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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쌩전 May 10. 2017

소셜디자인 교육이란 뭘까?

야마자키 료 X 아사다와타루 X 카네마츠 요시히로 대담

#일본 #그린즈 #소셜디자인


야마자키 료 × 아사다와타루 × 카네마츠 요시히로 "소셜 디자인을 교육한다는 건 대체 뭘까?"

(원본 링크 : http://greenz.jp/2017/01/31/social_design_education/ )

게시일 : 2017. 01. 31.



<소셜 디자인>의 유행과 함께 소셜디자인에 관한 강의와 수업이 많아졌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현장 이야기를 들어보면 아직도 부족한게 많은 상황에서 이제 막 조금씩 만들어가고 있는 게 현실이라고 합니다.


그렇게 말하는 저 (카네마츠) 자신도 교토 세이카 대학 인문학부에서 한 해 동안 소셜디자인 수업을 담당했습니다. 2학기 수업이 끝나고 나니 "나는 소셜 디자인을 가르칠 수 있는가?" "소셜 디자인을 교육한다는 건 대체 뭘까? '라는 근본적인 질문이 머릿속에서 맴돌고 있습니다 .


그래서 이번에 <소셜 디자인 아틀라스>등의 저자이며, 토호쿠 예술 공과 대학 커뮤니티디자인 학과장을 맡고 있는 studio-L 야마자키 료 씨와  <살며, 열다> 등의 저자이며, 교토 세이카 대학 대중 문화 학부에서 <소셜 디자인 연습>을 담당하고 있는 아사다와타루 씨, 두 분을 초청하게 되었습니다.


대담은, 야마자키 씨의 <소셜 디자인에 필요한 최소한의 스킬은 뭘까?>라는 질문으로 직구를 날리며 시작합니다. 그걸 통해 보이기 시작한 것은 <대학, 그 자체로서의 소셜 디자인>이라는 큰 비전이었습니다.



소셜 디자인에 필요한 최소한의 스킬은 무엇일까?


야마자키 료 씨


야마자키 씨 갑자기지만, 아사다 씨와 카네마츠 씨는 소셜 디자인에 필요한 최소한의 스킬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예를 들어 "디자인"이라고 부르는 이상, 그림을 그리거나 물건의 형태를 아름답게 하는 기술이 필요하다던가 말이죠.


카네마츠 그러고보면, 야마자키 씨의 커뮤니티 디자인학과에서는 1 학년에게 스케치하는 방법을 가르치고 있지요. 깨닫지 못했던 부분이라 "과연!"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야마자키 그림을 잘그리고 못그리고 보다는 개념을 정리하고 다른 이에게 전달하는 능력이 커뮤니티 디자이너에게 필수이기 때문입니다.

핵심 아이디어가 중요한 건 당연합니다. 다만 제가 생각하는 건, 그 결과물의 퀄리티를 높이기 위한 기술을 소셜 디자인 수업에서 가르쳐야 하는지에 대한 것입니다.


아사다와타루 씨


아사다 씨 저는 음악이나 패션을 만들거나 전달하는 사람을 키우는 대중문화 학부에서 수업을 하고 있습니다. 학생들은 학부의 다른 수업에서 뭔가를 만드는 것을 배우게 되죠. 그렇게 만들어진 작품을 어떻게 사회에 전달할 것인가 하는 부분을 제가 가르치고 있습니다.


카네마츠 저도 같습니다. 인문학부의 다른 수업에서 연구와 에세이 등을 하고 있어서, 저는 본인이 좋아하는 일이나 관심있는 것을 어떻게 사회와 연결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춰서 수업하고 있습니다.

하나의 키워드는 "자신에게도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는 "자기 효능감 "인데, 굳이 말하자면 마인드셋과 TO BE (되는 것)에 가까운 이야기이므로, 만일 TO DO (하는 것)에 대해 물으신다면 좀 더 정리가 필요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야마자키 씨 그러면 커뮤니티 디자인학과가 가진 특유의 딜레마일지도 모르겠네요. 음악과 패션, 문장 등 자신의 핵심 표현방법이 있고, 그 결과물이 사회를 향하고 있다면 소셜 디자인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스스로는 아무것도 만들 수 없어도 "소셜 디자인 전문가입니다"라고 할 수 있는 것인가. 할 수 있다면, 그것은 어떤 의미를 갖게 되는 걸까요. 지금까지는 컨셉을 만들거나 그 방면에서 돈을 벌었다거나 하는 건 '프로듀서'의 역할이었죠.


