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로시마현 미타라이의 합동회사 <요소로>의 대표 이노우에 아키라씨
#일본 #그린즈 #마을만들기
(원본링크 : http://greenz.jp/2016/09/29/mitarai_yosoro/)
게시일 : 2016. 09. 29.
(원래 회사명은 よーそろ, 요소로よそろ는 일본어로 자연스레 다가가다, 끌리다, (파도가) 밀려오다 라는 뜻입니다. 회사명이기 때문에 현지 발음 그대로 표기하였습니다.)
올여름 방영된 음료광고, 해안의 거리를 자전거를 타고 "선생님"이 푸른 치마를 휘날리며 달리는 영상을 본 적이 있습니까?* 그 광고 촬영지는 미타라이라는 마을. 히로시마현의 구레시와 에히메현의 이마바리시 사이, 세토나이 해역에 떠있는 오사키시모지마(大崎下島)의 항구 도시입니다.
에도 시대 바람을 피하고, 밀물을 기다리기 위한 항구로서 번창한 미타라이 마을은 쇼와(1926년-1989년) 시대 이후로도 오랫동안 해운의 요충지였습니다. 그런데 전쟁 이후 신칸센과 고속도로가 정비되면서 드디어 선박의 시대는 막을 내립니다. 젊은 사람들은 도시에 나가버리고, 남아있는 나이든 사람들은 가게를 닫게 됩니다. 에도 시대 형태의 집이 남아있는 마을은, 옛날 마을 그대로 잠든 것처럼 조용한 곳이 되었습니다.
영화나 광고의 촬영지가 될 때마다 마을의 풍경을 보고 싶은 사람들이 많이 찾아옵니다. 하지만 모두 마을을 구경하고 지나칠 뿐입니다. 왜냐하면 편하게 천천히 쉴 수 있는 공간이나 가져가서 자랑하고 싶은 특산물이나 기념품을 살 수 있는 곳이 적었기 때문입니다.
"그럼 카페를 만들어 보자!"고 나선 것이 합동회사 <요소로>의 대표 이노우에 아키라 씨. 그는 4년 만에 마을 사람들의 신뢰를 얻으면서 빈 건물을 활용한 점포를 4개나 오픈하고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 새로운 사람들을 받아들여 그들이 정착하기까지 돕는 일도 하는, 다양한 활약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노우에'라고 하는 체인지 메이커를 미타라이 사람들은 어떤 식으로 받아 들인 것일까요? 그리고 이노우에 씨는 미타라이에 어떤 꿈을 그리고 있을까요? 바닷 바람이 기분 좋은 오래된 뱃집 위층에서 눈을 빛내며 말해주는 그의 이야기를 차분히 들어보았습니다.
합동회사 <요소로> 대표. 미나미 큐슈의 외벽재 업체에 7년간 근무한 후 처가가 있는 히로시마 현 구레시 중심부에 이주. 2011 년부터 같은 구레시 유타카마치 · 오사키 시모지마 미타라이 지구에서 지역 자원을 활용하여 지역 과제를 이용해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 만들기에 임한다. 뱃집 카페 <와카쵸(若長)>, 사쓰마 후나야도아토 <와키야>, 냄비 우동집 <비슈야>, <시오마치 관>을 오픈. 디자인 부문과 아내가 강사를 맡고 있는 '시니어 PC 교실'도 운영하고 있다.
천연의 좋은 항구로 알려진 구레시는, 전쟁 전에는 해군, 전후에는 해상 자위대의 일대 거점이 되었습니다. 전함 야마토를 건조한 것도 구레시의 해군 공창이었기 때문에 현재도 <야마토 뮤지엄>과 <철 고래 관>등의 박물관이 있습니다.
이노우에 씨가 미타라이를 만나게 된 것은 구레시에 살기 시작하고 시간이 좀 지났을 무렵. 구레시를 더 알고 싶다는 생각에 참여한 <구레시 관광 자원 봉사자 양성 강좌>에서 였습니다.
가이드를 하기 위해 미타라이에 와서 이런 마을이 있다는 걸 알고 몹시 놀랐습니다. 군항도시 구레시의 역사도 굉장하다고 생각합니다만,
미타라이는 "일본인이라서 다행이다"라고 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어요.
일본인이 소중히 해온 것이나, 계속 이어져 온 것, 다음 세대로 전달될 수 있는 것이
모두 여기에 있다고 생각 했죠.
