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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 Oct 17. 2020

좋은 이별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생각한다. 

나는 내 삶에서 얼마나 좋은 이별을 했고 얼마나 그렇지 못한, 제대로 상실을 애도하지 못한 것들이 남아 있을까.

제대로 애도의 과정을 거친 것들보다는 그렇지 못해 지금까지 내 행동과 생각에 트라우마처럼 남아 있는 것들이 더 많은 듯 하다.

내가 이십 여년 가까이 다니던 교회를 어느 순간, 마치 천둥이라도 맞은 듯 더 이상 다닐 수 없게 된 것도 상실을 제대로 애도하지 못했던 것이란 사실을 이 책을 읽은 오늘에야 알게 되었다. 이십 여년 가까이, 나의 온 시간을 신에게 바치고 교회에 헌신하던 내가, 그 신의 존재에 대해 의문을 품고 더 이상 기도할 수 없게 된 것은 신의 문제가 아니었고 교회의 문제도 아니었다. 오로지 나의 상실감을 제대로 애도하지 못했던 탓이었다.

오랜 꿈이 좌절되며 괴로웠을 때 그 좌절감, 실패감, 꿈의 상실감에 대한 분노를 나는 신에게 향했던 것 같다. 이 책을 읽기 전인 어제까지만 해도, 내가 교회를 떠난 이유는 그저 나의 믿음에 대한 흔들림이 전부라고 믿었다. 그리고 내가 신이 아닌 내 꿈을 더 우선시 했단 사실에 내 자신에 대해 혐오감을 느꼈기 때문에 떠난 것이라고 믿었다.

이 책을 읽고나서 비로소 내가 교회를 떠난 이유에 대해 알게 된다.


좋은 이별의 기억은 없을까, 생각해 본다. 

처음으로 사랑이 어떤 것인지 알게 해 준 사람이 있었다. 지금도 그 아이가 내게 보여준 눈빛과 행동이 기준이 되어 있다. 그 아이와 같은 눈빛과 진심이 보이지 않는 사람에게는 사랑에 빠지지 못할 것 같다.

별로 술을 마시진 않지만 일 년에 한두 번 정도 마시곤 하는데 그럴때면 어김없이 그 아이가 생각난다. 이미 타인의 남편이 되었지만 내 기억 속에서는 여전히 나의 연인이다. 그 아이에게는 받은 기억밖에 없다. 아무것도 해 주지 못한 것이 늘 마음에 걸린다.

가슴이 시린 날이면 어김없이 떠오르는 사람. 아니 이젠 사람이라기보다는 하나의 풍경이 되어 있기도 하고 따뜻한 바람이 되어 감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평생 잊을 수 없을 거란 생각도 한다. 그 아이에게 배운 스케줄 관리법은 여전히 나의 수첩에서 살아 있다. 그리고 헤어진 후에, 마지막으로 선물처럼 나에게 해 준 말이 지금의 나의 밑바탕이 되어 있다.

   "너 자신을 사랑할 수 있게 되길 바래."

그가 나에게 준 마지막 선물이다.

그가 떠나고 나에게 해 준 이 말을 힘으로 나는 나를 사랑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 살고 있다. 그것은 8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하다. 나는 지금도 나 자신을 온전히 사랑하는 법을 배우고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나의 단점, 어두운 부분, 뒤틀린 모습마저 그대로 받아들이려 한다.

아마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더 이상 그는 나의 연인이 아니고, 영원히 함께 있겠다던 약속도 지키지 않았고, 나의 단점을 포옹해 주지도 못했으며 서른여덟까지는 결혼하지 않겠다던 약속도 지키지 않고 먼저 결혼해 버린 사람이다. 그럼에도 나는 그 아이가 밉지 않다.

여전히 가슴이 시린 날은 떠올릴 테고, 술이라도 마시게 된 날이면 생각해버릴지도 모른다.


지금은 더 이상 아프지 않게 기억할 수 있지만, 이렇게 되기까지 나는 8년의 시간이 걸렸다. 처음엔 이별을 받아들이지 못해 분노하기도 했고 아프지 않은 척 마비된 감정을 보이기도 했다. 사랑에 빠지며 가까워진 시간의 몇 배에 해당하는 시간동안 내 기억에 있는 그를 서서히 지워야 했다. 평생 나를 잊지 못하게 하는 저주를 내리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결국 그 저주는 내게 돌아와 나야말로 평생 잊지 못하게 되었다.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그럼에도 지금은 더 이상 아프지 않게 가슴에 담아 둘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한다.


첫사랑에 대한 기억은 이젠 '좋은 이별'이었다고, 애도의 작업이 적절하게 이루어졌다고 말하고 싶다. 하지만 과거의 삶에서, 제대로 애도하지 못한 많은 상실들이 아직도 내게는 너무 많다. 그것들을 찾아 하나씩 돌아보고 치유하며 늦게라도 제대로 애도하는 작업이 앞으로 나에게 남겨진 숙제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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