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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이상 Jul 29. 2019

오만한 더위


토요일 오후 날씨는 정말 끔찍했다. 햇빛은 타들어가듯 뜨거웠고 습도는 숨이 막힐 정도였다. 10분 거리의 카페를 가려고 했는데 30초만에 포기했다. 결국 5분 거리의 카페에서 차가운 커피와 시원한 에어콘으로 도망쳤다.. 골목엔 사람이 없었다. 누군들 나오고 싶을까. 그래도 좋아하는 사람이 있겠지? 아침에 침대에 누워 훑어본 인스타그램 피드에 ‘가장 좋아하는 여름’이라면서 올라와있는 사진을 본듯하다. 사람 성격만큼 취향도 제각각이다. 예전에 이름 모를 아저씨의 이런 얘기를 들은 적 있다. 교복이나 군복이 좋다고. 매일매일 뭐 입을지 고민 하지 않아도 되고 다 같이 같은 옷 입으니 소속감도 있고 얼마나 좋냐면서. 이동진 기자가 라디오에서 이런 얘길 한 적도 있다. 밥 먹는 것에 관심이 없다고. 만약 허기와 영양이 다 채워지는 알약이 개발된다면 그걸 먹겠다고. 동의 하지는 않지만, 이런 사람들이 있구나 일면 납득하게 되는 부분이 있다. 개인으로 보면 당연하고 합당한 것들도, 다른 시선으로 보면 절대 용납할 수 없는 것도 있고 꼴보기 싫은 것도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누군가의 독단으로 보편이 결정되는 것은 경계해야 마땅하다. 자꾸만 사람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자기 세상을 넓혀가야 한다. 받아들이고 수용하는 자세만이 시간을 부드럽게 흘러가게 할 것이다. 그런 마음으로 이렇게 지옥같은 무더위를 받아들인다. 이 더위도 누군가에게는 애정을 받겠지 라는 생각을 한다. 마치 세상 모든 것에 관심있다는 듯이. 모든 걸 받아들인다는 듯이. 샌님처럼. 그렇게 속물처럼. 그래, 나는 세상 모든 걸 다 이해하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인다. 저런 사람도 있고 그런 사람도 있어. 흥분한 감정에게 얄미운 표정으로 얘기한다, 진정해, 진정하라고. 배고파, 라고 말하는 친구에게 야 지구 반대편에는 그것도 먹지 못해 굶는 사람이 있어, 라고 핀잔을 준다. 친구의 얹짢음을 느끼며 정의 구현에 뿌듯해 한다. 넌 왜 세상을 몰라? 요새 홍콩에서 벌어지는 일 알고 있어? 생각은 한다. 다만 행동하지 않는다. 넓어진 건 나의 세상이 아니라 오만일지도 모른다. 나는 나를 확신할 수 있을까? 타인의 존재가, 타인의 취향이 나를 통해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어떻게 당당하게 판단할 수 있을까. 뜨겁다. 덥다. 이것은 진실이다. 나는 그저 여름을 견디기 어려울 뿐인데. 뭘 자꾸 세상은 어쩌고 다른 사람은 어쩌고. 열 받는다, 열 받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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