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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이상 Oct 23. 2018

시골은 정말 '아무것도 없는' 곳일까?


#일본 #그린즈 #지역 #마을 #청년


시골은 정말 '아무것도 없는' 곳일까? 10년 간 도쿄에서 산 프리랜서 작가, 고향으로 다시 U턴 한 이유*


*U턴 : 공부, 취업의 이유로 도시에 나온 젊은이가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

(원본링크 : https://greenz.jp/2018/10/05/setoshi_uturn/ )

게시일 : 2018. 10. 05




태어나 자란 마을로 돌아가서 공기를 마시면, 왠지 편안해집니다.

마을에 뭐가 대단한게 있는 것도 아닌데.

언젠가 고향으로 돌아가버릴까? 라고 생각하다가도, 돌아간다고 한들 일자리도 없고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해서 포기해버리는 분들이 많을 겁니다.


저는 아이치현의 세토시라는 작은 마을 출신입니다. 고등학교 때 여행작가가 되겠다고 결심하고, 졸업 후 3년 정도 아르바이트로 모은 돈으로 해외를 떠돌다 출판사가 모여있는 도쿄로 뛰쳐나갔습니다. 운 좋게도 아주 좋아했던 여행잡지를 만들던 진보쵸*의 작은 출판사에서 일할 수 있게 되었고 이후에 독립하여 글을 쓰는 걸 생업으로 삼아 살아왔습니다.


*진보쵸 : 일본 최대의 출판 및 서점가


도쿄로 나온지 벌써 10년.

올해 5월, 33살에 저는 옛날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한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모르는 사이, 마을에 젊은 '츠쿠리테*'들이 모여서 뭔가를 창작하는 사람에게 살기 좋은 분위기를 가진 곳이 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제가 '돌아가자' 라고 결단하기까지의 리얼한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츠쿠리테(ツクリテ) : 무언가를 직접, 손으로 만드는 사람 메이커, 제작자, 창작자 등과 유사



<세토모노*>의 마을, 아이치현 세토시

*세토모노 : 일본 도자기, 사기그릇


나테츠세토선 오하리세토역 앞 세토가와 거리 풍경.


아이치현의 세토시는, 현 북부 산간 지역에 있는 인구 약 13만명의 작은 마을입니다. '세토모노'의 유래가 된 야키모노(도자기) 산지입니다. 나고야시 중심부에서 메이테츠세토선으로 약 30분 정도 거리에 있습니다. 메이테츠세토선의 종점인 오바리세토역에서 내리면, 세토강변에 '세토모노'를 파는 도자기가게가 줄지어 있고 다리 난간에는 도판 그림이 장식되어 바닥과 벽에 모두 도편으로 가득 차 있는 걸 볼 수 있습니다.


 후카가와 신사 참도. 안쪽에는 세토 지역다운 모습의 가게가 줄 서있는  '미야마에 지하 거리'



하지만, 지금 34살인 제가 어릴 때부터 고등학생 때까지 가지고 있는 세토시의 이미지는 '아무것도 없는 동네' 였습니다. 신흥 주택단지로 개발된 지역에서 자랐기 때문에 '도자기'의 산지라고 하는 지역의 특징 같은 건 거의 느끼지 못한 채 자라왔습니다.


유일하게 느낀 건, 1년에 한 번 열리는 '세토모노 마츠리(축제)' 때, 마을의 중심부를 흐르는 세토 강에 사람들이 많이 모여 축제 가마를 세울 때 정도였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초등학교 시절엔 기모노 같은 건 쳐다보지도 않고 친구와 함께 축제 포장마차에 가서 초코 바나나를 목표로 달리기나 했지만 말입니다.


제가 태어났을 때부터 지금까지도, 당장 유행하고 있는 것들이나 트렌드 같은 건 이 마을엔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여기저기서, '이미 벼랑 끝에 다다랐다' 던가 '경기가 좋지 않다' 거나 '장사하기 어렵다'는 얘기가 돌았고, 도예 관련 된 쪽에서는 '사양 산업으로 완전 빈사상태'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다보니 동급생 대부분이 나이를 먹으며 이 마을에서 나오게 되었죠.





