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코씨가 생각하는 인생의 기초와 지역의 미래란 무엇일까?
#그린즈 #추천연재 #생활의 기준
(원본링크 : http://greenz.jp/2016/01/13/junkotezuka/)
게재일 : 2016. 01. 13.
(쇼와昭和는 일본의 히로히토 천황 시대의 연호로, 서기 1926년부터 1989년까지를 이야기합니다.)
어디에 살고 어떤 생활을 만드는가. 정말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생활의 기준>은 주식회사 SuMiKa와 공동으로 자기다운 거주지와 좋아하는 생활 방식을 찾기 위한 팁을 제공하는 인터뷰 기획입니다.
(SuMika : 스미카는 일본어로 거처, 살고 있는 집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주식회사 스미카는 직접 자기가 살 집을 짓고 싶은 사람과 건축 업자를 연결시켜, 본인이 살고 싶어하는 형태 자기 '생활의 기준'에 맞는 집을 살 수 있도록 하는 플랫폼 서비스 회사입니다. 홈페이지 : https://sumika.me/)
안녕하세요. 아라이 요시미입니다. 경 화물차를 개조한 '오프그리드 이동 사무실'로 전국을 방문하는 프리랜서 르포 라이터입니다.
2014 년 가을에, 경화물차 모바일 하우스에 타고있는 사람이 이즈에서 워크샵을 한다고 해서 조금 견학을 하게 되었습니다.
새로 경화물차 모바일 하우스를 만들려고했던 것은, 시즈오카현 다가타군 간나미쵸에 사는 테즈카 준코 씨. 작업장 부지에는 작은 밭이 있고 어스 백 하우스를 건축 중이라고 해서 쥰코 씨가 어떤 사람인지, 관심이 생겼습니다.
경화물차의 화물칸에 맞춰 싣고 내릴 수 있는 캠핑 쉘을 조립하는 중
내가 참가한 워크숍은 단기간이었지만, 그 후에도 작업은 계속 되고 있었습니다. 머지 않아 준코 씨는 야마나카 호수에서 개최 된 타이니 하우스의 워크숍에도 다니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몇 달 후, 멋진 경화물차 모바일 하우스 <집시 호>가 완성되었습니다. 그리고 2015 년 8 월에 코우치에서 개최 된 <집 만들기 교습소>에 참가했을 때 직원으로 와있던 준코 씨와 다시 만났습니다.
준코 씨는 이제 세워진 지 50년 정도 된 <쇼와 집>을 구해서 조금씩 직접 리모델링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어스 백 하우스, 경화물차 모바일 하우스, 타이니 하우스, 집 만들기 등 데즈카 준코 씨가 목표로 하고 있는 생활 방식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보았습니다.
>데즈카 준코씨의 경화물차 모바일 하우스 내부를 360도 관람 (링크)
깨끗하게 정비 된 공원에 놓인 것 같이 준코 씨의 어스 백 하우스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어스 백'은 흙을 자루에 담은 「흙포대자루」를 말합니다. 석회를 섞은 흙을 자루에 채우고, 두드리고 다지면서 돔처럼 쌓아가는 건축 방법입니다. 기둥이나 대들보 등을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곡선 등 디자인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장점이 있어서 주목 받고 있습니다.
원래 있는 것 그대로를 활용해 뭔가 만드는 것을 좋아했어요. 어스 백 하우스를 알았을 때 그 땅의 흙으로 만드는 것에 매력을 느껴서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경험자를 찾다가, 어스 백 하우스 건축가인 요시다 텟페이 씨를 알게 되었습니다.
텟페이 씨는 "일본 어스백 협회"가 주최하는 워크샵에서 어스 백 건축의 기초를 배우고, 전국 각지에 어스 백 하우스를 세우는, 무사 수행 (일본 최다 제작 수!) 후 현재는 홋카이도를 거점으로 '어스 백 학교'를 열어 기술을 전수하고 계신 분입니다.
GW에서 10일간 워크숍을 했는데요. 그 때는 아래에서 4 ~ 5 단 정도 밖에 할 수 없었어요.
그 후에는 텟페이씨 부부와 각지 빌더 동료가 도와주었어요. 1개월 정도 전체 형태를 잡고, 외부에 회 반죽을 발라서 토방을 완성했습니다. 그 후에는 혼자 안쪽의 회반죽 칠을 하고 있어요.
