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라는 책을 읽다
1.
내가 이 일을 하기로 선택한 것은, 당신의 그 말이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해보지도 않고 자신의 한계를 정한다는 것은 옳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한 당신의 말. 늘 생각하고 생각하고 생각한 끝에 '하지 않음'을 선택하고 말던 나를 움직이게 했던 당신의 말. 당신의 그 말은 나를 움직이게 했다. 그리고 그 말은, 나를 통해 또 한 사람에게 전달되어 또 한 사람을 움직이게 했다.
2.
“이 일을 좋아하나요?”
라는 나의 질문에 당신은 이렇게 말했다.
“이와 비슷한 계열의 회사 중 일본에서 가장 낮은 급여를 주는 회사지만 OO라는 이 회사가 좋아요. 본받고 싶고, 믿고 따를 수 있는 상사가 있어서 좋아요.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좋아요. 그래서 아무리 더 높은 급여를 준다고 스카웃 제의가 들어와도 흔들리지 않고 일하고 있어요.”
사람들은 때때로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마음에 남는 말을 던진다. 하루 종일 땡볕 아래에서 기름때나 흙이 묻은 옷을 입고 일하는 상황은 사실 멋있어 보이지 않다. 한 달 넘게 하루도 쉬지 못하고 새벽부터 밤까지 일할 때도 있다. 그럼에도 이 일을 좋아하냐는 질문에 당신은 이렇게 말했다. 자신이 속한 회사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자신이 다루는 기계를 아끼고 소중히 여기는 당신들.
3.
멀리서 볼 때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그 공간에 함께 속하게 되었을 때 비로소 볼 수 있게 되는 것들이 있다.
자신의 일에 자부심을 갖고 최선을 다하며 열심히 일하는 모습은, 옷차림이나 여건과 상관없이 당신들의 땀이 참 아름답고 멋지게 보인다.
4.
시간을 눈으로 본다. 손톱의 길이, 손등과 손바닥 색깔의 차이, 반지 낀 부분과 아닌 손가락 간의 색깔의 차이로, 나는 시간을 본다. 숫자로 알게 되는 시간이 아닌 몸과 눈이 느끼는 시간의 변화가, 참 인간적으로 느껴진다. 살아있음을 느끼게 한다.
5.
“이 일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뭔가요?”
라는 질문에 당신은 말했다. “속았어요”라고. 그리고 이렇게 덧붙인다. 주말에도 쉴 수 있고 급여도 높고 해외여행도 갈 수 있다고 해서 이 일을 시작했다고 한다. 하지만 실제로 일해보니 월급은 적고 엄격하게 혼나면서 일해야만 했으며 주말도 없이 몇 달 동안 일할 때도 많단다. 그럼에도 “이 일을 좋아하나요?”라는 나의 질문에 당신은 말했다. 이 회사가 좋고 믿고 따를 수 있는 상사, 본받고 싶은 상사, 동료가 있어 좋다고 말이다. 나는 다시 묻고 말았다. “왜 지금은 좋은가요?”라고. 나의 이 질문에 당신들은 입을 모아 말했다. “익숙해졌으니까요.”
별 말 아닐지도 모를 이 말이 계속 귓가에 남는다. 자신의 천직을 찾는다는 건 어쩌면 당신의 말처럼 그렇게 대단한 어떤 계기가 아닌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당신이 자신의 일에 쏟아 부은 열정이 어쩌면 당신의 그 일을 천직으로 만든 것일지도 모른다. 말끔한 옷차림, 높은 급여, 폼나는 직장이 아니어도 일을 사랑하는 당신의 모습은 누구보다 멋지다.
6.
“일은 어때요, 괜찮아요?”라고 당신은 나에게 물었다. 노동의 가치, 아름다움을 알게 되었다는 나의 말에 당신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노동이 아닙니다. 기술입니다. 노동자와 기술자는 다르지요. 단순 노동자는 일을 하고 실수를 해도 그냥 넘어가죠. 하지만 기술자는 자신의 하루를 정리합니다. 같은 실수를 두 번 하지 않도록, 어떻게 하면 더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는지를 돌아보지요. 그런 사람은 노동자가 아닙니다. 노동자와 기술자는 다릅니다.”
언제나 농담 섞인 말로 웃음을 끊이지 않게 하는 당신이지만 노동에 대한 당신의 말은 그 어느 때보다 진지했다. 내가 당신들에게서 육체적인 노동의 가치와 아름다움을 느낀 것은, 노동이 아닌 기술자로서의 자부심과 열정, 에너지를 당신들에게서 느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당신의 그 말을 통해 알게 된다.
7.
삶의 책을 읽고 있다. 당신들과 부대끼며 당신들의 언어를 배우고 당신들의 삶에 숨겨진 아름다움과 멋짐을 읽고 있다. 나 또한 당신들처럼 몸으로 살고 있다. 머리로 살던 시간이 거짓말처럼 느껴진다. 머리로 살며 나를 움직이지 못하게 했던 투명한 끈이 당신들로 인해 자유로워짐을 느낀다. 당신이라는 책이 나를 자유롭게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