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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 Oct 18. 2020

나는 종이책 시대의 사람이다

나에게 독서란 이 모든 일련의 작업이 포함된다. 귀찮다는 마음과 그래도 가고 싶다, 지금 밖에 시간이 없다는 마음의 사소한 싸움 끝에 그래도 가야 한다는 마음이 이긴 후, 옷을 갈아입고 걷고 걸어서 도서관을 향한다. 빼곡히 꽂힌 책장들 사이를 정신없이 돌아다니며 먹고 싶은 음식을 고르듯 끌리는 책을 향해 마음껏 시선을 쏟는다. 혹은 미리 적어온 목록을 보며 책장을 살피기도 한다. 빌리려고 했던 A 도서에 이르기 전, 그 옆에 있던 다른 책에 한 눈을 팔아도 된다. 책들 앞에서만큼은 한눈팔기도 바람도 떳떳하다. 어느새 비었던 천 가방은 묵직해졌고 봇짐 장사마냥 책을 짊어진 채 다시 왔던 길을 돌아간다. 그렇게 나의 독서의 첫번째 단계, 책 사냥이 끝났다. 출발하기 전부터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그 시간도 나에게는 독서의 일부다. 


지금은 코로나로 그 시간들이 사라졌다. 도서관 책장에 나열된 책들을 보며 설레할 수도 없고 책의 제목만을 보며 상상의 나래를 펼치다 손으로 훑어보며 내려놓기도 하는 그 헤멤과 망설임, 방황의 체험을 더이상 할 수 없다. 결혼 후 본가에 모든 책들을 두고 왔기 때문에 지금 집에는 새로 산 책들밖에 없다. 책장 숲을 거니는 사치는 이제 나에게는 멀기만 하다. 그리고 책을 산다할지라도 기껏해야 인터넷에 나온 출판사 광고 문구나 타인의 리뷰를 통해 추측하다 구매해서 볼 수 밖에 없다. 방황이 없고 설레임도 없다. 운 좋게 지역 도서관의 전자도서가 있을 때도 있지만 E-BOOK은 나에게는 차갑다. 분명 전자도서는 편리하다. 하지만 역시나 나에게 화면 속 글자는 차갑다. 


읽지 않을 때라도 침대 옆에서나, 책상 위에서 나를 지켜보고 있는 책이 주는 정감, 잔소리 감이 없다. 그리고 종이책이 주는 그 촉감이 없다. 읽다가 마음이 머문 곳에 한참 머물러 있어도 나를 재촉하지 않고 언제나 기다려주는 그 안정감이 없다. 나는 요즘 사람이 아니다. 나는 결국 어쩔 수 없는 종이책 시대의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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