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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이상 Feb 04. 2020

불안에 이르는 걸작 <언컷젬스>

애덤 샌들러가 저만큼 갈 수 있을 줄은 몰랐다

#영화


단 한 순간도 긴장의 끈을 놓치지 않는다. 아니, 끈을 놓기 위한 완벽한 순간을 위해 계속해서 긴장을 팽팽하게 당긴다. 그 팽팽함을 관통하고 있는 건, 바로 불안이다.




애덤 샌들러, 무척 좋아하는 배우다. 왠지 모를 나른한 분위기를 좋아한다. 뻔뻔함도 좋다. 농담과 진담의 톤이 비슷하고, 거짓말도 진짜처럼 진짜도 거짓말처럼 얘기한다. 소리를 지르지면서 표정은 덤덤하다. 장난끼 넘치듯 말하는게 첨벙첨벙 마당에 틀어놓은 작은 아기 풀장 같은데, 가끔 속을 알 수 없는 심해의 깊이가 느껴지기도 한다. 가볍지만 가볍지 않은, 무겁지만 무겁지만은 않은 그런 배우. 늘 그런 배우를 좋아했던 것 같다. 이터널선샤인의 짐캐리나, Lost in traslation의 빌 머레이, 오피스의 스티브 카렐 처럼 말이다. 희극 안에서 웃음을 자아내는 역할을 맡고있지만, 진지한 본인의 페르소나만큼은 지키고 있는 느낌.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는 애덤 샌들러의 인생 영화가 아닐까?


고삐가 풀린 망아지처럼 달려가는 기차는, 왠지 탈선의 불안을 느끼게 한다. 심지어 대체 언제 멈추는 거냐고 묻기 위해 기관실로 갔더니 레버를 붙잡은 채 쓰러져있는 승무원의 시체를 발견한 듯이 끊임없이 불안의 레이어가 가중된다. 최근 불안의 정서를 다루는 영화들을 자주 접하게 된다.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정서는 아니다. 누가 그렇겠는가? 다만 불안함을 일종의 스릴로 승화시켜 즐길 수는 있다고 생각은 한다. 하지만 나는 그런 사람은 아니다. 나에겐 기생충도 그랬다. 끊임없이 불안했다. 뭔가 일어날 것 같고, 그 일어난 일이 또 불편한 사건을 일으킬 것 같았다. 그러지 말았으면 좋겠는 곳으로 영화가 자꾸 자꾸 흘러가서 보고있는 나를 안절부절 못하게 만들었다. 이 영화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다루는 내용이나, 방식이나, 톤 모든 것이 다르지만 불안에 휩싸여 영화가 만들어놓은 세계 안에서 아주 깊은 구석까지 파고들도록 만드는 것은, 일면 유사하다 느낀다.


언컷젬스는 보석 원석을 뜻한다. 이야기를 관통하고 있는 소재도 바로 그것이다. 감독은 우리의 인생도 다양하게 분절된 빛을 통해 아름다워 보이는 보석처럼, 세공되지 않은 채 쌓여가는 수많은 사건으로 빛남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걸까. 글쎄, 그렇게 희망적인 이야기는 아니었던 것 같다. 혹은 어떤 인생도 결국 소비하는 대상에 따라 바라보는 것이, 혹은 다루는 것이, 혹은 그 가치가 달라짐을 이야기하는 걸까. 어떤 면에선 그렇게 깊진 않을 것 같기도 하다. 예측 불허, 세상에 존재하는 불변의 규칙은 바로 그것 아닐까. 


모든 것을 비껴가기에 결국은 모든 것을 다 얘기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이야기. 말도 안되는 이야기인 것 같지만, 설득력이 있는건 84년, 86년 생 감독의 실제 보석상이었던 유대인 아버지 덕분이었을까. 예상이 비껴날 수록 현실에 가까워지는 이야기. 사실 보석은 아무도 보여지지 않은 채 가만히 바위 속에 갇혀있을 때 더욱 보석다운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 때 커다란 폭열음과 함께 피투성이의 손으로 원석을 치켜드는 느낌.


탁, 하고 긴장이 풀린 순간 터져나오는 한숨을 멈출 수 없는 영화, 오랜만에 느낀 스릴과 익숙한 배우의 낯선 모습의 감동을 모두 겪을 수 있는 <언컷젬스>였다.



2020, 영화, 넷플릭스, 언컷젬스

- 무기, 보석, 희망, 절망, 질투, 분노 모든 것이 될 수 있는 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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