카네마츠 요시히로 ( greenz.jp 전 편집장)


카네마츠 <커뮤니티 디자인 전문가>라고 하면 적어도 커뮤니티 디자인의 역사와 사례, 기술에 대해 풍부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지, 실제 워크숍 현장에서 무언가가 일어날 때 임기응변으로 대응할 수 있는 지 등이 필요하다고 생각이 되네요. 그에 비해 <소셜 디자인>이라는 말은 더 막연합니다. 애초에 <디자인>이라는 말을 어떻게 인식하느냐가 어려운 일인 것 같습니다.

저는 어디까지나 과제를 창조적으로 해결해 나가는 의미에서 '디자인'을 생각하고 있고, 인문학부에서는 아무래도 유형적인 것이 아니라 무형적인 것(개체인 물건으로서가 아니고 파악한 의식·사고의 대상; ‘もの’보다는 추상적인 것)을 만드는 것이 목표입니다. 하지만 확실히 아이디어만 생각하고 다른 일은 누군가에게 맡기는 것이 아니라 웹사이트나 웹진, 가구 등 잘 못해도 좋으니 뭔가 자신의 손으로 만드는 경험은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아사다 씨 제 수업 이름은 <소셜 디자인 연습>입니다만, 처음부터 그렇게 정해져 있던 이름이기 때문에 사실 계속 불안했습니다. 원래 저는 디자이너가 아니고 디자인의 역사에 정통한 것도 아닙니다. 그런 제가 학생에게 바라는 점은 음악과 패션이라는 작품을 만드는 것뿐만 아니라 그 사용 방법을 넓혀가는 센스이에요.


카네마츠 예를 들어 어떤 수업을 하고 계시나요?


아사다 씨 하나는 가까운 일상 속의 소셜 디자이너 인터뷰 입니다. 처음 오는 학생들은, 자신이 어떤 주제에 관심이 있는지도 모르고 있는 수준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인간 관계에서부터 이어질 수 있는 사람들 중에 소셜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을 만납니다. 인터뷰를 통해 소셜의 요소를 자기 나름대로 인식하고 거기서부터 어떤 식으로 지금의 활동까지 이어져왔는지 물어보는 것입니다. 그렇게 발상을 위한 행정의 상황까지 알게 되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카네마츠 그거, 인문학부에서도 해보고 싶네요. (웃음) 리빙 월드의 니시무라 요시아키 씨는 조형 교육의 앞으로의 영역을 둘러싼 디자인 교육의 시도로 <프리디자인(Pre-design)>이라는 수업을 하고 있습니다. 만약 <프리 소셜 디자인>이라는 수업이 있다면 어떤 내용을 가르치게 될까요.


아사다 씨 한 번 고민해보고 싶네요.


카네마츠 어쨌든, 지금까지 교토 세이카대학의 소셜 디자인의 방향성은 무형적인 것을 만드는 성향일지도 모르겠네요. 물론 유형적인 것과 무형적인 것, 모두 할 수 있는 것이 이상적이지만 말이죠. 그저, 언어라는 것은 정말 어려운 것이구나라고 느끼고 있습니다. <소셜 디자인>이라고하면 디자인 공부를 하는 학생에게는 관심을 받을지도 모르지만 인문계 학생에게는 확 와닿지 않는 경우도 많아요.

결국, 문학을 전공하거나 역사학을 배우더라도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나 자신이 가진 전문성을 어떻게 사회적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만들어 나가는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소셜 편집> 또는 <소셜 크리에이티브 라이팅> 같은 인문학부 학생에게도 와닿는 새로운 라벨이 필요하겠다고도 생각됩니다.


아사다 씨 그것은 대중문화학부도 마찬가지입니다. 선택 필수라고해도 '정말로 관심있는' 사람은 좋게 말해 30% 정도 아닐까요. 단지 <뭘 하고 싶은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기존 틀을 넘어 뭔가 해보고 싶다!> 라는 학생들이 모이는 곳이 되어가는 기분은 듭니다. (웃음)


카네마츠 그 기대감은 그 나름대로 중요하겠네요. 참고로 내년부터 참고로 내년도부터 예술, 디자인, 만화, 대중문화, 인문의 전문성을 사회에 배포하는 힘을 몸에 익히는 프로그램 "SEEK (Socially Engaged Educational Key) '가 시작됩니다.

거기선 인문학 뿐만 아니라 다른 학부들과 교류하며 소셜 디자인 수업을 하게 되었기 때문에, 다양한 실험들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소셜 디자인>을 분해하다


화이트 보드도 풀 활용


야마자키 씨 <소셜 디자인>이라는 개념이 모호하니까 조금 분해해 보는 게 좋겠어요. 예를 들어 <소셜 아트>와 <소셜 디자인>의 관계라던가 말이죠.

