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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쌩전 Jun 02. 2024

억지로 한다고 되겠어? 응 되긴되더라

산책과 커피 : 독립 마케팅 스튜디오의 넋두리 다이어리 6

날씨가 좋다는 생각을 자주한다. 요즘 그런 시기인 거 같다. 워낙 더위에 약한 나에게 좀 덥긴 하지만, 그래도 아침 저녁 바람은 선선하고 햇살은 쨍하고 카메라를 들이대기만 하면 청춘 영화의 한장면 같은 색감이 살아난다. ‘바빠서 하늘을 올려다볼 여유도 없다’ 라는 말이 관용구로 쓰이곤 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생각했다. 어차피 어딜봐도 눈에 걸리는게 하늘인데, 하늘을 어떻게 못볼 수 있지? 하지만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눈에 걸리더라도, 시야에 담기더라도, 보이지 않는 풍경이 있는 것이다. 아름다운 것에 마음을 빼앗기기 위해선, 마음에 그만한 공간을 늘 마련해둘 줄 알아야만 한다.


몇 가지 일들이 진행이 되면서 막혔던 것들의 일부가 조금 흘러가기 시작했다. 다행이라는 감각은 있지만, 사실 크게 변한 건 없다. 그래도 뭔가 마음이 조금 달라졌다.


4월부터 시작해서 제안부터 준비했던 팝업과 브랜디드 영상이 런칭했다. 마트와 슈퍼를 가진 대기업 브랜드의 일이었다. PPL 프로젝트로 시작했는데 진행하는 동안 점점 일이 커져서 성수 인근에 4주간 팝업도 운영한다. 조금 더 쉽고 편한 (금액적으로도) 구조를 위해서 협업 파트너를 지정해준 대로 진행을 했는데, 그러다보니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그레이존이 많았다. 명확하지 못한 관계에서 정확히 잘라내지 못하는 부분은 결국 가장 낮은 쪽으로 흐르기 마련이다. 결론적으로, 부족한 부분을 채우는 건 을의 일이라는 것이다. 그 을이란 어디? 바로 나와같은 에이전시 일을 하는 사람들이 되는 것이고. 여튼 그래도 몇가지 과정을 순조롭게 나아갔다.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오프라인 공간은 대략 다 채워서 준비를 했고, 오픈은 했고 반응도 좋고, 내부 인원들을 모아서 했던 테스트 오픈 때 반응도 긍정적이었다. 모두의 도움이 없었다면 못했을 일이었다. 늘 만족스럽다고 느끼는 기억에는 함께 고생한 동료들의 헌신이 있음을 부정할 수가 없다.


카페 브랜드와 하는 일에서도 몇가지 제작과 기획들이 잘 지나가고 있다. 그중 가장 큰 캠페인 하나가 제작을 앞둔 기획의 막바지 단계에 있는데, 그래서 여러가지 미세 조정 일들이 점점 생겨나고 있다. 아이스 브레이킹은 늘 좋지만, 그 저변에 있는 날카로움과 아직 해소되지 못한 불신이 보인다. 결과로 입증하고 인정 받아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모두 월급을 받아서 먹고 사는 직장인이다. 독립은 했다고 하지만 나도 결국 생활을 위해 돈을 벌 수 밖에 없는 사람이고, 그 구조와 관계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가장 힘들게 진행하고 있었던 일이 가장 마음에 들지 않은 방법으로 마무리가 되고 있다. 짧게 말하면, 짜장면을 만들겠다는 아이디어로 시작했는데 면이 아니라 밥이 되었고, 중식이 아니라 양식이 되었는데 결국 막바지에 김치 치즈 케이크 같은 걸 만들어달라고 해서 끝이 난 줄 알았더니 결국 마지막에 사겠다고 한 건 그걸 담은 그릇과 커트러리만 달라고 한 것이다. 셰프에 입장에선 참담할 수 밖에 없는 노릇이지. 하지만 어쩔 수 없다. 그걸 알고 있으니까 더욱 힘들다. 이것 때문에 며칠 밤을 새우고 신경을 쓰며 새벽까지 일했는지 모른다. 몸이 힘든 것에 징징거리고 싶지 않지만, 결과적으로 마음이 척박해지니까 몸이 힘든 것마저 더 큰 피로로 다가온다.


여튼 다 깔끔하게 딱 떨어진 건 아니지만 대략 뭔가 진행이 되긴 했다. 단계가 넘어가는 순간 예상치 못하게 짧은 여유가 순간 찾아온다. 아, 이제 좀 쉬겠네가 아니라 오늘 더 이상 할일이 없네? 같은 순간. 그때 같이 일하는 동유 대표가 어거지로라도 놀자며 나를 붙자고 본인 동네인 수원으로 끌고 갔다. 다섯시에 성수에서 출발했는데 여섯시 반에 도착했고, 일 얘기 하지 말자고 했지만 이동하는 차 안에서 계속 일 얘기만 했다.