텟페이씨는 어스 백 하우스를 만드는 수행을 할 때 경화물차 뒤에 작은 집을 만들어 살았다고 합니다. 그것을 본 쥰코 씨는 "이거 갖고 싶다!"며 첫 눈에 반했다고. 치바현 소사시에서 어스 백 하우스를 지은 동료 나리카와 켄이치 씨도 도우러 와주어서, 직접 만든 경화물차 모바일 하우스에 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는 블로그에서 "경화물차 모바일 하우스를 만들고 싶은 사람은 없습니까?"라고 호소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즉시 연락하여 워크숍 형식으로 함께 만들었습니다. 바로 후에, 야마나카 코에서 일본 최초의 타이니 하우스 워크샵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전 사실 망치를 잡은 적도 없었어요. 그래서 직접 만들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으로, 야마나카 코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타이니 하우스 워크숍을 주최한 트리 하우스 빌더로 활약하고있는 다케우치 유이치씨. 지금은 나무 위에서뿐만 아니라, 자동차 및 트레일러에도 작은 집 (타이니 하우스)을 짓고 있습니다.
진척이 느리고, 나리카와 씨가 해외에 장기간 출장을 가는 경우가 있어서 어쩔 줄 모르고 곤란해 하고 있으면, 타케우치 씨가 경화물차 모바일 하우스 만들기를 도와주었습니다. 막연히 이런 이미지로 하고 싶다고 생각한 것을 형태로 만들 수 있었던 것은, 타케우치 씨의 지식과 경험 덕분입니다.
<경화물차 모바일 하우스>의 정의는 명확하지 않지만, 캠핑 쉘 부분을 차체에 고정하지 않고 쉽게 하역 할 수 있는 구조가 특징입니다.
어디까지나 「물품」으로 적재하는 것이기 때문에 보통의 경화물차로 등록 된 그대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 치더라도, 다양한 모바일 하우스와 타이니 하우스들 가운데, 준코 씨의 <집시 호>는 넘치는 독창성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워크숍에서 만들기 시작할 때는 아직 구체적인 이미지가 아니었어요. 진행하는 사이에 "집시풍" 컨셉이 생각나서 녹슨 양철 지붕을 사용하려고 했습니다. 지붕을 어묵모양으로 둥글게 하는 것만은 처음부터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후면에 출입구 역할을 하는 문에는 둥근 아크릴 창이 있고, 그 면의 모양도 디테일합니다. 세부 사항을 보면 볼수록 "여기까지 신경쓰다니?"하고 놀라게 됩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전동 공구를 손에 넣었던 거에요. 전기 실톱을 사용하는 게 엄청 즐거웠답니다. 그래서 더 쓸 수 있는 데가 없을까 하던게, 이렇게 좋은 작품이 되어 버렸습니다.
누군가 보고 "잘했네, 좋다"라고 말할 수 있도록 것을 목표로 삼았어요. 실용적인 것은 물론, 여성성을 수용하는 것도 생각했습니다.
남자라면 외형보다는 기능에 충실 할지도 모르지요. 예를 들어, 태양광 패널이 그대로 보여지게 되어 있다거나 하는 것, 저는 그런게 싫더라고요.
집시 호가 완성된 후, 준코씨는 홋카이도와 코우치에 장기간 여행을 다녔습니다. 휴게소에 차를 대고 잠을 청할 때, 다른 캠핑카에 불이 켜져있는 것을 보고 부러움을 느꼈다고합니다. 집시 호와의 차이점은 무엇이었을까요?
내 차는 거의 잠만 자기 위한 장소였다는 것을 깨달았죠. 혼자 다니는 여행이라 대화 상대가 없었던 것도 있지만, 더 안락한 공간으로 만들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숲 속의 주차장에서 쉬고 있을 때, 옆의 문을 열고 밖을 바라보며 잠이 들면 굉장히 기분 좋았거든요.
지금은 침대에 앉으면 시선이 지붕에 닿기 때문에 밖을 완전히 바라볼 수 없어요. 지붕의 곡선이 좀 너무 심한 것 같아서 반성하고 있습니다. 역시 대자로 몸을 펴고 자고 싶으니까 다음에는 침대를 넓게 하고 앉은 상태에서도 밖의 경치를 볼 수 있게 하고 싶습니다.
