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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 Oct 24. 2020

부부가 되어 가는 중

엘리바베스 퀴블러로스, 외의 <인생수업>(이레, 2015) 중에서

"삶이 ‘충분할’ 때, 우리는 더 이상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 ‘이런 게 바로 삶이고, 난 더 이상은 필요 없어’하고 말할 수 있다면 큰 힘과 행운을 손에 넣은 것입니다.(p117)"


내 삶에 대해서는 나는 항상 충분하단 생각을 하고 있다. 오늘 죽어도 한이 없다는 말도 서슴 없이 한다. 보수나 회사의 복지, 안정성보다 하고 싶은 일을 우선하여 선택해 왔고 이 사람이 아니면 안 될 만큼 사랑하는 사람과 살고 있으며 잘못한 일, 반성할 일은 정말 많지만 그래도 소중한 사람들이 소수라도 내 곁에 있다. 남들이 부러워할 만큼의 부와 명예도 없고, 일반적인 기준에서 보아도 내 삶이 대단하진 않을지라도, 나에게 이 정도면 충분하다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내 남편에 대해서는 어떨까.


엘리바베스 퀴블러로스 외의 <인생수업> 속 문장들을 워드로 치면서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내가 그에게 화를 내거나 짜증을 낼 때가 있는데 그건 그가 아직 충분하다는 생각을 하지 못해서가 아닐까 라고. 그는 이미 충분히 나에게 좋은 남편이다. 그보다 나를 더 잘 이해해 줄 수 있는 사람도 없고 나에게 맞춰줄 수 있는 사람도 없다. 내가 처음 그와의 결혼을 결심했던 때와 마찬가지로 이 사람이라면 평생 함께하고 싶단 생각에 변함은 없다. 

그럼에도 나는 가끔 그에게 이것만 바뀌면, 이란 생각을 하고 있는 모양이다. 그가 조금만 술을 줄이면, 그가 조그만 더 따뜻하고 자상하게 말해 준다면, 이러면서 말이다. 


"때로 우리는 자신이 맺고 있는 관계들에서 어떤 부분이 달라진다면 행복해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바라는 이유는 관계를 통해서 행복해지고 싶기 때문입니다. 배우자를 바꾸거나 관계를 변화시키면 완벽해지고 행복해지리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실로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우리의 행복은 상대방을 ‘더 좋게’ 바꾸는 것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진실은 이렇습니다. 우리는 상대방을 바꿀 수 없으며, 바꾸려 해서도 안 됩니다. (...) 우리가 진정한 자신이기를 원한다면, 그들도 진정한 그들로 있도록 해주어야 하지 않을까요?(p73)"


바람직한 가정의 모습, 남편의 모습, 아내의 모습, 이러한 '이상'을 만들고 그 이상과 닮아가도록 나와 그를 바꾸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의 모습이 남편상이고 내가 아내상이다. 그가 어린시절 보았던 아버지의 모습을 통해 자신의 아버지와는 다른 삶을 살겠다고 결심한 것, 내가 나의 부모를 보고 그들과의 다른 부부가 되겠다고 생각한 것, 어쩌면 그도 나도 자신 안에 새겨진 '반면교사'를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치느라 상대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못하고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지 못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나의 모습 그대로가 그의 아내이며 그의 모습 그대로가 나의 남편이다. 


나는 매일 수련 중이다. 누구보다 사랑하지만 몇 시간이고 언성을 높이며 화를 내고 울고 싸울 때도 있다. 나의 잘못을 발견하고 그에게 사과하기도 하고 그가 나에게 사과하기도 한다. 때로는 서로 좁힐 수 없는 평행선 싸움에 서먹해지는 순간도 있다. 그럴 때면 어떤 것이 올바른 부부의 모습인지 모르겠단 생각을 한다. 누군가에게 묻고 싶어진다. 수학 공식처럼 정해진 무언가가 있고 그 메뉴얼대로 따르기만 하면 좋겠다는 생각마저 한다. 


하지만 안다. 내가 그를 사랑하는 만큼, 그도 나를 아끼고 사랑한다는 것을. 말로는 표현하지 않지만 내가 힘들어 할 때, 12시간의 고된 노동에 쓰러져 잠든 날에도 밤새도록 팔베게해 준다. 잠결에조차 밤새도록 꼭 안아준다. 그는 그만의 방식으로 나를 위로해 준다. 그의 사랑의 언어와 나의 사랑의 언어는 너무나 다르다. 나는 그의 언어를 읽지 못해 속상해 하기도 하고 답답해 할 때도 있고 반대로 그가 나의 언어를 읽지 못해 화를 낼 때도 있다. 우리는 이렇게 서로의 언어를 배우고 있다. 그의 언어를 내가 배우고 나의 언어를 그가 배워가는 과정, 그것이 결혼이란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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