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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쌩전 May 26. 2024

솔직하긴 너무 어려워

산책과 커피 : 독립 마케팅 스튜디오의 넋두리 다이어리 5

2020년 여름이 처음으로 시작한 소설 습작을 최근까지 해오면서 느꼈던 것은, 나 자신에게 솔직해야지만 제대로 된 이야기를 써낼 수 있다는 거였다. 비단 소설에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예술 전반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삶의 곳곳에 필요한 일이기도 하다. 솔직하기 위해서는 용기도 필요하지만, 우선 자신이 뭘 알고 있고 무엇을 느끼고 있는지 정확히 파악할 줄 알아야 한다. 결국 ‘나’를 제대로 알아야지만 솔직할 수 있다는 거다. 거기서부터 출발하지 않으면 ‘솔직’은 때로 무례하거나, 타인에게 함부로 상처가 입히는 무기가 될 수도 있다. 솔직함은 외적인 태도처럼 보이지만 사실 자기 자신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하루 종일 생각은 시시각각 달라진다. 잠깐 시간을 내서 일을 하자고 오전에 생각했다. 하지만 그냥 얼레벌레 시간이 지나가버렸다. 벌써 저녁 9시를 앞두고 있다. 이러다간 오늘도 밤을 새게될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내가 지금까지 4편의 글을 통해서 했던 넋두리가 우스워진다. 바쁘다며, 일이 힘들다며, 하지만 오늘 하루종일 사실상 느긋하게 시간을 보냈다. 아니, 머릿속으로는 수많은 걱정에 시끄러웠지만 사실 그걸 해결하기 위해서 제대로 행동한 것은 전화 두어통? 문자 열댓개? 정도 밖에 없다. 물론, 나니까 나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누군가 나에게 그것밖에 안했잖냐고 물으면, 아니 그걸 하기 위해서 그래도 알아보고 고민하고 생각하고 다시 자료를 찾아보고 확인했던 시간이 있다고 변명할 것이다.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그것은 나에게 솔직하지 못한 대답이라고 느끼기도 한다.


솔직함이란 생각보단 감각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인간은 마치 ‘생각’을 하는 동물인 것처럼 살아가지만 대부분의 판단을 감정에 앞서 직관적으로 내린다. (닉 채터의 <생각한다는 착각>, 조너선 하이츠의 <바른 마음> 등의 책 영향이다.) 그저 어떤 사람이든 그것을 ‘생각’인 것처럼 잘 포장하며 살아갈 뿐이다. 그게 평소의 삶에선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 하지만 자신을 솔직하게 드러내려고 하면, 자꾸만 헷갈리게 되는 것이다. 내가 표현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나는 그것을 왜 표현하고 싶은가, 그게 진짜인가, 그게 왜 나에게서 시작되었는가.


그래서 솔직한 생각보단 솔직한 감각에 집중해보려고 했다. 어떤 걸 느끼고, 어떤 식으로 반응하는지를 생각하는 것이다. 사실 지금 이렇게 적고 있는 넋두리 글도 그런 노력의 연장선이다. 그래서 나의 생각과 계획보다는 내가 현재 느끼고 있는 것에 대해 더 집중하게 된다. 되도록이면 솔직하려고 노력하고, 어제보다 오늘이 더 솔직할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오늘은 학교 후배 다은이의 결혼식이었다. 이래저래 신경쓸 일이 많아서 갈까말까 망설였지만, 그래도 가는 게 좋겠단 생각이 들어서 참석했다. 비가 올 것 같은 날씨에 나름 단정하게 옷을 입고 산뜻하게 가서 몇몇 아는 후배들을 만나 인사를 나눴다. 부부가 되는 순간을 모두에게 보여주고 축하를 받는 자리를 보는 건 늘 벅찬 감정이 있었다. 진심으로 아름답고 귀여운 광경이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뭔가 좀 더 잘하고 싶은, 잘 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밥은 먹지 않고 돌아왔다. 해야할 일들이 좀 남았으니까.