카미우라 미쿠 (上浦未来
글쓰는 사람. 1984년 세토시 출생. 시내 주택단지에서 자라 중학생일 때 세토시에서 빠져 나오기 위해 나고야 시립 메이토 고등학교 영어과에 입학. 고등학생 때 여행작가가 되기로 결정. 졸업 후 해외를 방랑, 도쿄 진보쵸에 있는 주식회사 데코에 입사. 이후 독립. 2015년 도쿄의 분쿄구 네즈에서 가나가와현 오이소로 이주, 2018년에 오이소에서 세토시로 U턴. 같은 해 7월, 아이치현 세토시 마을 산책 Web 에세이 <호야호야*> 오픈.

*호야호야(ほやほや) : 따끈따끈하고 말랑말랑한 모양, 마치 호빵과 같은 촉감의 의태어



근데 왜 세토시로 돌아왔나?

진심으로 고민하기 시작한 건, 2018년 초, 빵을 만드는 남동생으로부터 '세토에 빵집을 여는데 도움이 필요해' 라는 부탁을 받은게 계기였습니다.


당시에 저는 카나가와현의 오이소쵸라는, 산과 바다에 둘러싸인 작은 마을에 살고 있었습니다. 취재 차 처음 방문했을 때 역에서 내리는 순간, 반해버리고 말았죠. 매월 셋째주 일요일에는 낡은 가게를 운영하는 사람도 젊은 작가들도 모이는 <오오이소시> 라는 곳이 있어서 매번 두근두근했습니다. 살면 살 수록 점점 마을이 좋아지고, 정말 좋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함께 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와중에 사랑하는 어머니가 병으로 쓰러지시고 오이소와 세도를 오고가는 날들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어머니는 결국 2년의 투병 끝에 돌아가시고 말았습니다.

어머니가 이제 어디에도 없다고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먹먹해집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으면, 멋대로 눈물이 핑 돌고 맙니다.

일하는 것도 흥미를 잃어버렸습니다. 이전에 일하던 출판사 사장에게 그런 말을 들었습니다.

"서른이 넘으면 자기가 무얼 쓰고 싶은지 고민하게 된다."

그리고 정말로 그렇게 되고 말았습니다.


대체 나는 무얼 쓰고 싶은걸까?


써야할 게 있으니까 쓰는 일을 하고 있을텐데...

일하지 않은 자 먹지도 말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런데도 도저히 일할 마음이 들지 않았습니다.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싶어져서 남자친구와 함께 있을 때도, 왠지 이유모를 흔들림이 있었습니다. 뭔가 강렬한 변화가 있어야 겠다고 느끼고 있을 무렵, 남동생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글을 쓰는 일 외에도, 새로운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세토시에 돌아가는 걸 진지하게 검토하기 시작했습니다.



24살, 대학을 갓 졸업한 게스트하우스 사장님


미나미 신타로. 1994년 세토시 태생. 홋카이도 대학 농학부 생태학 전공. 졸업 후 고향에서 게스트하우스 <마스키치> 오픈


돌아간다면, 세토시에서 뭔가 좋은 일이 생겨나면 좋겠다,

라고 생각해서 '세토', '게스트하우스'라고 인터넷에 검색해보고 '세토시에서 게스트하우스를 만든다' 는 얘기가 있는 지금의 <게스트하우스 마스키치>의 페이스북을 발견했습니다. 반가운 마음에 메시지를 보냈더니 바로 답장이 와서 세토시에서 처음 만남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들어보니 24살에 대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게스트 하우스를 개업했다고 합니다. 왜 고향으로 돌아와서 게스트하우스를 만들려고 생각했을까? 미나미군의 이야기를 잠깐 들어보겠습니다. 



자신의 길을 가는 미나미군. <천재 바가본>의 팬으로 '이걸로 됐다' 의 정신으로 살아간다.


  미나미군 : 진로를 정할 때 대학원에서 원래 흥미를 가지고 있던 술을 연구하는 것이나 술을 만드는 회사에 들어가는 것을 생각했었어요. 하지만 정말 순수하게 내가 제일 하고 싶은게 무엇인지를 생각하고 그걸 기준으로 선택했어요. 다른 길을 가는 것은 나중도 할 수 있으니까. 어떤 방식으로 일을 하더라도, 그 안에서 나의 삶을 즐기면 된다고. 