어느 날 미타라이에서 가이드를 하고 있던 이노우에 씨는, 관광 자원 봉사회 회장이 해안에 남아있는 뱃집의 2 층 창문을 열어젖힌 곳을 보게됩니다. 창문이 열리고 깜깜한 방에 빛이 가득 찬 순간, 본인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고 합니다. 늘 보던 바다가, 창틀에 나누어져 너무나도 아름다웠다고.
"이건 그냥 두기 정말 아깝다"고 이노우에 씨는 강하게 생각했습니다.
그 때 회장에게 여기서 뭔가하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그게 진심으로 받아들여져서 카페를 시작하게 됐습니다. (웃음)
관광 오는 사람들에게 "천천히 있을만한 장소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니즈가 있었어요. 그러니까 섬이 이미 가지고 있는 것들을 활용하여
이 풍경에 빠져들 수 있게하면
사람들은 충분히 기뻐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미타라이가 이미 가지고있는 좋은 것들을
잘 살릴 수 있도록 표현하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하여 이노우에씨는 2011년 4월에 <뱃집 cafe 와카쵸>를 오픈했습니다. '와카쵸'는 건물이 뱃집*을 하던 시절부터 불리던 상호를 그대로 붙인 이름입니다. <뱃집 cafe 와카쵸>의 시작은, 주민들 중에 중요 전통적 건조물 보존 지구 시가지 보존 활동을 하는 '미타라이 중전건**건설을 생각하는 모임 (이하, 중전 건설 협회)'의 멤버들이 협력으로 가능했습니다.
*일본어로 후나야도(船宿), 선박 운송업소, 놀입배나 낚싯배의 주선을 업으로 하는 집을 이야기한다.
**중전건 : 중요 전통 건축물 보존의 줄임말로 역사적 거리나 건축물 보존을 위한 규제와 보호를 의미
"여기에서 카페를하고 싶다"고 중전 건설 협회장에게 말했더니,
"오, 해주세요!"라는 대답을 들었습니다.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인 저같은 사람에게 잘도 맡겨버린 것이죠. (웃음)
그리고 "저 사람이 필요한 것이 있으면 도와주십시오"라고
마을 사람들에게 말해주었습니다.
"해주세요!"라고 따뜻하게 받아준 마을 사람들의 응원에 힘입어 이노우에 씨는 계속해서 지역 과제를 넘겨 받으며 새로운 비즈니스를 만들어 갔습니다.
그런데 이노우에 씨는 미타라이에 오기 전에는 어떤 일을 하고 있었을까요? 조금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이야기를 들어 봅니다.
이노우에 씨는 히로시마시 출생으로 대학 졸업 후에 주택 외벽재 업체의 영업사원으로 미나미 큐슈에서 7 년간 근무했습니다. 그러다 결혼하고 아이가 태어나 30세를 앞둔 때, "한 장소에 뿌리를 내리고, 인맥도 사업도 자신의 손으로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에 사로잡히게 되었습니다.
회사에서는 '사람 위주로 일을 하기보다
목표 수치를 달성하는 것'이라는 벽에 부딪쳐있었어요.
하지만 상대의 문제와 고민을 듣고 그 사람이 이루고 싶은 것,
상대가 기뻐하는 일을 하고 그 결과가
자신의 기쁨으로 이어지는 것이 "진짜 일"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건 직장인의 상태로도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때의 나는 '이대로는 안되겠다'고 생각했어요.
스스로 어디까지 할 수 있을지 새롭게 도전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과감히 부인의 친정이 있는 구레시로 이주해서 인생의 리셋 기간을 보내고 있을 때 만난 것이 미타라이 마을이었습니다. 그 역사와 문화를 알고, 마을 사람들을 알게되면서 이노우에 씨는 미타라이에서 "진짜 일"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이노우에 씨에게 인생을 리셋하고 새로운 도전을 향한 동기를 물어보니 "호기심"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이노우에 씨가 말하는 '호기심'은 '자신이 어디까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시도해보고 싶다"는 마음. 그 "호기심"이 미타라이의 거리에서 충분히 발휘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뱃집 cafe 와카쵸> 가게 만들기를 들 수 있습니다. 원래, "카페가 하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카페가 없기 때문 만들었다"라고 말하는, 이노우에 씨는 사실 카페 경영의 경험이 없습니다. 손님이 들어오기 쉬운 입구 디자인, 자리 배치, 메뉴 개발에서 주방 도선 만들기까지 떠오르는 것들을 계속 실체로 만들어갔습니다.