앞서 얘기했던 <좋아하는 것>과 <사회에 도움이 되는 것>이 반드시 일치하는 건 아닙니다. <과학>도 그 성과를 사회에서 필요로 할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기술>이 됩니다. 마찬가지로, 다양한 제약 조건과 표현 가능성의 정도 차이를 생각했을 때, 아트라고 하기보다는, 자유롭게 생겨나는 어떤 것이 사회의 니즈와 딱 들어맞았을 때, 디자인이 된다고 할 수 있어요.

그렇다면 예술 프로젝트를 통해 사회를 바꾸려는 <소셜 인게이지먼트 아트>와 같은 분야는 과연 소셜 디자인이라고 할 수 있는 걸까요?


카네마츠 직접적인 의도가 있는 경우와 간접적이거나 결과적으로 그렇게 되는 경우가 있죠.


야마자키 씨 아사다 씨의 특기인 음악으로 말하자면, 순수하게 작품과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음악, 고독사를 없애주는 음악, 총을 곁에 두고 싶어지는 음악은 과연 어떻게 다른 걸까요.


아사다 씨 점점 복잡해지고 있네요 (웃음)


야마자키 한편 <커머셜 디자인>에 대한 개념으로서의 <소셜 디자인>도 있군요. 소비 사회가 퍼진 20 세기 중반부터 어느새 사회적 니즈 = 주주의 책임, 기업의 성장, 매출 확대, 상품의 차별화가 되어 버렸다.

원래 19 세기 말부터 20 세기 초반의 아트 앤 크래프트 운동과 바우 하우스의 시대는 디자인이라고하면 소셜의 영역이었고 빈곤과 공해에서 사람들을 구하는 것을 목표로 했던 것이 디자이너였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상업적인 디자인 활동이 주류가 되었기 때문에 일부러 <소셜 디자인>이라고 구분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죠.


카네마츠 사실 그렇게 구분하지 않아도 되는 게 이상적이긴 하죠.



야마자키 씨 또한 어려운 것이 <소셜 디자인>라고 할 때 '무엇을 만드는가'와 '어떻게 만드는가 "의 차이입니다.

제품 디자인, 그래픽 디자인이라고 하면 디자인하는 "대상"에 대한 것입니다. 하지만 유니버설 디자인, 지속 가능한 디자인, 인클루시브 디자인*은 디자인 할 때의 "생각하는 법"에 대한 것입니다. 커뮤니티 디자인도 <커뮤니티를 만드는 것>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참여형으로 결정해가는 방법론>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유니버설 디자인, 인클루시브 디자인 : 장애, 인종, 지역, 교육유무에 가리지 않고 소외받는 사람 없이 모든 사람을 위한 디자인을 지향하는 태도, '범용 디자인'이라고도 불린다.


카네마츠 인클루시브한 제품을, 커뮤니티를 통해 만드는 것처럼.


야마자키 씨 그렇죠. (웃음) 이 분류에 의하면, <소셜 디자인>은 <사회를 디자인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니즈에 부응하는 디자인>이라고 본다면 좀 더 윤곽이 명확해지는 것 같지 않나요.



아사다 씨 덧붙여서 사회에 도움이 되는 아이디어를 생각하는 훈련으로서, 제 수업에서는 <Yahoo! 지식검색>*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곳에는 한 번 생각해보고 싶은 고민들이 많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외톨이가 되어가고 있어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와 같은 이야기말이죠.

*네이버 지식IN과 같이 질문하고 일반인들이 답변하며 지식을 공유하는 서비스

그래서 학생들에게 '어떤 노래를 들려준다면, 이 사람을 달래줄 수 있을까?' 라는 과제를 냈습니다. 이미 있는 곡들을 통해 플레이리스트를 만들고 거기에 이유를 달아주면서 말이죠. 음악이나 패션 업계에도 비단 만드는 사람만 있는 게 아닙니다. 그래서 이런 과제를 하고자 했습니다.

이미 있는 것들을 편집해보는 것으로 새로운 규칙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음악과 패션을 좋아한다면, 그것들을 따로따로 맥락을 만들면서 다루는 방법부터 만들어가며, 일의 폭을 넓혀가는 것이 목표랄까요.


