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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 Oct 17. 2020

오래된 배고픔

1.

작년만큼은 서평이 써지지 않는다. 나 한 사람을 향한 일기도 예전만큼은 잘 쓰지 않는다. 안으로 안으로 꽈리를 틀던 나를 이제 바깥으로 향하게 하려고 했기 때문이라 생각했다. 바깥으로 향하는 어떤 사람을 닮고 싶다고, 그의 좋은 점을 가지고 싶다고 생각해서 그런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어쩌면 변명일 뿐이다. 그저 게을러 진 것뿐인듯 싶다. 생각하는 것에 대한 게으름. 쓰는 것에 대한 게으름.

예전보다 쓰지 않게 된다는 것은, 하고 싶은 말들이 없어졌다는 의미이고, 하고 싶은 말들이 없어졌다는 것은 불필요한 말들을 공중에 너무 많이 내뱉었기 때문일 게다. 듣는 것보다 내뱉은 말들이 더 많던 날은 언제나 나를 부끄럽게 만든다. 혹은 어쩌면 하고 싶은 말들을 갖지 못할 만큼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는 의미일지도 모른다.

예전보다 덜 읽게 되었다는 것은, 읽고 '싶은' 책이 적어졌다는 의미일 수 있다. 그런 것이라면 책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흐려졌다는 것일 수도 있고 혹은 책에게 주는 시간이 적어졌다는 것일 수 있다. 어떤 의미이든, 결국 예전만큼 나의 그것에 대한 사랑이 식었다는 의미다. 지나치게 뜨거웠기에 더 차갑게 느껴진 것일까.

2.

가까운 사람들일수록 말한다. 너는 너무 생각이 많아, 라고. 생각이 나를 괴롭힐 만큼 많이 생각하고 생각하고 그 생각들이 나를 옭아매서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때가 많다. 그러나 하지 말하야 할 생각과 해야만 하는 생각의 경계. 그건 분명 있을 게다. 하지만 '너는 생각이 너무 많아'라는 말들을 들을 때마다 어떤 생각들조차 하지 말아야 하는가란 멈춤이 시작된다.

나는 모든 경계를 알고 싶다. 한 발을 떼어 너에게 가도 되는 경계와 멈추어야 하는 경계.

3. 

읽을 마음이 없었던 책이었는데, 친구에게 전해 들은 한 문장에 마음이 무너졌다.

"어른이 되면 사람과 사람 사이의 적절한 거리를 자연스레 알 수 있게 되리라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마흔 살에 가깝게 된 지금에도 나는 그 거리에 대해 잘 알지 못합니다. 너무 다가가면 아픈 일이 생겼고 너무 떨어지면 외롭기 짝이 없었습니다.

가장 적절한 거리를 찾기 위해 겨우 떠올린 건 상대를 존경할 만한 적장처럼 대하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쉽지 않았습니다. 가까워지면 속을 모조리 내보여버리는 버릇이 쉽게 고쳐지지 않았습니다."(허지웅의 <나의 친애하는 적>, 문학동네, 2016, p5~6)

'무너졌다'는 표현을 쓰는 게 옳은가 고민했지만 역시 옳다. 책을 읽는 이유는, 고파서다. 마음이 고파서다. 공감이 고파서고 사람이 고파서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적절한 거리에 고민하는 것은 비단 나뿐만이 아니라는 사실이 이 책에 무너지게 만든다. 가까워지면 속을 모조리 내보이는 버릇은, 나 역시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 나는 나의 솔직함이 여전히 무섭다, 그래서.

무언가를 쓰고 싶은 이유 또한 나에게는 똑같다. 고파서다. 사람이 고프고 공감이 고프고 마음이 고파서다. 이 채워지지 않는 고픔이 사라지지 않는 한, 나는 읽어야 하고 써야 한다. 오래된 이 배고픔은, 아마 앞으로도 내가 짊어져야 할 굶주림일 게다.

어떻게 고픈가, 이 고픔을 적확하게 어떻게 해소 해야 하는가, 이 고픔은 어떻게 하면 조금 더 바른 시선으로 볼 수 있는가,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더 봐야만 하는 것들을 볼 수 있을까, 이 고픔의 모양을 아는 것, 그리고 알아가는 것, 만들어 가는 것이 나의 앞으로의 삶이기를 소망한다.

4.

사람들은 제각기 자신만의 멋있음이 있다. 노래를 잘하거나 옷을 잘 입거나. 나는 생각이 바르고 옳고 건강한 사람에게 언제나 반하고 만다. 말을 통해서는 한 사람의 그러한 멋있음을 온전히 알기는 참 쉽지 않다. 제한적이고 시간이 오래 걸리고 또는 편집된 정보인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책을 통해 한 사람에 대해 반하는 경우가 많은지도 모른다. 허지웅 그의 책을 읽고 방송에서 보여진 결벽증적인 청소하는 모습 뒤에 있는 그의 인간적인 아픔과 슬픔, 과거의 삶의 조각을 읽었다. 그리고 그 모습에 때론 나도 모르고 눈물을 흘리고 공감하고 아파했고 만나보고 싶단 생각도 했다. 그리고 때론 나와는 다른 사람이란 생각에 거리감도 느꼈다. 그러나 마지막 장. 다음 문장에서 다시 한 번 멋있는 사람이란 생각을 했다. 그의 바름이 멋있다. 나도 멋있고 싶고 멋있는 사람들을 만나고 싶고 그리고 알리고 싶다. 많은 멋있음들을..

"우리가 싸워야 하는 이유는, 열심히 일하면 그에 상응하는 보상을 받고 의지만 있다면 반드시 공정한 기회를 보장받으며 규칙을 지켜도 물에 빠져 죽지 않는다는 걸 우리 다음 세대에게 증명해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룰을 지키는 사람들이 더 행복한 나라. 잘못이 있으면 그걸 바로잡을 수 있는 저력을 가진 공동체. 그것이 우리가 다음 세대에게 물려줘야만 할 유산입니다."(허지웅의 <나의 친애하는 적>, 문학동네, 2016, p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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