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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 Oct 17. 2020

학습된 무기력과 <스토너>


김정운의 <가끔은 격하게 외로워야 한다>(21세기북스, 2015) 중에 아래와 같은 문장이 나온다. 

"‘학습된 무기력’은 1975년 마틴 셀리그만이 발표한 이론이다. 자신이 극복할 수 없는 환경에 반복적으로 노출되거나 부정적인 자극이 계속되면, 자신의 능력으로 극복할 수 있는 상황이 되어도 스스로 포기하게 되는 현상을 뜻한다. 사람은 자신이 환경을 통제하지 못하거나, 미래의 결과에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예측이 반복되면 무기력해진다. 이 같은 무기력도 학습된다는 것이 셀리그만의 주장이다.(p169)" 

학습된 무기력이라는 셀리그만의 이 개념을 읽으며, 두 가지 생각을 했다.

먼저 지난 달 북클럽 도서였던 존 윌리엄스의 <스토너>다.

<스토너>를 읽으며 내내 느꼈던 무력감과 무기력, 권태감의 이름을 이 책에서 만났다. 

그리고 가르치는 아이들 몇 몇에게 나타난 학습에 대한 무기력감이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과목 선생님들도 배우려는 의지가 없는 아이들에게 가르칠 때가 가장 힘들다는 말씀을 많이 하신다. 책을 왜 읽어야 하는지, 수학이나 영어를 왜 해야 하는지 모르거니와 노력해도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고 '믿고' 있는 아이들.

성적이나 외모, 가정형편 등으로 끊임없이 비교를 당하면서, 혹은 자기 스스로 비교하면서 끊임없이 열등감을 느낀다. 그 열등감이라는 감정에 대해 분노하며 저항하며 '노력'하기 보다는, '어차피 해 봤자'라는 무기력감을 표현하는 아이들. 

실제로 중학생 정도가 되면 노력해도 쫓아가지 못할 경우가 사실은 더 많다. 두, 세 자리수 덧셈, 뺄셈, 구구단이 자유롭지 못한 아이는 아무리 공식을 완벽하게 외워도 원의 넓의 면적 등을 계산하다 보면 자기도 모르는 곳에서 계산을 틀리게 되고 틀린 곳이 어딘지도 모른 채 공식을 외워도, 즉 노력해도 안 된다고 분노하고 만다. 늘 '쫓아가기만 하는' 그런 삶의 방식, 그렇지만 앞지르지는 못한다.

그런 반복 끝에 포기가 있고 무기력과 무력감이 있다. 

이는 분명 아이들이나 <스토너>뿐만은 아닐 게다. 

나 또한 내 삶에서 수 많은 무기력과 자포자기와 무력감을 느껴왔다. '어차피'라는 단어를 남발하던 시절, 나의 사랑도 떠났다. 그래서 인지 나는 '어차피' 라는 단어 앞에서는 여전히 멈칫하고 만다. 

어쩔 수 없는 것은 어쩔 수 없다는 말.

어쩔 수 '있는' 것인데 어쩔 수 '없다'고 지레 겁을 먹는 것은 아닌지.

그 두 가지를 분별하는 지혜가 여전히, 그리고 앞으로도 필요할 거란 생각을 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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