카네마츠 그렇군요. 제 경우는 <각자 '마이프로젝트'를 가져봅시다> 라는 것이 목표입니다. '마이프로젝트'란 <누군가에게 부탁받은 것은 아니지만, 그 사람에게 밖에 없는 문제의식에서 시작 된 프로젝트>로, 소셜 디자인으로 들어가는 입구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흔히 <Will (하고 싶은 일)>, <Can (할 수 있는 일)>, <Must (해야 하는 일)>을 쌓아갑시다, 라는 말을 듣기도 하지만, Will = <원하는 미래>에 대해 깊이 생각할 기회가 의외로 적은 게 현실입니다. 그래서 학생들이 마이프로젝트를 생각하는 것을 통해 Will에 대해 깊이 파고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야마자키 어떤 마이프로젝트가 있었나요?



카네마츠 일전에 <18:00 이후 학생이 있을 곳을 만들고 싶다>라는 Will에 <게임을 좋아해!>라는 Can을 결합한 게임대회가 열렸습니다. 교실의 큰 화면으로 포켓몬과 스마브라(스매쉬 브라더스)를 모두 함께 하는 이벤트입니다만, 수업 때와는 다른 학생의 일면을 볼 수 있었어요.

거기서 발견한 건 게임이 가진 본질적 가치입니다. 예를 들어, 게임에 너무 몰입한 나머지 있는 그대로의 자기 모습을 드러내는 경우도 있었어요. 그렇게 서로 낯설었던 사람들이 친해지고 캠퍼스에서 조금씩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이가 되어간다면, 어쩌면 외로움을 느끼고 있던 학생들에게 좋은 기회를 마련하는 자리가 될 지도 모르죠.

이런 식으로 <좋아하는 것>을 툴TOOL로 사용해서 실제로 사회를 움직일 수 있는 것이 가능하다고 느끼게 해주고 싶습니다.


아사다 씨 그것이 서로 붙어 있고, 여러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더 즐거워지는 것이죠.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조금씩이라도 좋으니 자신의 언어로 말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한 번에 알 수 없는 어려운 문제 의식이라도 '저 사람은 저걸 원하는구나'라고 알아주는 사람이 주위에 분명히 나타나게 되니까요.



커리큘럼 디자인으로 가능한 것



카네마츠 하지만 지금 인문학부가 가진 위상으로서는 다른 수업과 연계도 별로 없다보니 일주일에 한 번 하는 수업으로는 열정이 식어버리기도 합니다. 그러다보니 커리큘럼 관리가 잘 되어있는 야마자키 씨의 커뮤니티 디자인 학과가 솔직히 부럽습니다.

원래는 다른 분야의 교사들과 함께 세미나를 통해 배운 것을 토대로 마이프로젝트를 한다거나, 이쪽에서도 세미나에서는 보이지 않았던 부분을 공유한다거나 할 수 있다면, 더 창조적이고 효율적인 수업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래서 내년에는 그런 방향으로 좀 더 움직여보려고 해요.


야마자키 씨 확실히 아무것도 없을 때부터 하나 하나 만들어갔기 때문에 전부 코디네이션 할 수 있었다는 건 좋은 점입니다. 교직원도 studio-L의 직원이기 때문에 다양한 것을 시도해볼 수 있었죠.

커리큘럼을 짤 때 참고했던 건 제가 유학했던 호주 멜버른 공과대학의 수업입니다. 모든 교과과정 중심에 디자인 스튜디오가 있는 것이 특징이에요. 모든 수업의 성과가 그곳으로 집약되는 것 같은 형태의 커리큘럼으로 디자인 되어있어요.

예를 들어, <공원을 디자인하십시오> 라는 과제가 주어졌을 때, 일주일에 한 번, 그 수업에 도움이 되기 위해서 디자인 스튜디오를 위한 모형을 다른 수업에서 만들거나, 또 다른 수업에서 과제에 필요한 사진을 촬영하거나 하는 거죠. 각기 다른 수업들을 서로 이어지도록 관계를 만들고 낭비가 없도록 하고 있어요.


카네마츠 정말 부럽네요.


야마자키 씨 게다가 절반 정도가 사회인이기 때문에 각각 경험의 차이도 배울 수 있고요.


카네마츠 그 점도 훌륭하네요. 소셜 디자인 워크숍을 할 때는 참가자의 다양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지금 일본의 대학교 2학년생은 만 20세 전후이므로, 아무래도 동질성이 높다보니 매너리즘을 느끼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럴 때, 사회인 대학생이 더 많아지는 것이 결과적으로 더 깊은 배움으로 이어지고 그야말로 저출산 시대에 걸맞는 대학의 새로운 역할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야마자키 씨  결국 표층을 바꾸는 것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제가 교토 조형 예술 대학교에서 학과장을 담당했을 때, 몇년 동안 학과의 마인드를 바꾸기 위해 교수와 교직원들에게 소셜 디자인 강의를 많이 했습니다. 그걸 정리한 것이 사실 <소셜 디자인 아틀라스> 가 되었죠.


