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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쌩전 Apr 30. 2021

4월의 문의 : 퇴사 이후 한달?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앞으로 뭐가 될까


앞으로 한달에 한 번 정도라도, 그 동안 내가 들었던 질문들과 내 스스로에게 던졌던 물음들을 모아보려고 한다. 늘 그렇듯 오래 가지 않을 지도 모르지만, 시작이 반이라고 생각하고 이거라도 안하면 반도 안한 게 될테니까. 거창한 변명으로 시작해본다.


Photo by Scott Graham on Unsplash





팀장 된지 얼마 안됐잖아?


지난 2월 1일, 라인프렌즈에서 브랜드 마케팅을 담당하는 크리에이티브 플래닝팀의 리드가 되었다. 그리고 3월 31일을 마지막으로 퇴사를 했다. 5인 이상 집합 금지 덕분에 3명씩 여러번 송별회를 했다. 심지어 아직도 다 못한 기분이다. 여전히 숙제처럼 남은 인연과 약속들이 있다. 이렇게 여운이 남는 회사였는데, 배운 것도 많았고 아쉬움도 많았지만 어쨌든 결과적으로 나는 퇴사를 선택했다.


가장 많이 들은 질문은 '리드 되신지 얼마 안되지 않았어요?' 였다. 사실 리드를 정식으로 단지 고작 두 달을 채웠다. 퇴사 통보를 한 건 그보다 전이었으니, 거의 한 달 정도만 일했던 셈이다. 그렇게 팀장 역할이 싫었던 걸까, 힘들었던 걸까.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예스, 이기도 하고 노, 이기도 하다. 사실 모든 일이 그럴 거라고 생각한다. 어떤 과정이 들어서면 당연히 힘든 부분이 있기 마련이고, 그걸 견뎠을 때 찾아오는 보상이 있기 마련이다. 내가 그 보상을 위해서 견뎌내야할 가치가 충분하다면 당연히 견디는 것이고, 때로는 그 보상이 원하는 것과 다를 경우에는 전반적으로 자신의 상황을 돌아볼 필요가 있는 것 같다. 나는 후자에 가까웠고, 그 고민을 길게 했으며, 마음의 결정을 내린 뒤에 판단과 행동을 민첩하게 한 케이스 였을 뿐이었다.


최근 80년대 생들이 조직장이나 관리직으로 승진하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팀장의 업무에 관한 책이나 콘텐츠들이 많아지는 걸 볼 수 있다. 나도 그 중 하나였다. 회사에서 인정 받는 것이 기쁘기도 하면서, 그 동안 봐왔던 팀장들 중에서 배울 점과, 배우지 말아야할 점들이 머릿 속에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그리고 나는 어떤 조직장이 될 수 있을지 고민도 많이 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모든 것이 다 멀어지면서 내 인생 전체를 두고 조망할 수 있게 되는 순간이 찾아왔다. 어떤 계기가 있었던 건 아니었다. 매일 아침 샤워를 할 때마다 하루에 있을 일들을 찬찬히 곱씹어보곤 하는데, 그냥 어느 날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근데, 지금 내가 팀장이 되는 것이 내 인생에 어떤 의미일까?


직장보다 직업이 중요한 시대가 되었다. 광고로 일을 시작해서, 마케터가 되었는데 광고도 마케팅도 사실 화려하고 관심을 많이 받는 직종이긴 하지만, 주변에 나이 지긋하신 선배들이 일하는 모습을 발견하기 쉽지 않다. 10년은 고사하고 앞으로 5년도 불안한게 사실이다. 나도 이제 10년, 11년 차 정도 되는 연차가 되었고, 예전엔 이게 한창 실무를 할 시점이지만 이제는 흔하게 조직장이 되는 시대가 되었다. 기쁜 일일까? 빠르게 오른다는 것은, 빠르게 떨어진다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좋은 회사를 다니는 사람이 아니라, 내 일을 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이런 저런 생각들이 파편적으로 들었다. 업무가 힘든 것은 당연히 디폴트로 있는 일이다. 대체 힘들지 않고, 지치지 않는 일을 주는 회사가 세상에 어디있을까.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업무에 성과를 내고, 그 성과를 기반으로 안정적인 조건으로 생활을 이어가는 것이 회사와 노동자의 가치 교환의 형태가 아닐까. 이직도 마찬가지다. 어느 정도 경력이 차게 되면, 이직은 기본적으로 가능성을 열어두는 조건 중에 하나일 뿐이다. 당연히 이직도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다니던 회사가 좋았고, 함께 일하는 동료들이 너무 좋았고 내 일을 더 잘하고 싶었다. 다른 회사로 가는 것은 답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다른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앞으로 '내 일'을 할 수 있는 조건으로 가능성을 열어둘 수 있다면, 그게 리스크도 높은 일이지만, 더 많은 기회를 기대할 수 있는 미래를 만들 수 있는 선택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끊임없이 고민했고, 주변에 아는 사람들에게 전화도 하고, 메시지도 보내고, 만나기도 하면서 많은 이야기를 했다. 그러다 기다리던 순간이 찾아왔다. 아, 이쪽으로 가는 것이 맞겠다. 내 인생에 필요한 선택이겠다.




