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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이상 Apr 02. 2019

왜 이렇게 공기는 맑아서


무심코 떠오르는 글들이 있었다. 그 시절은 무심코 사라졌다. 어떤 것들은 시가 되기도 하고 이야기가 되기도 했다. 그걸 내가 시라고 부르면 시가 되던 시절이 있었다는 건 때론 부끄러운 일이다. 하지만 그 시절을 외면하고 싶진 않다. 부정해도 시간은 간다. 아무리 참아내도 단 1초의 여유조차 허락하지 않는다. 그런 시간의 흐름 속에서 내가 하고 싶은 건 무엇일까? 고민해본 적 있을까. 그런 고민을 하지 않았을 때 오히려 글이 더 많이 나왔다는 건 어찌보면 참 우스운 일이다. 물론 그 때는 그걸 가지고 웃진 않았지만.


구체적인 이야기를 해야한다는 강박에 시달렸다. 어렵지 않은 이야기를 어렵게 한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누군가에게 보여주는 목적이 아니라면 내 마음대로 써도 된다는 사실을 깨닫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자유로워졌다는 말이다. 그것도 착각이었지만 말이다. 한번 구속되면 사람은 자유로워지기 쉽지 않다. 정해진 울타리에 익숙해지면 그 울타리만큼의 공간을 내것이라고 생각해버리고 만다. 몸이 스스로 나서질 않는다. 아무리 걸어도 백걸음 이상 걸어지질 않아. 그걸 위해서라면 다시 뒤를 돌아야해. 나는 제자리걸음을해. 더 많이 걷고 싶지만, 더 많이 걸을 필요가 없으니까. 자기 위안에 논리가 생긴다. 있지도 않은 논리가 마치 진짜인 것처럼.


비가 내리기 시작하면 공기에 먼지 냄새가 가득하다. 그걸 그리워하는 사람도 있고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 시간은 너무나 공평해서 어쩔 수 없지만, 사람은 너무 제각각이라서 어쩔 수 없다. 그 어느 하나, 모두에게 진리인 것은 없다. 그래서 나는 나로서 자유로울 수 있지만, 나는 나라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를 설명할 수 없다면, 표현해보는 것도 방법인데 나는 표현할 줄 모르고 배설할 줄만 알았던 것 같다. 그렇게 싸질러놓은 똥들이 부끄럽긴 하지만, 외면하고 싶지는 않다. 왜 치우지 않았냐고 물어본다면, 당시에 나의 도덕적 해이를 탓할 수 밖에 없다.


지금을 설명하지 않아도 표현되는 지금이 있다. 부정할 수 없다. 언젠가 이야기하게 되는 오늘이 있을 것이라 짐작한다. 짐작은 구체화되지 않아도 된다. 바쁜 것은 순간이다. 행복도 순간이다. 목적없는 이야기 속에도 질서가 있다. 그것은 나라는 사람이 시간을 내어 짜내는 어떤 것이라는 것. 마치 낙서처럼 끄적이는 이야기에 담긴 것은 내가 아니라고 부정할 수 없는 나라는 사실은 짐작할 필요조차 없다. 지금, 오늘, 공기가 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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