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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사람 Dec 12. 2020

어제보다 즐거울 내일을 팝니다.

행복을 대출해드립니다.

사실상 은행에서 대출을 받는다는 것은 불행을 저축하는 일만 같다. 나라의 부채가 쌓여간다는 것은 국민들을 슬픔의 한가운데로 몰아넣는다. 빚을 지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삶을 떠올리다 정확한 우리의 현실이 너무 와 닿아서 눈을 질끈 감았다. 앞이 또렷하게 보이지 않아서 발을 내디딜 수가 없는 느낌이다. 우리는 어째서 이만큼이나 멀리 와버린 건지 타인을 의식하지 않는 주체적인 행복은 손톱만큼도 찾아볼 수 없다. 떡볶이를 먹으며 수다를 떠는 일이 세상 재미있는 일이라고 여겼었는데 나는 그대로인데 세상이 점점 커진 건지 아니면 내가 자그마해져 버린 건가 싶을 만큼 우리가 서있는 배경화면이 급격하게 바뀌고 변했다.


나도 한때는 누군가가 부러워할만한 생을 살고 싶다며 허황스러운 꿈을 꾼 적이 있었다. 왜 모두들 저렇게 부담스럽게 행복해 보이는 거지 하며 투덜대곤 했는데 그만한 노력도 없었고 그에 상응하는 대가도 없이 입을 벌리고 있으면 누가 금수저라도 물려주길 바란 걸까. 우주 제일 멍청이 여기 있어요.


곧 현실로 돌아왔다. 꿈은 잘 때만 꾸는 것이고 당장 나에게는 비어있는 통장이 전부인 걸. 이상하다 사치스럽게 살지 않았는데 남아있는 게 없다니 너무 조금 벌었나 보다 딱 입에 풀칠할 정도만 벌었나 봐. 누가 들을라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난 20대 때보다 지금을 더 열심히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돌아오는 게 아무것도 없고 난 허공에 열심을 다해 집을 짓고 무너트리고 다시 짓기를 반복한다. 그러다 이젠 허공에 집을 짓는 일도 흥미가 떨어져 그만두었다.


당연하게도 내가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지 모르겠는 지경이 되었다. 작은 차들이 쌩쌩 지나가는 아득한 아래를 내려다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는 일이 제일 쉬운 거 같다고 생각한다. 나를 움직이게 하는 일이 뭘까. 정말 행복은 아빠의 말처럼 돈에서부터 시작하는 걸까. 왜 아빠는 돈이 행복의 전부가 아니라고 알려주지 않은 건지 원망스럽기만 하다. 그게 아니라면 상속세라도 낼 수 있게 해 줬어야지(?). 여전히 허영에 꽉 찬 나는 내가 저축하고 있는 불행들이 모두 완벽하게 아빠 탓인 것만 같았다.


그렇게 돈은 버는 줄로만 알았지 도무지 쓰는 방법을 몰랐기에 책도 사주지 않던 아빠를 또 너덜너덜 희미해진 과거를 탓하다가 나이만 잔뜩 먹고 앞서 나아가는 남들과 정반대로 지속적으로 퇴보하고 있었다. 이러다 암모나이트와 버금가는 화석이 되겠어. 삼엽충은 어떨까. 시간을 되돌아가서 시계 여행으로 잠깐 내가 아빠가 되어보았다. 아빠도 그저 열심히 그리고 열심히 살았을 그뿐이었다.


어떤 여행은 삶을 변화시키기도 한다지 과거 여행을 끝마친 뒤로 헛소리들은 그만하고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슬금슬금 찾아보는 게 어때라고 겨우 생각을 쥐어짜 낸다. 다시 그림을 그려보는 건 어떨까. 잘 그리는 사람들이 많으니 너는 못 그린 그림을 그리면 되겠다. 더 이상 환경이나 장비 탓을 하지 말고 스스로를 버리지 말고 아끼고 돌봐서 황폐하고 썰렁한 황무지 같은 공간에 자그마한 정원을 만들기로 한다. 그곳에 단 한송이의 꽃만 있다 해도 더 이상 나에게 있어서만은 초라하지 않을 것 같다. 통장 가득 대출했던 불행을 그로써 갚아나가겠다고 결심해본다. 알고 보면 행복도 불행도 다 거기서 거기인 거라고 마음먹기에 따라 제대로 얼렁뚱땅 달라질 수 있는 거라고 마왕의 말처럼 숨겨두었던 행복에 대한 재능을 가진 사람이 되어야겠어. 이런 생각 들을 한다고 해서 인생이 바뀔 거라 생각하지 않지만 열정을 쏟아 할 수 있는 일을 찾는 일을 그만두지 말자. 지금부터라도 불행과 불안을 저축하는 대신 우리가 너와 그리고 내가 밝은 미래를 잔뜩 빚질 수 있기를.



곧 도착하게 될 내일을 향한 철학적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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