이직이야? 창업이야? 프리야?


그렇게 퇴사 통보를 하고 회사와 협상을 해서 3월을 기점으로 퇴사를 하게 되었다. 그리고 4월 1일, 개인 사업자를 냈다. 그럼 이제 어떻게 일하는 건지 물어보는 사람이 많다. 나도 명확하게 대답을 못하겠다. 그 이유는, 창업이기도 하고 이직이기도 하고, 프리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우선, 5월부터는 성수동에 있는 '어라운디'라는 지역 문제 해결을 돕는 '사회혁신 디자인 기업'에 브랜딩과 마케팅을 담당하는 사내 이사로 계약을 해서 일주일에 3일씩 출근하며 계약직으로 일을 하게 되었다. 사실 이전부터 대표님이 같이 일하고 싶다는 말씀을 종종 해주셨는데, 이번에 퇴사를 하면서 단순히 이직이 아니라, 나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도록 가능성을 열어두고 싶다고 말씀을 드렸는데 흔쾌히 받아주셔서 주3일 근무가 가능하게 되었다. 원래 로컬 관련 된 작업과 로컬 브랜딩, 기업 브랜딩 등에 관심이 많았고 어라운디와의 일을 통해서 새로운 시도들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여러모로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일단 '모두의 무늬'라는 이름으로 개인 사업자를 냈다. 광고 문안 작성 및 컨설팅 업무를 기본으로 하고 있고, 내가 10년 동안 해왔던 일이 브랜드 커뮤니케이션 관련 된 일이었기 때문에 이 경력과 경험을 바탕으로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을 하려고 한다. 우선은 브랜딩 작업이라거나, 마케팅 아이디어 제안, 컨설팅 관련된 역할들이 초기 업무가 될 것 같고 앞으로 구체적으로 어떤 비전을 가지고 특성을 개발하게 될지는 잘 모르겠다.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기는 하지만, 지금부터 그걸 미리 잡아둘 수 있을지도 모르겠고, 우선 4월 한 달은 좀 쉬고 싶다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별로 쉬는 것 같지는 않다)


결론적으로, 무조건적인 독립이 불안한 마음도 있기 때문에 일부는 소속이 되어 이직의 형태를 띄고 있기도 하고, 사업자를 냈기 때문에 창업이기도 하지만, 직원을 두거나 회사를 키우기보다는  자신을 활용한 일을 하려고 하기 때문에 프리에 가깝기도 하다. 현재로서는 뭐든지   있는 모습으로 세팅을 해둔 것이라고 보는 것이 좋을  같다. 좋은 말로는, 요새 유명한 브랜드인 모베러웍스에서 쓰는 말인 '프리 워커스’를 지향하는 것일 수도 있고, 시켜만 주시면 뭐든 합니다,  태도를 가진 용병 같은 노동 인력이기도 하다.




퇴사하고 나니 가장 달라진 점은 무엇일까?


우선 요일 개념이 없어졌다. 월요일과 일요일, 수요일, 목요일 딱히 일상이 다르지 않다. 매일 아침 일어나서 운동이나 산책을 하고, 아내가 출근하기 전에 같이 밥을 먹고 점심에 간단히 쉬거나 낮잠을 자고 일어나서 글을 쓰거나 책을 본다. 약속이 있으면 나가서 약속을 하고 돌아온다. 약속은 하루에 세개가 맥시멈이고 보통 두 개 정도를 선호한다. 하루에 하나밖에 없으면 나가기 아깝고, 세개나 있으면 마음이 바쁘다.