대학 졸업 후 바로 직접 창업을 한 건 아니지만, 뭔가 이렇게 열심히 하고 있으면, 외부에서는 제가 굉장히 사회적인 문제의식을 가지고 눈 앞에 있는 일에 힘쓰고 있는 청년처럼 보이는게 아닐까 하고 생각될 때가 있습니다. 다만 저는 저 자신을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미나미군은 에쿠니 가오리가 쓴 <칸노미야형제> 에 적힌 이 문장이 마음에 들었다고 합니다.


유쾌하고 쾌적하게 사는 건 의미있는 일이다. 비록 세상으로부터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되더라도.



미나미군 : 유쾌하고 쾌적하게 사는 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조급해지더라도 그 상황을 즐길 수 있는 여유를 가지고 싶어요. 그러기 위해선 마음에 여유가 있는 사람과 함께 생활하는 게 중요하죠.

그건 회사원으로 일하며 여유를 가지고 있는 사람일지도 모르고, 또는 크리에이터나 메이커일지도 모르고, 생활 리듬이나 금전 감각이 세상에서 어긋나 있는 사람일지도 몰라요. 하지만 그런 사람들이 모여드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어요.




모임이나 워크숍 등 이용할 수 있는 이벤트 스페이스. 개장 중에는 여기서 지내고 있다고 한다.



<마스키치>에 온 고객들이 세토시의 일상을 즐길 수 있길 바라는 미나미군.

그래서 자기 자신을 알기 위해, 상대를 알기 위해 1년에 걸쳐 마을 곳곳을 돌아다녔다고 합니다.



미나미군 : 이곳은 다른 지역과 다르게, 도자기들이 쇠퇴하고 유행을 지나도 시대에 흐름에 따라 계속해서 새로운 것에 도전하면서 불사조처럼 살아왔습니다. 그래서인지 시장의 아주머니들은 도전정신이 넘쳐 아직도 신상품 개발에 여념이 없어요.

제가 다니는 <오하요 정육점>은 3번에 1번은 꼭 새로운 걸 권하면서 신상품이니 먹어보라고 합니다. 늘 저를 아들처럼 생각해주시고, 항상 집에서 드시려고 만드는 특제 '카레볼'이나 '시소쥬스' 등을 덤으로 얹어주시곤 하거든요.



오하요 정육점 점주. 고기 외에도 달걀샌드위치, 두부 도넛 등 다양한 상품에 도전 중.


모두 매력적인 이야기구나, 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미나미군이,



세토시의 일상을 소개하는 일을 하고 싶어요. 함께 하시겠어요?



라고 말했습니다. 사실 저도 고향에 돌아오면 로컬 미디어를 만들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다양한 이야기를 만들어 전하고 숙소로 안내하고 실제로 지역을 즐길 수 있도록 하는게 가능하다면 분명 의미있는 활동이 될거라 생각했습니다.


세토시는 아키모노(도자기)의 산지이기 때문에 카나모토의 쇼진씨와 같은 도예가들이 수도없이 활약하고 있었고, 인터넷에 소개되지 않은 듯한 깊은 매력의 가게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우와, 이것저것 얼른 쓰고 싶어! 쓸 것이 있어! 그렇게 쓰고 싶은 의욕이 뿜뿜 솟아오른 건 정말 오랜만이었습니다.


게다가, 응원해주는 사람을 만나게 되었고.

그 때 저는, 세토시로 돌아오기로 이미 정해버렸는지도 모릅니다.


의기투합한 두 사람의 모습



야키모노의 산지, 세토시는 '츠쿠리테'가 모이는 마을로


세토시 도시계획과 마에지마 요리코씨. 1975년 홋카이도 출신. 홋카이도 대학 공학부 졸업 후, 2001년 세토시 관공서에 건축기사로 들어옴.


또 한 가지, 세토시의 일로 놓칠 수 없는 큰 움직임이 있었습니다. 2016년에 시작 된 <세토시 빈집 대책 계획 : 세토에서 살아보자 프로젝트> 였습니다. 담당자인 에리코씨는 미나미군이 <마스키치> 공간을 빌릴 수 있게 해준 인연이기도 합니다.


