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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 Oct 17. 2020

바다

박영택의 <예술가로 산다는 것>(마음산책, 2001)을 읽다가 새롭게 ‘좋아하는 것’이 생겼다.


바다.


나의 얼마 전부터의 꿈이 하나 있다. 

아는 언니가 혼자 오키나와에 여행을 갔었다. 그 언니는 감기처럼 외로움을 달고산다. 혼자 오키나와 바다를 보며 즐기지 못하고 서둘러 호텔방으로 돌아오고 말았다는 말을 했다. 그 언니의 말을 들으며 언니가 비오는 바다 앞에 홀로 서서 느꼈을 외로움과 쓸쓸함을 나 자신의 일처럼 느꼈다. 아마 지금의 나도 언니와 크게 다르지 않을 거란 생각에, 아는 언니의 그 말이 그렇게 사무치게 아렸는지도 모른다.


이후 꿈이 하나 생겼다.

바닷가에 앉아 시간을 잊을 만큼 오랫동안 바다를 바라볼 수 있게 되고 싶다는 꿈이다. 그림이나 조각을 보듯 바다를 바라볼 수 있는 눈을 가지고 싶다는 바람이다.

이런 바람을 품고 있었던 탓일까. 박영택의 책에서 나온 청도라는 작가의 바다 그림과 바다에 관한 저자의 문장은 산소처럼 가슴으로 들어왔다.


우리는 바다를 보지만 물과 빛과 대기가 만나서 이루는 바다의 표면만을 들여다볼 뿐이다단 한번도 바다는 동일한 모습을육체를 우리에게 보여준 적이 없다.”


막연하게 바다를 동경하던 나의 바람의 근원은, 아마 이 문장이 나의 마음을 설명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단 한 번도 동일한 모습을 보인 적 없는 바다. 늘 흐르는 모습. 늘 새로운 모습. 집착하지 않고 매달리지 않고 변화하는 모습. 내가 원하는 모습일지도 모른다. 나도 모르는 무의식의 바람이, 바다를 통해 드러나고 나 스스로는 언어화하지 못했지만 가슴속 바람이 ‘바다’라는 이미지를 통해 표현된 것이란 생각이 든다.


바다는 우리의 삶과 역사와 함께 했던 일상적 보금자리로서의 이미지요인간 개개인의 마음속에 내재한 무한함과 그리움의 대상이라는 관념적 풍경으로 다가온다자연은 어디에나 있지만 풍경은 그것을 소유하는 사람에게만 있다그러니까 우리가 바라보는 풍경은 진정한 자연으로서의 풍경이 아니라 자연에 대한 이미지일 것이다.”


풍경은 그것을 소유하는 사람에게만 있다는 저자의 말이 왠지 좋다.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좋아하게 되고 설레 하는 나. 내가 그런 사람이란 걸, 타인을 통해 알게 된다.


내가 세상 지식에 너무 어둡다고 어떤 친구는 그게 부끄러운 거라고 말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세상 살아가는 지식 이외에도 알고 싶은 게 너무 많아 세상 지식 쌓을 여력이 없다. 조금 더 현명하게 세상을 살아가려면 알아두는 게 좋겠지만 그것들에게 내어줄 머릿속, 가슴속 남은 방은 없다.

현명하게, 지혜롭게, 영특하게 세상을 살아갈 능력은 없지만 적어도 내 나름의 방식으로 내 삶을 즐길 수 있는 여유는 갖고 있는 듯하다.


지금 읽고 있는 책이라며 박영택의 책 속 한 구절과, 그 속의 그림을 친구에게 사진으로 찍어 보냈다. 친구는 자신은 예술가가 아니라고 말했다. 나도 예술가는 아니다. 앞으로도 예술가는 아닐 가능성이 높다. 그렇지만 내 삶을 기성복처럼 살지 않고 나만의 삶을 창조하고 싶다는 의미에서는 내 삶의 예술가로 살고 싶다.


새롭게 좋아하게 되고 한 장면의 꿈을 갖게 된 바다.

언젠가, 바닷가 앞에서 시간을 잊은 채 하염없이 바다를 바라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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