불안함이 기저에 있다. 이건 어쩔 수 없다. 하지만 기대도 있고, 자유로움도 있다. 오늘의 걱정이 내일까지 이어지지 않고, 시간이 아니라 프로젝트 단위로 일을 하게 되고 타인과 업무를 할 때 내 역할에 대해서도 다시 고민해보게 된다. 이제는 조직 안에서 주어진 관계가 아니라, 독립된 개체로서 서로를 인정하기도 하고 때로는 치열하게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면서 진행해야하는 일들이 있는 것이다. 내 일이 재화로서 직접 환산이 될테고, 그것이 내 책임과 이름을 달고 실체를 가지게 될 것을 생각하면 기대가 되기도 하고 긴장이 되기도 한다. 문제는, 진짜로 그런 일을 얼만큼 할 수 있을지에 대한 것이지만, 뭐, 그것은 어떻게든 될 것이라는 막연한 마음이 있다.


아, 얼굴이 좋아졌다고 하는 사람들이 좀 있다. 나는 잘 모르겠는데 보기에는 그런 것 같기도 하다. 근데 또 생각해보면 나는 변하지 않았는데, 그들의 시선이 변한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그 원인이 나의 상황 변화에 있는 것이니, 내가 전혀 상관없다고 말할 수도 없긴 하겠다.



한달 동안 어떤 일이 있었어?


일단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내가 먼저 만나자고 한 사람도 있었지만, 주로 연락 온 분들과 부지런히 약속을 잡았다. 그러다보니 초반에 2주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약속이 있어서, 출근했을 때보다 더 바쁘게 지냈던 것 같다. 매일매일 아침에 나가서 약속을 2-3개씩 뛰는데, 보통 저녁 약속까지 있으니 술을 마시고 돌아와서 다음 날 또 아침에 나가게 되는 일이 벌어지고 만 것이다. 그래서 일부러 중순 이후로는 약속을 좀 잡지 않았고, 하루에 몰거나, 때로는 뒤로 미루거나 했다. 그렇게 조금 여유를 찾았고 이제서야 여유와 한가를 느끼고 있다.


초반에는 별 일이 다 있었다. 사업자를 낸 다음에, 어차피 개인사업자이고 수입도 잡힌게 없다보니 그냥 관리용으로 카카오뱅크에 통장을 만들었다. 그리고 바로 4월 초에 간단하게 업무를 도와드린게 있어서, 기왕 받는 거 한번 회사 이름으로 받아보려고 했는데, 계산서를 발행하려면 계산서 발행용 공인인증서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근데 그걸 발급받으려면 은행에 직접 내점해서 해야하고, 기업 계좌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부랴부랴 은행에 찾아가서 물어보았더니, 혹시 최근에 계좌 개설하신 적 있냐고 말을 들었다. '네, 오늘 오전에요.' 라고 대답했더니 이제는 개인이 한 달에 계좌를 하나씩 밖에 못만들게 되었다고. 나는 5월이나 되어야 새로운 계좌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었다. 아니 왜 아무도 나에게 그런 얘기를 하지 않고, 알려주는 곳도 없고. (내가 미처 잘 알아보지 않은 것도 있겠지만) 이제 이런 일들이 계속해서 벌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니까, 왠지 허허벌판에 옷이랑 신발이랑 다 빼앗긴 채 쫓겨난 기분이 들었다. 들판에 펼쳐진 자유는 있지만, 내가 누릴 수 있는 편의는 최소한이 된 기분이랄까. 그래서  살짝 혼란스러웠지만, 그것도 이제 시간이 지나고 나니 다 그러려니 하게 되었다.


그렇게 여유와 한가가 일상에 찾아오게 되니, 막상 또 퍼질러 있지 못하고 뭐라도 하고 있다. 집 청소를 한다거나 쇼핑을 한다거나 하는 등 말이다. 책장을 하나 샀고, 책상 구조를 바꾸었다. 그리고 PT도 새로 끊었고, 머리도 기르기로 했다. 할 수 있는 변화는 모두 몸으로 구현하려는 거냐!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맞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아, 작업실이 생겼다. 아마 '5월의 문의'를 쓰게 된다면 그 때 구체적으로 이야기하게 되겠지만, 지인의 호의로 인해 삼청동에 있는 건물 일부를 사용하게 되었다. 어차피 비어있는 공간이라서 틈틈이 작업을 하거나 미팅을 할 때 사용할 예정이다. 어차피 평일 중 3일은 성수동으로 출근하게 될거라, 나머지 시간이나 주말 작업을 해야할 때 사용할 듯 하다. 삼청동 완전 끝에 있고, 한적한 곳인데 워낙 어릴 때부터 좋아하던 동네라 호의를 그냥 덥썩 물고 말았다. 왠지 잘 되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는 공간이라, 빚진 마음으로 의지를 불태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순진한 마음도 가져보았다.