어린 시절에 유민의 "수레를 타고 나가자"라는 노래가 유행해서, 마음대로 놀러나가고 원하는 장소에서 자는 것을 동경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 때는 아직 아이였기 때문에 기차를 타고 나가는 것도, 준코씨의 어머니는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집시 호를 손에 넣은 지금의 준코 씨는 어린 시절 꿈 중 하나를 이룬 것일지도 모릅니다.
집시 호를 만들 때까지 준코 씨는 목공 경험이 전혀 없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가 물건 만들기를 좋아하셨고 개집이나 닭장 외에도 목수 친구와 공동으로 민가를 정원에 이축한 경험이 있다고 하니 그런 피를 제대로 물려받았는지도 모릅니다.
준코 씨는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16세부터 독립해서 생활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미용사를 목표로 도쿄에 나와서 방송통신미용학교에 다녀 자격을 딴 후 집으로 돌아와 근처의 미용실에서 근무하다, 가나가와현 후지사와시에 있는 발모전문살롱 프랜차이즈 매장 운영을 맡게 되었습니다.
점장으로 2년 근무 후, 같은 체인의 오너로 27살 때 교토에서 독립했어요. 그 때 50살이 되면 은퇴하기로 결정했죠. 은퇴 후에 일하지 않아도 살 수 있는 걸 목표로 열심히 저축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예정보다 2년 일찍 은퇴 할 수 있었습니다.
48세에 은퇴 한 것이 인생의 큰 전환기였습니다. 하지만 22년 동안 돈 버는 것만 목표로 주식 투자를 하고 있을 때, 1%의 부자들과 99%의 가난한 사람들의 구도와 전쟁으로 장사를 하고 있는 구조가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내가 해 온 것이 세상을 나쁘게 만들어왔던건가 싶은 마음에 꽤 충격을 받았어요.
그 때 준코 씨는 "나는 사실 무엇을 하고 싶었던 걸까?"라고 자문했습니다. 그리고 어린 시절에 보던 TV 프로그램 '초원의 집'을 기억해냅니다. 19세기 말의 서부 개척 시대를 무대로 한 미국 아동 문학의 고전을, 대자연을 무대로 한 불후의 명작으로 미국에서 가족 드라마화 만들어졌고, 일본에서는 NHK에서 1975년부터 방송했었습니다.
그 영향으로 자급 자족과 지역 사회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어요. 3.11 대지진 때도 느꼈지만 여차 할 때 물이 멈추면 사람은 살아갈 수 없어요. 실제로 정전이 되어 무척 곤란했습니다.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들을 통해 누군가에게 지배되고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어요.
연금도 의지하지 않고 국가의 신세를 지고 싶지 않다고 계속 생각해왔어요. 어린 시절부터 다른 사람의 신세를 지지 않고 살아가려고 했고, 16세에 집을 나온 것은 부모님의 품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에서 였습니다.
옆에서 보면 제가 하고있는 일들이 다 제각각으로 보이겠죠. 하지만 결국 기본이 되는 것은 "자유"입니다. 내 힘으로 살아가는 것, 그게 내 인생의 테마일지도 몰라요.
직장을 그만두고 나서 준코 씨 "본래의 삶"이 시작된 건지도 모릅니다. "자기 힘으로 살아갈 것"을 테마로, 어스 백 하우스, 경화물차 모바일 하우스, 타이니 하우스 워크샵, 집 만들기 교습소 등을 다니며 배움을 이어갔고 다음은 집 뒤에 있던 빈 집을 인수하여 스스로 리모델링을 시작했습니다.
<쇼와 집>이라고 부르고 있는 이 집은 10년 정도 계속 빈 집이었어요. 왠지 모르지만, 아줌마가 살아있는 시절부터 "내가 죽으면이 집을 써주렴"이라는 말을 계속 하시더라고요.
무엇보다 그 말이 계속 마음에 걸렸는데, 마침 가끔 오시는 여동생분에게 부탁드리고 인수를 받게 되었습니다.
직장을 그만두고 교토에서 집으로 돌아와서 이웃을 바라봤을 때, 싼 것만 찾아 사는 소비 생활을 계속하는 느낌이 들었다고 합니다. 부부는 맞벌이를 나가고 노인들은 요양원에 가고 어린이는 따로 살고 있는, 어디에나 있는 지역 생활에 준코 씨는 의문을 느끼기 시작합니다.