이 섬에는 <오오쵸 (대장) 귤>이나
그대로 먹을 수있는 레몬인 <여름 레몬> 등의 감귤과
60 년 전부터 재배되고있는 <섬 아보카도> 등
이곳에서 밖에 먹을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을 지나치지 않은 방법으로 어필하여,
손님이 기뻐할 수 있게 제공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고민했습니다.
이런 것처럼, 이곳에는 제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이 산더미처럼 있습니다.
<뱃집 cafe 와카쵸>를 오픈하고 4년간 이노우에 씨는 빈집을 활용하여 새로운 네 곳의 점포 개발했습니다. 오리지널 디자인 잡화, 소품 등을 판매하는 <사츠마 후나야도 와키야>, 마을의 특산물 판매와 소상공인 임대 공간 <시오마치관> 미타라이의 소울 푸드 '냄비 우동'을 먹을 수있는 <비슈야> 모두 이미 새로운 미타라이 얼굴로 인기를 모으고 있습니다.
이노우에 씨가 진행하는 일의 독특한 점은 새로운 사업을 전개 할 때마다 마을에 활기를 불러일으킬 새로운 플레이어를 외부에서 불러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지금 <시오마치 관>을 운영하고있는 것은 과거 이노우에 씨의 자녀가 다니는 유치원의 선생님이었던 야노 토시유키 씨. 이노우에 씨가 "마을 사람들에게 자신있게 소개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미타라이로 초청한 사람입니다.
<비슈야>는 구레시에서 국수 공장을 운영하는 여성, <와키야>는 화가 부부.
각각의 장소와 스토리를 잘 살릴 수있는 사람에게
들어와달라고 부탁하고 백업하는 일을 합니다.
모두 이 마을의 팬이 될 수 있고
나에게는 없는 것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다음은 드디어 야노 씨와 함께 게스트 하우스를 시작하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요리사 등 새로운 인재를 초청하고 싶어요.
그리고 또 한가지. 이런 스피드 넘치는 점포 개발, 그리고 단순히 가게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미타라이의 마을 만들기 사업으로까지 확대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된 것은, 항구도시 미타라이가 가지고 있는 '낯선 사람'을 받아들이는 힘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노우에 씨가 가게를 연 네 곳의 빈 집은 주로 중전 건설 협회 네트워크를 통해서 소개를 받은 곳입니다. 중전 건설 협회는 1994년, 미타라이가 국가의 "중요 전통적 건조물 보존 지구 '로 선정된 해에 발족해서 이후 20 년 이상 거리의 보전과 마을 부흥 활동에 임하고 있는 단체입니다.
이 중전 건설 협회 사람들이 "해주세요!"라고 이노우에 씨의 등을 밀어 마을 사람들을 소개해 줄 때, "외부인이라고 마다하지 않고 함께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해서 받아달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내가 여기서 이런 일들을 할 수 있는 것은
계속 마을의 역사를 지켜왔던 사람, 여기에서 생활을 이어온 사람,
모두가 지속해왔던 활동이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외부에서 온 사람이며, 이 마을을 존경하고 있습니다.
그 감각을 항상 유지하려고 노력합니다.
외부인으로서 제 삼자의 시선과 마을로 들어간 내부의 시선을 모두 담아
이 마을에서 뭔가를 표현하고 싶습니다.
또한 이노우에 씨는 미타라이 사람들이 "사람을 모로 보지 않고 가깝게 다가와주는 것"도 도움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미타라이 사람들은 남을 도와주는 것을 대단히 좋아하고 붙임성이 좋아요.
자주 "밥은 있느냐" "이쪽은 정리했다"라면서 도와줍니다.
사람과의 거리감이 가까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번성했던 항구 도시이기 때문에 지나치지 않고 담백한 부분도 있구요.
중전 건설 모임을 통해 이노우에 씨가 마을과의 관계를 맺은 것처럼, 이번에는 이노우에 씨가 마을과 새롭게 마을로 들어온 사람들 사이에 서서 매칭을 지원하는 역할을 담당하기 시작했습니다.
지난 해 도쿄 유라쿠쵸에 있는 히로시마현의 이주 상담 창구 <히로시마 생활 지원 센터>를 통해 이노우에 씨의 활동을 알게 된 한 쌍의 부부가 미타라이로 이주를 결정했습니다. 다큐멘터리 사진 작가와 요리 작가 부부는 다이쇼 시대에 지어진 100년이 넘은 오래된 집에서 살기로 하고 빈 사무실을 개조해 사진관을 오픈했습니다.
