.(p259)”


그 안에는 이렇게 묻는 목소리가 있다. 무엇하러 이 세상에 태어났느냐고. 그에게는 삶의 의미, 존재의 의미가 필요했던 것이 아닐까, 문득 생각해본다. 하지만 그 목소리에 그는 답을 피하려고 하지만 그 목소리는 계속해서 대답하라고 추궁한다. 그리고 마침내 절규하듯 그는 대답한다, 모르겠어(p259)”라고.


이 세상에 끝나는 것이란 하나도 없어일단 한번 일어난 건 언제까지 계속되지그저 이렇게저렇게 모양이 변하니까 우리가 모르는 것뿐이라구.”(p275)


어제 처음으로 언니에게 들은 이야기가 있다. 어릴 때 나는 엄마의 질투를 살 만큼, 아빠를 따르는 아이였다고 한다. 아빠가 오시면 아빠 품에 쏙 안겨 자곤 해서 엄마를 화나게 한 적도 있다고 한다. 내 기억에는 남아 있지 않고 상상도 가지 않으며 그 흔적은 실오라기만큼도 남아 있지 않다.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과거가 내 안에서 이어지고 있었다. 그렇게 나는, 우리는 살고 있고 앞으로도 살아가겠구나, 라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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