이 동네에 집이 14채가 있어요. 근데 제 나이 또래는 모두 결혼해서 독립하고,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집들 뿐입니다.
이웃들은 저를 어렸을 때부터 알고 있기 때문에 모두 친척 같아요. 그런 가까운 사람들이 식품 안전과 유전자 변형 농작물, 원전 등의 문제를 알려주고 싶다고 생각했죠.
"쇼와 집"에서 조만간 안방 극장 상영회를 할 생각입니다. 우선, 「몬산토의 부자연스러운 음식」의 상영회를 하고 싶어요. 음식은 가장 가깝고 중요한 것이고, 텃밭을 하고 있는 사람도 많으니까요.
꽃을 기르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최근 꿀벌이 오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어요. 제초제 '라운드 업'도 다른 나라에서는 금지되어 있는데, 일본은 홈 센터에서 팔고 있어요. 문제를 알아차리기가 어렵게 되어 있지요.
(제초제 라운드업은 세계 최대 농화학 기업인 몬산토사에 1974년 개발한 제초제의 상품명입니다.)
일단 프랜차이즈 매장의 오너를 할 당시의 준코 씨는 경영자로서 많은 직원을 고용하고 있었습니다. "매출을 늘리기 위해 정보 수집 및 심리전으로 사람의 마음을 잘 컨트롤 해왔다"고 당시를 회상합니다.
어느 날, 퇴직하는 여성에게 "사람을 장기말처럼 사용한다"는 말을 듣고,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죄책감을 느끼고 슬퍼했다고 합니다.
자기 자신이 컨트롤 받고 싶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을 컨트롤 하는 것은 나쁜 짓이에요.
한 사람 한 사람이 자연스러운 상태로 있을 수 있는 곳, 그 생각에서부터 시작되는 자유로운 공간을 만들고 싶어요. 타이니 하우스 워크샵의 타케우치 씨가 만드는 세계가 아주 이상적이에요. 거기에 마침 있던 사람들이 생각한 것과 타케우치 씨의 아이디어가 잘 융합해서, 매번 다른 형태가 되어 버려요. 그가 만드는 공간의 공기가 기분 좋습니다.
안방 극장 상영회에서 다양한 문제를 발견한 후에 그대로 내던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거기에 있는 사람들이 해결방법을 생각해나갈 수있는 자유로운 발상이 있는 장소를 만들고 싶어요.
인터넷과 SNS를 하고 있어도 그래도 가장 알리고 싶은 사람, 함께 이야기하고 미래를 만들어 가고 싶은 사람은 이웃 사람들이라고 준코 씨는 말합니다.
부모에게 사랑 받고 자란 기억과 이웃 할아버지와 할머니와 함께 지내온 지역을 소중히하고 싶다.... 준코 씨 눈 앞에 떠있는 미래는, 14채의 집이 늘어선 직선 거리 200m 안에 있는 것 같습니다.
가까운 사람들과 소통하며 문제를 공유하고 일상적인 생활 방식을 의식적으로 바꾸어 가려고 하는 것은 <전환 타운>이라는 시민 활동으로도 확산되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우선, 이웃에게 말을 걸어 보지 않으시겠습니까?
글쓴이 (외부기고자)
아라이 요시미
1965 년 가나가와 현 출생. 포토 그래퍼 & 라이터. 자신이 알고 싶은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이끌어 듣고서 글을 쓰는 사람 (키키카키스트)이기도 하고, 하나의 음식을 광범위하게 먹고 걷고 그 차이에서 지역의 문화를 고찰하는 비교 식문화 연구가이기도 하다. 1996년부터 일본의 '오뎅'을 연구하고 같은 시절부터 지역 한정의 '햄버거'을 먹고 산책. 최근 저서로는 <밭에서 우주가 보이는 가와구치 유이치와 자연 농업의 세계>(타카라지마사 신서), 「<HE BURGER MAP TOKYO 도쿄 · 가나가와 · 사이타마 · 치바> 등이 있다.
(키키카키스트는 일본어 '듣다'와 '쓰다'를 기본으로 만들어진 말로 우리 말로 해석하면 듣고쓰는사람 정도가 됩니다.)
번역 / 편집 : 리이선생
clownforrest@gmail.com
열심히 살았던 사람이 새로운 방식으로 열심히 살아가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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