아주 어릴 때부터 책을 보거나 영화를 보면서 콘텐츠를 통해 일상을 도피하는 걸 좋아했던 것 같다. 돌아오는 버스에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친구들과 수다를 떨고, 술을 마시고, 놀러가는 것도 비슷한 일이었다. 여행도 어쩌면 마찬가지인지도 모른다. 일상에서 벗어나는 것, 비일상적인 순간을 경험하게 되는 걸 좋아했다. 그러다보니 약간 몽상가적인 일상을 사는 것처럼 보였는지도 모르겠다. (종종 너는 하고 싶은걸 다 하고 사는 것 같다는 말을 들은 적 있다.) 하지만 나에겐 그건 돌아올 곳이 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아주 소소한 일탈일 뿐이었다. 일탈? 일탈이라고 말할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냥 그래야만 하니까 했던 것 뿐인 것 같다. 막상 나는 더 큰 시도와 변화를 부러워했다. 1년이 넘는 기간 동안의 유학이라던가 이민 같은 것 말이다. 나는 그런 걸 꿈도 꾸지 못했다. 그러다 대행사 일을 시작하면서 그럴 수 있는 여유마저 많이 줄었다. 바쁘기도 하고,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해아만 하기 때문이었다. 그런 생활을 지나 회사를 옮기고, 좀 더 내가 조정할 수 있는 삶의 여유가 생기면서 오히려 다시금 그런 것을 내 일상에 채울 수 있는 영역이 생겼다. 책을 읽고, 운동을 하고, 가끔은 게임도 하고, 여행도 더 다녔다. 시간과 물질적 여유. 관계는 넓어지고 마치 세상이 넓어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실제로 조금 넓어졌는지도 모른다. 그러다 이제 시간적 여유, 심리적인 여유가 사라지자 그런 것들이 다시 자취를 감쳤다. 나는 그럼 여유가 사라진 것을 탓하는 게, 맞을까?


아니다. 나는 오히려 더 애를 써야만 한다. 여전히 나를 지키기 위해 해야하는 일들의 자리를 더 힘을 내서 마련해야하는 것이다.


지금의 나는 어쩌면 나 자신에게 실망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내가 힘들어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늘 나 자신이다. 혹시 내가 못하면 어떡하지? 밑천이 다 드러나버리면 어떡하지? 나는 인정받지 못할까봐 두렵고, 혹시 잘하지 못할까봐 걱정한다. 나는 잘하고 싶지만, 정말로 잘하고 싶지는 않은지도 모른다. 치열하게 하면 할 수록, 열심히 살면 살수록 실패의 책임이 온전하게 나에게 있을까봐, 나는 그냥 안되는 사람이 되어버릴까봐. 그래서 80점 정도에서 머무르는 것이다. 그리고 비겁하게 어깨를 으쓱한다. 열심히 노력하지 않았는데, 이렇게 되어버렸네?


꼴보기 싫은 모습. 내가 가장 타인에게 보기 싫은 모습이 나 자신에게 있었다.


소설을 쓰면서 어려운 것도 그런 거였다. 왜 아직도 반응이 없지? 얼마나 더 써야하지? 내심, 금세 성과가 날 거라고 믿었다. 생각해보면 나는 시험으로 제대로 성과를 얻은 적 없었다. 운전면허 말고는 공인된 자격증 같은 것도 없고, 흔한 토익 같은 것도 본 적 없다. 수능도 제대로 보지 않았고 대학교 시험도 사실 요행이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운이 좋았다. 운도 실력이라고 하면 감사할 따름이지만, 그냥 시험보다는 관계와 타이밍으로 지금까지 온 거라고 나 스스로 생각한다. 물론 거기에 내 자신의 노력과 능력이 없었다고 보진 않는다. 하지만 어떤 결과를 위해 악착같이 매달려서 끝까지 몰입한 적이 있냐고 물어본다면, 사실 나는 자신이 없다. 결국 나는 진짜 최선을 다해본 적이 없었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늘 '적당히' 최선을 다했다. 할 수 있는 만큼, 마음과 정신과 에너지가 닿는 만큼. 그냥 그 정도로 나아갔다가 돌아오기만을 바랐을 뿐이었다. 어차피 안되면 여기로 돌아오면 되잖아. 잘 되면 가는 거고, 안되면 마는 거지. 그러다 운 좋게 이 자리에 있을 뿐인데, 그러면서 이 자리에 또 만족하지도 못한다. 어쩌라는 거야, 정말.