카네마츠 우선 변화는 안에서부터, 라는 것이지요. 저도 지금 <헤이안 문학자X고령자 복지> 처럼 <인문학적 소셜디자인>의 사례를 모으거나 만들면서 연구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성과를 제일 먼저 교원들과 함께 공유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하고요.



아사다 씨 그나저나, 앞으로 시대가 바라는 대학의 역할은 무엇일까요. 저는 지금 음악을 하고 있지만 사실 대학교 전공은 법학이었습니다. 음악을 하던 건 동아리였죠. 즉, 어떤 영역에 관심을 가지고 그걸 자신의 경력으로 만들어가는 것은 학업과 별개로 보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지금의 학생들을 보고 있으면 좀 지나치게 착실한 부분이 있는 것 같다고나 할까..


카네마츠 음, 확실히 좀 수업이 운신의 폭을 너무 비좁게 만들어버리는 부분이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내 소셜 디자인 수업은 일주일에 한 번, 한숨 돌릴 정도가 딱 좋으려나...


아사다 씨 어느 정도 자유로움을 가지는 건 매우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를 만났을 때, 그 옆에 우연히 있던 사람과 몇 년 후에 굉장히 사이가 좋아진다거나 함께 일을 하게 될 수도 있어요. 그렇게 관계는 계속해서 업데이트되고 달라지게 되니, 우연성도 고려한 감각을 가졌으면 합니다. 반대로, 그런 의미에서 지금 자기 자신의 감각을 너무 신용하지 말라고도 하고 싶고요. (웃음)


야마자키 무엇을 가르치더라도 떠나는 사람은 반드시 있기 마련이죠. 제가 커뮤니티 디자인학과에서 늘 말하는 것은, <고향을 건강하게 만드는 사람을 만든다>는 것입니다. 꼭 태어난 곳, 자란 곳 등 출신지에만 국한시키는 것이 아니라 신세를 진 사람이 있는 곳이 <고향>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사회에 환원하는 방법이 취업 이외에도 굉장히 많이 있다는 것을 알게 해주고 싶어요.

정말 중요한 것은 마음의 불을 태우는 것입니다. 그리고 새로운 불을 붙이는 방법이나, 불을 때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 대학이죠. <사회를 위해서> 라는 생각에 불이 타오른다면 그것을 목표로 하면 되고, <자신을 위해서> 하는 것이 땔감이 된다면 그것도 그 나름대로 좋습니다. 어느 경우에도 결국, 타인에게 감사하는 일을 계속하고 있다면 점차 길은 열리게 될 것입니다.


(대담 여기까지)


소셜 디자인 교육을 둘러싼 생생한 대담, 어땠습니까?

새로운 커리큘럼을 통해 어떤 성과가 있었는지, 졸업까지 기다리지 않으면 실제 결과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알 수 없습니다. 또 사회에 나가서 10년 정도 지나서야 처음으로 떠오르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기획은 조금 서두른 것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렇게 시행착오를 공유하는 것이, 보다 좋은 소셜 디자인 수업으로 이어질 거라고 믿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누군가에게 소셜 디자인을 가르쳤을 때, 어떤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시나요? 

꼭 좋은 제안 기다리겠습니다.



(촬영 : 나라 유코)



글쓴이

카네마츠 요시히로

공부가 / <그린즈> 전 편집장 / 교토 세이카대학 인문학부 특임강사

1979 년 출생. 웹 디자이너로서 NPO 지원에 참여하면서 "디자인은 세계를 바꿀 수 있는가?'를 주제로 전세계 디자이너와의 인터뷰를 연재. 그리고 소셜 디자인을 위한 팁을 발신하는 웹 매거진 'greenz.jp' 출시와 함께 하게 되어, 2010년부터 2015년까지 편집장을 역임.

2016 년 프리랜서 공부 작가로 독립하여 교토 세이카 대학 인문 학부 특임 강사, 공부 공간을 리노베이션하는 프로젝트 <everyone's STUDYHALL!>의 발기인, <일은 노는 것> 워크샵 유닛 <cotone cotône> 멤버로서 교육 분야를 중심으로 활동 중.

저서로는 <소셜 디자인>, <일본을 소셜 디자인하다>, <공해와 소셜 디자인> 연재 등.

아키타 현 출신, 교토 거주. 한 아이의 아버지.



번역/편집 : 리이선생

clownforrest@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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