아내와 하동에도 다녀왔다. 하동에 다녀온 것은 파장이 좀 있었다. 주변 사람들이 다 하동이 그렇게 좋은 곳이었냐면서 연락이 왔고, 하동에서 일도 받아왔다. 내가 얼만큼 일을 해낼 수 있을지 아직 가늠이 잘 되지 않기 때문에 욕심을 부려선 안된다고 생각했고, 워낙 나를 잘 알고 잘하시는 분들이 함께 계시다보니 아주 매력적이고 좋은 일을 하나 시작하게 되었다. 생각할 수록 마음이 가는 곳이다. 넉넉하게 자본만 있었다면 나도 내려가서 뭐라도 해보려고 했을텐데 싶기도 하다. 하지만 뭐 어차피 아이디어 장돌뱅이 인생이고, 앞으로도 어떻게 될지 모르니, 우선은 충분히 역마살 시원하게 부려보고, 나중에 마음에 추가 내려왔을 때 1순위 후보로 고려할 수 밖에 없는 곳으로 두려고 한다. 아내도 너무 좋아했다. 자연도 사람도 공간도, 정말 최고인 곳. 앞으로 깊은 인연이 되었으면 한다.




앞으로는 어떻게 되는 거야?


어라운디의 마케터로서, 또 크리에이티브 스튜디오 ‘모두의 무늬'로서 일을 하게 되고 개인적으로 하고 싶었던 작업들을 계속할 예정이다. 야마자키 료씨의 유튜브 자막이라던가, 아니면 꾸준히 브런치에서 연재(비정기적으로) 하고 있던 '세상을 이롭게 만드는 이야기'를 쓴다거나, 틈틈이 하고 있던 소설 습작을 한다거하 하는 것들 말이다.


오히려 나와서 이것저것 할 생각하니 마음이 바빠서 집중하지 못했던 것 같기도 하다. 확실히 하고 싶은게 많으면, 해야할 것들을 정리하기 전에, 하지 않아도 되는 일들을 치워버리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그것이 마음의 여유 공간을 만들어주는 일이기도 한 것 같고.


아, 놓치고 말하지 않은게 있는데, 회사 이름을 '모두의 무늬'라고 한 이유는, 지역이나 사람, 브랜드, 제품이 가지고 있는 개성이나 특성을 살려서 그들이 가진 고유의 무늬를 찾아주고 잘 드러나게 해주는 역할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 강아지 이름이 무늬이기도 하고. 원래 빠르게 로고 작업 등을 할 생각이었는데, 만족스러운 작업이 아직 되지 않아서 여전히 진행중이다. studio MOMU 라고도 부를 생각이다. 앞으로 저 이름이 여기저기 곳곳에서 재미있고 근사한 작업들과 함께 드러날 수 있길 기대해본다.


사실 아직 본격적으로 '시작'이라고 부르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저 멀리에 스타트 라인이라도 보이면 다행이다 싶을 정도다. 그치만, 새로운 상황을 맞닥뜨린 뒤에 느껴지는 설렘이 여러모로 스스로를 고양시키는 것은 사실이다. 나쁘지 않은 긴장이라고 생각한다. 사는 것은 스트레스의 연속이다. 그렇다면 나를 부정적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인생을 걸어볼만한 긍정적인 스트레스를 느낄 수 있는 상황을 어떻게 만들지가 결국 매우 중요한 일이다. 지금까지 한 번도 이 정도 도전은 해본 적 없었다.


최근에 그런 글을 보았다. 스토리텔링 작법서를 보면, 이야기의 시작이나 챕터가 전환하는 시점을 '돌이킬 수 없는 순간'으로 본다고.

나는 이제 명확하게 돌이킬 수 없는 시점에 돌입했다. 이제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될 차례다.




*혹시 관련하여 궁금한 것들은, 댓글이나 메일로 남겨주시면 참고하도록 하겠습니다.

( 모두의 무늬 - 메일 : creative.momu@gmail.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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