그런데 소설은 점점 마음이 갔다. 이야기를 쓰는 일이 좋았다. 온전히 내가 문장을 쓰고 이야기를 쓰는 일, 그걸로 인정받고 싶기도 했다. 나도 모르는 나를 발견하기도 하고, 때로는 나도 모르게 다른 곳으로 나아간 것처럼 느끼기도 했다. 읽는 것도 쓰는 것도 다 좋았다. 잘 쓰는 사람들은 왜 이리 많아. 재밌는 소설은 왜 이렇게 널린 거야. 아직도 읽을 게 많은데, 쓸 시간은 왜 이리도 없는 거고. 써도 써도 부족한 건 또 왜 계속 보이는 건지. 나는 늘 적당히 잘 쓰려고만 했던 거 같다. 여기서 이런 느낌, 이런 문장, 이런 스토리. 사실 나도 늘 자문한다. 그래서 넌 뭘 쓰고 싶은건데, 뭐가 되고 싶은 건데?


그냥 뭐라도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뭐라도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그 생각들 모두 틀리면서 동시에 옳다. 뭐라고 되면 좋겠다고 생각하면 뭐라도 될 수 있다. 그냥 가만히 흘러가도, 적당히 열심히 하는 나의 80점짜리 마음가짐이라면 분명 뭐라도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에 내가 만족할 수 있는가? 그게 문제라는 걸 몰랐다. 애초부터 ‘뭐라도 되고 싶은 마음’에 솔직해지는데 더 집중했어야 했다.


솔직한 마음이라고 해서 꼭 뭔가 숨겨진 어떤 비밀을 고백하거나, 폭력적이거나 비상식적이거나, 말할 수 없는 에피소드를 꺼내거나 감동적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저 나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 혹은 나조차 몰랐던 나의 모습을 발견하는 일이 중요하다. 타인에겐 큰 변화로 느끼지 않겠지만 나에게 만큼은 지각 변동이 있을만큼의 자각. 맞다, 그러고보니 나의 메모장에는 이런 말이 써있다. 올해 초에 문득 생각이 나서 적어놓은 말이다.


반성과 각성.


나는 매일매일 아이폰 메모장을 갱신하며 일할 것들의 체크리스트를 업데이트하고 그날 그날의 일을 적는다. 그 상단에 사업자 번호와 몇개의 아이디와 비밀번호, 외주로 나가야 하는 비용들, 그리고 하나의 단어와 하나의 짧은 구가 쓰여있는데 그것이 1. 소설가와 2. 반성과 각성이다.


도망가고 싶어하는 나를 가두고 제대로 살게 만들기 위해, 사실 나는 나 자신을 도망갈 수 없는 코너로 몬다. 결국 나는 나의 의도적 함정에 빠져 나 자신에게 어리광부리며 발버둥치는 것이다. 게으름도 부담도 걱정도 다 나에게서 왔다. 나는 나 자신을 이겨내야만 하고, 그 방법은 행동과 실천 밖에 없다. 하기 싫을 땐 오히려 하자. 힘들 땐 더 하자. 안되면 말자. 그렇지만 미리 포기하진 말자. 싫어하면 어쩔 수 없지. 못한다고 해도 별 수 없지. 못하면 못한 대로, 잘하면 잘한 대로, 안되면 안되는 대로, 하면서 살아야 한다. 온전히 책임질 수 있는 상태로 나 자신에게 솔직한 태도를 지니는 것, 그게 내가 앞으로 되어야할 모습의 일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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