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좋아한다는 말, 서평을 쓴다는 것, 읽은 책의 권수 등을 말하면,
책 자체에 관한 질문을 해 오는 분도 분명 계시지만, 대개는 이런 반응을 보인다.
우선 자신의 반성을 표하는 사람들이 있다.
자신은 책 한 권도 잘 안 읽는데, 혹은 졸업 후에는 책과 담을 쌓았는데라는 식이다.
그리고 또 어떤 사람들은, ‘서평’이라는 단어에 놀라움을 표하기도 한다.
내가 지금 속한 온라인상의 독서모임에 대해서 언급하니 어떤 분은, 그 모임의 회원들이
“00씨 말고 전부 초딩인 거 아니에요?” 라고 말해서 크게 웃은 적이 있다.
초등학생의 독후감 숙제도 아니고 왜 감상문을 스스로 쓰는가에 대한 진지한 의문에서 나온 질문이었다. 확실히 이야기해 주었다. 나 말고도 모두 '어른'이라고.
또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부족한 독서를 되돌아보며, 자신이 읽은 몇 안 되는 책들에 대해 이야기 해주기도 한다. 하지만 그 안에는 대개 부끄러움이 들어있다. 나는 그저 돈 버는 책만 읽어요, 라든가 읽기 쉬운 책만 읽어요, 근데 그것도 잘 안 읽어요, 라는 식이다. 그리고 어려운 건 잘 몰라요, 지식이 없어요, 라는 식의 반응도 있다.
소개팅과 같은 자리에서 ‘취미가 독서예요’라고 말한다면 어떤 사람으로 보일까.
어쩌면 고지식하고 말싸움하면 질 것 같고 권위적인 사람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책을 통해 지식을 얻고 싶던 시절도 있었다. 전공 서적을 읽을 때는 철저하게 지식을 얻고 싶었다. 한글자한글자 모두 ‘가지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은 ‘지식’이 목적이 아니다. ‘가지고 싶다’는 심리보다는 ‘보고 싶다’에 가깝고 ‘품고 싶다’에 가까우며 ‘닮고 싶다’에도 가깝다.
그리고 ‘알고 싶다’라는 마음도 있다. 지식으로서의 알고 싶음이 아니라, 나와 타인에 대해 ‘알고 싶다’는 것, 즉 이해하고 싶다는 마음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의 독서 생활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이 그들의 반성으로 이어질 때는 당황하곤 한다.
책을 읽는다고 훌륭해지지도 않고 똑똑해지지도 않는다. 오히려 '나는 책을 읽는 사람이니 똑똑하고 유능한 사람이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렇게 생각하는 그 사람이 오히려 반성해야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타인과의 만남을 통해 나를 만나듯, 책을 통해 나는 나를 만나고 내가 이해하지 못했던 누군가를 만난다.
나에게 책은, 사람들과 차 한잔 마시는 시간과 어떤 면에서 닮아 있다. 차 한잔으로 알 수 없을 때는 함께 산책하고 연락을 주고받으며 알아가는 과정이, 나에게 독서이다.
요 몇 년 간은 다행인지 불행인지 책에게 많은 시간을 낼 수 있었다.
그것이 불행처럼 여겨지던 때도 있지만 행복이라 다행이라 여길 때도 있다. 앞으로 얼마나 내가 책에게 시간을 줄 수 있을 지 알 수 없다. 알 수 없기에 시간을 줄 수 있는 지금, 줄 수 있는 만큼 주고 싶은 마음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불행이 아니라 다행이고 감사라 여기며 나의 마음을 책에게 줄 수 있게 되길 소망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