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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 Oct 17. 2020

낯선 사랑을 찾아서

7개월째 다니는 곳에서 처음 앉아보는 자리. 처음으로 주문해 본 라떼. 

처음 가 본 곳.

‘처음’이란 단어는 늘 설렌다.


처음으로 '책'을 동영상으로 찍어보았다.

왜 그런 짓을 했냐고? 

너무나 자연스러운 움직임이었다. 머릿속에서 생각할 겨를도 없없다. 도서관에서 빌린 책이 미치도록 갖고 싶었는데, 절판되어 더 이상 구할 수 없음을 알았다.

그 사실을 알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 책을 한 장 한 장 넘기며 사진을 찍어 두고 동영상을 찍는 것.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은 그것뿐이었다. 

조금이라도 책의 표지부터 마지막 페이지까지 내 머릿속에 넣고 싶었다.


나의 처음이란 단어와 만난 책은 닉 밴톡의 <낯선 사랑을 찾아서>(김영사, 1994)이라는 책이다.

물론 이 책말고도 도서관에서 빌린 책 중에 너무나 갖고 싶어져서 당장 구매한 책은 많다. 읽는 게 아까워 읽으면서도 끝을 향해 가는 페이지를 아쉬워했던 책도 많다. 오로지 제목만으로 첫눈에 사랑에 빠지듯 빠져버린 책도 많다.


하지만 이 책처럼 아무 준비 없는 나에게 느닷없이 나의 삶으로 성큼성큼 들어오더니, 나도 모르게 동영상을 찍게 만든 책, 그리고 서평을 쓰기 위해 한글 문서를 열었지만 한 번 더 읽지 않고는 서평을 쓸 수 없는 기분을 만드는 책은, 이 책이 처음이다.


처음 이 책을 빌릴 때는, 두꺼운 책들 속에서 잠시 나를 쉬게 해 주고 싶은 마음으로 고른 것뿐이었다. 각 장마다 손으로 쓴 엽서에 내용이 적혀 있어 흥미롭기도 했지만 편하고 쉽게 읽을 수 있을 거란 생각 이상의 기대는 없었다. 

이 책에 이렇게 빠지게 될 줄은 그때는 알지 못했다.


우연히 펼친 첫 장에는 우편번호와 주소마저 적힌 봉투가 붙어 있었고 자연스럽게 봉투를 여니 그 안에는 역시나 손글씨 편지가 들어 있었다. 그렇게 단숨에 마지막까지 읽어나갔다.

이 책에 대한 설명, 어떤 관계의 사람들이 주고받은 것인지, 혹은 가상의 인물을 두고 쓴 책이라든지 등의 친절한 설명은 하나도 없고, 그저 두 사람이 주고받은 듯한 손편지만이 날짜순으로 배열되어 있다.


매력적이다.

책에 매력적이란 단어를 쓴 적이 있던가. 기억나지 않는다.

자신을 찾아 여행을 떠난 여자와 그녀를 기다리는 남자의 답장처럼 보이는 서신을 읽으며 특이한 형식의 책에 놀라고 그들의 마음의 주고받음에 부러워하고 이런 책을 만날 수 있었다는 기적에 행복해하는 복잡한 심정이 된다.


홀딱 빠지게 될 책을 고르고 싶은 욕심에 가득 차서 도서관 책장을 살피던 날은 오히려 기대에 못 미칠 때가 많다. 지금 이 책처럼, 그저 풍경을 바라보듯 욕심을 내려놓고 훓어본 책들 속에서 나의 심장을 뒤흔들 책을 만나게 된다.


절판이 되어 더 이상 구매할 수 없는 책.

옛날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읽고 싶었던 책이 있었는데 구하지 못해 아쉬워한 적이 있었다. 그때, 한 친구가 나 몰래 헌책방을 뒤져 그 책을 나에게 선물해 주었다. 거의 포기하고 잊고 있었는데 헌책방에서 그 책을 구해 준 친구. 그 책보다 그 마음에 나는 가슴이 아릴 정도로 기뻤다.

절판이 되어 구하지 못하는, 이 책을 보며 과거의 그 친구를 떠올린다. 단절된 과거로 더 이상 현실로 이어지지 않는 과거 속 친구지만, 이렇게 문득 갑자기 떠오르곤 한다. 그저 '한 친구'가 된 과거의 사랑이, 구할 수 없는 이 책처럼 그립다.

추억이 화석처럼 쌓인다는 말,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낯선 사랑을 찾아서>. 이 책의 서평은, 반납기한 전까지 몇 번 더 읽고 서평을 써야겠다. 과거의 아름다운 추억처럼, 몇 년이 지나도 아무렇지 않게 문득 이 책을 떠올릴 수 있도록 내 가슴에 오랫동안 새겨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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