마을 밖에서 누군가를 데려 오는 경우,
자신감있게 마을 사람들에게 소개 할 수있는 사람에게만 말합니다.
지금 이 마을에 없는 부품이 되어 활약 해준다면
마을에 플러스가 되는 것은 틀림없다고 생각하니까요.
제가 오라고 말한 이상, 외면하는 일은 절대 없습니다.
점점 일을 만들어 내지 않으면 안되고, 고민이 있으면 들어주기도 하는 등
여러 가지 뒤따르는 일들도 하고 있습니다.
그런 것들이 모두 가능한 컴팩트함도
미타라이의 좋은 점이 아닐까하고 생각합니다.
1시간 정도면 마을 전부를 다 걸어서 돌아볼 수 있는 미타라이 마을. 이노우에씨는 마을의 크기처럼 소박하고 가까운 사람간의 거리를 잘 살려서 마을에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이노우에 씨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서 매우 인상적이었던 것은 '내가 하고 싶은 것은 이거야! "라는 느낌이 없다는 것. 마을의 과제, 마을 사람들의 생각, 그리고 외부에서 오는 관광객과 이주민의 요구를 파악하면서 다양한 코디를 즐기고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렇네요.
양보할 수 없는 것을 유지하면서도
어떻게 유연하게 상대에 맞춰갈 것인지가 중요해요.
저도 좀 더 그 기술의 수준을 올리지 않으면
여러 사람이 기뻐할 수 있는 가치를 제공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중전 건설 협회의 사무 총장으로 미타라이의 마을 만들기 전체에 눈을 돌리게 된 이노우에 씨. 지난해는 주민에 의한 <중전 건설 지역 · 미타라이> 마스터 플래너로써 <미타라이 미래 계획>을 책정. 마을의 과제를 파악하고 그 해결을 위해 해야 할 일을 정리했습니다.
예를 들어, 관광 명소의 질을 향상하고 도시를 이해할 수 있는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생각한 것이 <미타라이 박물관 구상 (에코 뮤지엄)> 미타라이의 거리 전체를 "박물관"에 비유하고, 마을을 보여주는 방법을 궁리하는 동시에 수익도 올리고 싶은 방향성도 함께 가져가는 계획입니다.
<미타라이 박물관 구상 위원회>는 구레시 광역 상공회를 중심으로 중전 건설 협회, 세토우치 관광 추진기구, 히로시마현 구레시, 그리고 외국인 지식인과 건축 디자이너 등 26 명의 위원에 의한 다방면의 "다른 곳의 시선"을 통해서 도시의 방향과 비전을 다져가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위원회에서 얻은 "외부인의 시선과 의견"은 미타라이에 가져가 마을 전체에 공유되고 "외부에 걸맞는 표현과 행동"에 연결시키게 됩니다.
'어디에나 있는 기념품'이 늘어선 관광지가 아니라
'여기에 오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 장소가 되고 싶습니다.
대중 교통 수단이 없어도 어떻게든 가고 싶은 마을.
그것이 박물관 구상의 지향점입니다.
각각의 단체나 개인으로 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만,
여기에 사는 주민이 미타라이의 미래를
어떻게 그리고 어떻게 추진해 나갈 것인지
생각을 공유하고 행동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여기 살게 되어 참 좋았다고 생각하게 되는 마을이 되기 위해서 말이에요.
만약 이 글을 읽고 뭔가 느껴지는 게 있다면, 이노우에씨와 야노 씨를 만나러 그 풍경 속으로 떠나는 여행을 계획해봐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곳에 오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을 느껴보세요.
가을은 달콤하고 맛이 진한 <오오쵸 (대장) 금귤> 수확의 계절입니다. 우선은 느긋하게 흐르는 시간을 느끼면서 한가로이 바다를 바라보게 되는 미타라이를 만나 보지 않으시겠습니까?
(촬영 : 요시다 료토)
- INFORMATION -
<히로비로> 히로시마 이주 서포트 미디어
http://www.hiroshima-hirobiro.jp/
글쓴이
스기모토 쿄코
greenz 수석 라이터
오사카 출생, 도쿄를 지나 교토에 거주. 간사이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프리랜서 작가. 사람의 말을 있는 그대로 듣고 깊이 있는 테마 인터뷰에 임한다. 인터넷 사원 <히간지(彼岸寺)>에서 스님 인터뷰 연재 중.
번역/편집 : 리이선생
clownforrest@gmail.com
미타라이에 가고 싶어지네요. 이노우에씨는 지금 누구에게 우리 마을로 와달라! 고 말하고 계실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