마을 사람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담당이자, 세토 빈집 대책 계획의 담당으로서 빈집을 활용해서 세토시를 어떤 지역으로 만들어가야 할 지를 나이도 직업도 제각각인 사람들과 간식을 먹으면서 나눈 이야기를 통해 정한 것이 바로 <츠쿠리테의 마을>이었다고 합니다.



마에지마 씨 : 모두가 세토는 '뭔가를 만드는' 마을이다, 라는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그리고 거기에 프라이드도 느껴졌어요. 그러다 '츠크리테' 라는 말이 나와서 이걸 키워드로 누구나 무엇인가를 만들고 '나는 츠쿠리테다!' 라고 말할 수 있는 마을이 된다면 재밌겠다고 생각했어요. 정말 뭐라도 괜찮아요. 아이를 만들어도 된답니다. (웃음)



아티스트가 모인 곳 <타넬리 스튜디오>


<타넬리 스튜디오> 평소에는 문이 닫혀있고 작은 구멍이 있다. 안에서는 작가가 작품을 만들고 있을지도, 아닐지도.


언제나 상냥하고 때론 든든한 마이제마씨가 '나만의 중요한 포인트'로 삼았던 건물이 있습니다. 오와리세야역으로부터 걸어서 7분 거리에 있는 '세토스에히로쵸 상가' 바로 옆 건물이 바로 그것입니다.


몰래 기대하고 있던 이 건물은, 현대미술을 하는 아티스트 우에마츠 유리카씨의 눈에 들어왔습니다. 우에마츠씨가 옛부터 함께 활동하고 있는 화가 시타라 리쿠씨와 상담을 하여, 이야기는 단번에 진척을 보이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지금 예술가가 모이는 복합 시설 <타네리 스튜디오>가 완성. 세토시에 방문하는 사람들이 완전 달라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젊은 여성층과 커플들이 찾아오게 된 거죠.


<타네리 스튜디오> 운영대표 시타라 리쿠씨. 1985년 세토시 출신. 나고야 조형예술대 미술학과 졸업 후 화가의 길로.


그런 <타네리 스튜디오>를 방문하여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대표 시타라 리쿠씨는 원래 폐허와 다름 없던 이 건물에 매력적인 가능성을 느꼈다고 합니다.



리쿠씨 : 작업을 하는 작가나 화가는 공간이 필요해요. 작업이 가능하고, 뭔가 생산적인 환경이 필요하고 저렴하기까지 하면 더 좋죠. 여기를 쓰는 데 한 채에 5만엔 이에요. 함께 빌리면 엄청 싸게 쓸 수 있는 거 잖아, 라고 생각해서 우리끼리 리노베이션을 하고 있는 도중에 카페, 갤러리, 사진 스튜디오를 하고 싶다는 사람들이 모이게 되어 복합적인 시설이 되었습니다.


리쿠씨는 중학생 때부터 고등학생때까지 세토시에서 지냈습니다. 당시엔 저처럼 정말 시시한 마을이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리쿠씨 : 중고생이라고 하면 패션, 유행, 프랜차이즈처럼 뻔하고 대중적인 것들을 좋아하는 연령대니까요. 미대에 진학하고 나서 그런 것들에게서 격리되어 살았어요. 고립된 섬과 같은 곳에서 학생들은 그 섬에 사는 원주민 처럼 사는 거죠. 이곳은 뭔가 동남아시아 같은 분위기가 있어요. 몇 번이나 찾아가고 생활의 일부가 되어야지만 비로소 사람들과 문화의 좋은 점을 알 수 있어요. 세토시, 특히 오와리세토 역 주변은 그런 분위기가 닮았다고 생각해요.



<타네리 스튜디오> 내부 모습. 스카우트(불법점거)로 시작한 파리 공동 아뜰리에 <59리보리>를 목표로.



리쿠씨 : 작가는 사회적으로 지위도 낮고 여러가지 정신적으로 정신적으로 안고 있는 것들도 있죠. 혼자서 갈등하는 것도 좋지만, 갈 길을 잃고 우왕좌왕할 때 누군가와 한 잔 하거나, 다른 이의 작업을 돕거나 그런 식으로 건강하게 나아갈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어요. 역사를 들춰보면, 인상파는 살롱에 낙선했던 화가들이 그룹전을 열면서 활동해온 흐름이었습니다. 모여서 함께 제작하는 예술이란 전혀 이상할 게 없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우에마츠 유리카씨. 1989년 시즈오카현 출신. <타네리 스튜디오> 부대표. 나고야 조형대학 졸업 후 현대미술작가 데뷔.