나무가 인도쪽으로 한참 내려와있어서 제대로 걷지 못하는 하천길을 걸으며 빽빽한 녹음을 온몸으로 느꼈다. 성 곁에 있는 길에서 불어오는 바람과 함께 바깥에 앉아 성벽과 오래된 건물이 어우러진 풍경을 즐기기도 했다. 길가다 운치있는 노포에 가서 한시간 반 동안 나오지 않는 두부김치를 기다리다가 옆 테이블에서 나눠준 안주 덕분에 깡소주를 면하기도 하고, 바인지 LP샵인지 구분되지 않지만 그게 무슨 상관이야 싶은 가게에서 맥주를 마시기도 했다. 억지로라도 놀자고 해서 갔는데, 억지로 생긴 여유에 숨통이 탁, 트였다. 마치 막혀있는 혈이 뚫린 것처럼 (멋없는 비유지만!) 갑자기 시야가 조금 넓어졌다.


억지로 논다고 뭐가 될까 싶었는데, 그래도 뭔가 되더라.


겸사 겸사 주말엔 좀 쉬어야지,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정작 쉬진 못했다. 토요일에 팝업 발주 물량에 문제가 있어서 하루종일 전화기를 붙잡고 있었고 결국 일요일(오늘)에도 오전부터 팝업에 나왔다가 오후에는 뉴웨이즈 행사에 참여했고, 저녁에는 월요일에 들어갈 미팅 준비와 제안서 작업, 디자인 업데이트를 했다. 결국 일을 했다. 마음처럼 쉬지도 못했고, 만족스럽게 일도 못했다. 여느 주말과 다를 바 없잖아! 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래도 뭔가 마음이 다르다. 토요일에 아내와 함께 영화 두편을 보았고 산책도 했다. 오가는 지하철 안에서 책도 잠깐 읽었다. (거의 한달만에 펼친 것 같다!) 상황과 마음의 문제, 그런 영향들 안에서 나를 지키는 건, 지킬 수 있을 때를 기다리는게 아니라 어거지로라도 해내야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어떤 면에선 폭력적인 말이란 생각도 든다. 그럴만한 힘과 에너지, 상황이 안되는 사람이 많을테니. ‘억지’라는 말이 잘못 받아들여지면 위험할지도 모른다. 그러기에 나를 위한 상황을 잘 만드는 것이 중요하단 생각이 든다.


뉴웨이즈라는 젊치인 성장 커뮤니티를 운영하는 브랜드와 올초 일을 함께 했었다. 뉴웨이즈와 총선 캠페인에 마케팅 파트너로 참여했는데, 그 당시 활동을 담은 영상이 나왔다. (너무 뿌듯하고 감동적인 영상이었다.) 오늘 '터닝포인트'라는 이름으로 열린 출간 기념+영상 공개 행사에 참여해서 책도 보고 영상도 보았다. 우리가 함께했던 '역공약' 캠페인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다. 끝나고 자리에 앉은 사람들끼리 기억에 남는 장면에 대한 질문을 나눴는데 많은 분들이 '역공약'을 꼽아주시더라. 당시에 힘들었던, 그리고 바쁘게 흘러가던 하루하루의 생각이 다시 났다. 지나고 난 후에 찾아오는 뿌듯함과 효능감, 나는 내 일을 다 지나고 난 후에서야 제대로 바라보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일단 물살에 휩쓸리면 큰 그림을 보기가 어렵다. 그럼 내가 물살 안에 있다는 걸 인정해야한다. 그리고 지난 뒤에 잘 보아야 한다. 잘 했을까? 나는 제대로 나를 남겼을까? 앞으로도 이런 일을 계속 해야할까? (혹은, 할 수 있을까?) 제대로 바라보는 일은, 그런 것이다.


하늘은 늘 우리 눈에 보여지고 있다. 하지만 하늘을 제대로 보려면, 하늘을 마음에 담을 의지의 공간이 필요한 것이다. ‘본다’라는 것이 그런 것처럼, 뭔가를 ‘하거나’나 ‘되는’ 것도 어쩌면 그런 것들과 연결된다고 느낀다. 불편라고 불가능해보여도 필요하면 억지로 하는 일, 억지로 만드는 시간과 공간, 그 '억지'의 마음이 사실 나를 지키는 일이 될거라고, 말이다.


혹시 여기까지 읽으신 분을 위한 질문.

Q. 최근 억지로라도 자신을 위해 한 일이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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