우에마츠 씨 : 재밌는 일을 해보자는 말이 나오는 곳이 되었으면 해요. 그냥 시시한 웃음거리로 끝나면 의미없어요. 서로 도움이 되고, 잘 해야겠다는 의지가 생겨서 이야기가 진행되어야 존재하는 의미가 있죠. 밥먹으러 가거나 여행을 가자고 할 때도 그저 가자고 소리내는 것이 아니라, 예약을 하는 정도의 행동으로 보여주는 기세가 좋아요. 그런 사람이 많이 있으면 무조건 즐거워진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두 사람의 분위기에 이끌려 처음에는 3명 뿐이었던 멤버가 지금은 20명 가까이 이용하는 대가족이 되었습니다. 최근에는 멤버 각자 뿐만 아니라, <타네리 스튜디오> 라는 집단 자체에 대한 인기도 높아져, 여러 가지 일이 더 많이 들어올 것 같다고 합니다.



밖에서부터 젊은이를 끌어오는

<Art Space & Cafe Barrack>


31살 동갑의 미술가 두 사람이 연 <Art Space & Cafe Barrack> 목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영업.



<타네리스튜디오> 에서 유일하게 손님들이 일상적으로 들릴 수 있는 공간이 바로 <Art Space & Cafe Barrack> 입니다. 예술 공간을 담당하는 미술가 후루하타 다이키 씨와 카페를 담당하는 미술가 콘도 카나코 씨. 독특하게 각자 별도의 현장을 담당하는 방식으로 공간을 운영하는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후루하타씨는, 학생시절부터 작가 개인으로 활동해나가는 것 외에 미술과 일의 관계에 대해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바로 앞이 카페, 안에는 갤러리.


후루하타 씨 : 처음에는 리쿠씨에게서 아뜰리에로 써보지 않겠냐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왕이면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전시공간으로 만들고 싶었어요. 아이치현에는 여러개의 예술계 대학이 있습니다. 각 대학에서 매년 여러 졸업생들을 배출하고 있지만, 졸업 후에 작품 활동은 하지만 전시할 공간이 없어서 곤란을 겪는 사람들이 꽤 있어요.

그런 생각은 했지만 저 자신조차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어요. 졸업 후 아르바이트를 하며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았고, 우선 취직부터 하자 그리고 쉬는 날 작품을 만들어서 발표를 하자는 마음 정도만 있었어요. 졸업한지 2년 정도 되었을 때 타넬리의 이야기를 알게 되었고, 제가 학생 때부터 생각했던 공간이 실제 형태를 가질 수 있겠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카페 담당이며 미술가인 콘도 카나코씨 (왼쪽) 취재 당시 전시 중이던 작가 이케나 치에씨 (오른쪽)


콘도씨는 아이치 현립 예술대학을 졸업 하고 고등학교 등에서 학교 선생님으로 일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입시가 목적이 아닌 미술만을 위한 공간을 열었습니다.


콘도 씨 : 미술과 저, 그리고 누군가. 좀 더 크게 말하면 사회가 될 수 있겠죠. 좋은 관계를 잘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공간을 시작했습니다. 타네리와는 별도로 지은 지 100년 이상된 공간에 공방을 만들어 그곳에서 활동하고 있어요.

세토시에는 리노베이션 하기 쉬운 건물이 많아요. 그러다보니 대학 졸업 후 아뜰리에를 위해 공간을 구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가구를 만드는 사람도 있고, 조각이나 그림, 판화 등 여러 장르의 작가들이 있어요. 모두 각자의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가지고 있어요. 작가가 작가를 불러, 울타리를 넘어 더 넓은 커뮤니티가 펼쳐집니다. 제가 생각했던 그대로는 아니지만, 그것보다 더 많은 만남을 가질 수  있어서, 역시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도쿄로 뛰쳐나간 작가가 고향으로 돌아올 때



살기위해서는 일을 해야합니다. 하지만 혼자서는 한계가 있습니다. 저는 원고의 완성도를 위해 돈을 소홀하게 써버리는 경우도 있고 온라인이나 SNS를 활용하는 것도 능숙하지 않습니다. 자신에게 한계를 느꼈고, 저를 도와줄 동료가 필요했습니다.


지금 <마스키치> 안에는, 제가 올해 7월에 개설한 세토시 마을을 담은 온라인 에세이 <호야호야>의 편집실이 있습니다. 미나미군과 목수와 제가 모여서 '편집실이 있으면 재밌겠다!' 라는 분위기가 고조되어, 어느 샌가 공간이 생겨버리고, 커뮤니티 스페이스가 되어버렸습니다.



호야호야의 편집실


이곳은 <호야호야> 편집실의 지금 모습입니다. 나중에는 실제 종이 매체를 만들어 마을의 매력을 전하거나 마을을 더 널리 알릴 수 있는 도자기 회사의 광고나, 구인 광고도 하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미나미 군이 숙박업 외에도 마을의 젊은 사람을 위한 부동산과 같은 다양한 사업을 전개할 예정이므로, 그런 정보를 전하는 일도 계속해서 계획해나가고 있습니다.


사업의 형태로 만들 수 있을 것인가는, 솔직히 말하면 미지의 세계입니다. 하지만 기분만큼은, 가노코 히로후미 씨( <헤로헤로 잡지 <요레요레> 와 노인홈 요리아이의 사람들>의 저자) 말을 빌리자면, 이런 느낌입니다.


근거 같은 건 별로 없다.
그냥 할 수 있다는 마음만 있을 뿐.
새로운 건 언제나
무모하고 계획 없고, 누구도 보증하지 않는
예상 밖의 곳에서 태어난다.




(왼쪽부터) 나이토 유타씨, 마에시마씨, 미나미군, 우에마츠씨, 리쿠씨, 현대미술작가 스즈키 유사쿠씨, 세토시 관공서 아오야마 치카코씨, 세토시 신세기 공예관 연수생 다나카 테츠야


이 마을, 특히 제가 알게 된 오와리세토역 주변 '츠쿠리테'들은 한 사람 한 사람 모두 굉장히 독립적입니다. 정해진 무언가를 다 같이 함께 하자! 라는 것과는 전혀 맞지 않습니다. 아무도 정리하려 하지 않고, 정리되지도 않습니다. 리더다운 사람이 나올 조짐조차 없다는 게 이 마을의 재미요소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내년 여름에는 3년에 한 번 개최되는 <아이치 트리엔날레> 에서 <타넬리 스튜디오>와 <마스키치>가 팀을 이뤄 재밌는 일을 벌이게 되길 기도하고 있습니다. 재밌는 일에 대해선 열심히 임하게 됩니다.


이제부터 세토시가 어떻게 될지 저는 잘 모릅니다. 도박과 같은 U턴이었습니다. 하지만, 어색할 정도로 젊은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는 건 확실합니다. 두근두근대는 미래를 상상할 수 있다는 건 정말 행복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신의 마을은 어떤가요?

잘라내도 분리되지 않는, 저마다의 고향.

<아무것도 없는 동네> 라고 생각한 곳에서, 

사실 본인만 모르게 벌써 재미있는 일들이 시작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사진:하마츠 와키


글쓴이

카미우라 미쿠 上浦未来



1984년 아이치현 세토시 출생. 진보쵸의 작은 출판사에서 근무한 후 작가로 독립. 도쿄 시타마치의 네즈, 가나가와현 오이소 마을에 살다가 2018년 5월 고향으로 U턴. 같은 해 7월 아이치현 세토시 게스트 하우스 <마스키치>에 편집실을 둔 세토시 마을을 걷는 에세이 <호야호야>를 개설. 취미는 혼자 여행하는 것. 동남아시아, 남미, 미국, 인도 등 30개국에. 어떤 사람이 어떤 것을 생각하고 어떻게 살아가는지 알아가는 것을 좋아함.




번역/편집 : 리이선생

clownforrest@gmail.com



역시 조금 더 부지런해야겠습니다.

저만 모르면 안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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