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적이라서 일상적이지 않은.
유선전화기를 통해서 약속을 잡아야만 했던 날들 속에 나도 있었다. 이러니 너무 옛날 사람 같지만 그 시절의 우리는 졸업을 앞두고선 매일 2005년 5월 5일 오후 5시에 학교 운동장에서 다시 꼭 만나자고 재차 약속을 하곤 했다.
우리의 약속 장소는 대부분 지하철역 8-2에 있는 대기석이었다. 열차가 들어오는 것을 바라보다 역을 떠나는 순간을 바라보는 일을 몇 차례 반복하다 보면 꼭 네가 왔다. 가끔씩 조금 늦긴 해도 기필코 왔다 너는. 네가 너무 늦는 날에는 지하철역 안에 있던 공중전화에 동전을 넣고 전화를 해보기도 했지.
생각해보니 나는 너를 기다리는 시간을 좋아했던 것 같다. 플랫폼에 앉아 있는 시간들을 무의미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었는데.
세상에는 지켜지는 약속보다 공기 중을 떠다니는 어중되거나 그도 아니면 처참하게 깨어진 맹세들이 더 많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코로나19는 지금까지 부서진 기억보다 더욱 많은 희생과 약속들 그리고 믿음까지도 앗아가 버렸다. 이제 우리에겐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들이 남은 조각들이 별로 없는 것 같다. '내일 보자' 라던지 '집 앞으로 갈게' 같은 지극히 사적이어서 아름다운 일들이 눈앞에서 연기처럼 사라져 버리는 동안에 처량하게도 할 수 있는 건 없어 보였다. 그럼에도 우리는 온전하지 않은 상태로도 제법 시간을 흘려보내고 무료함을 견딜 줄 아는 요령이 늘어 지구가 그 자리에서 자전을 하지 않고 부지런히 태양 주위를 도는 것처럼 느껴졌고 변한 건 없지만 모든 게 변해가고 있다. 아주 서서히 교묘하게 변해가는 것들에 우리는 적응해 나아가고 있었다 어느새.
하지만 우리의 과거는 오래된 미래이고 모든 것은 연속성을 띄고 있다는 점에서 포기나 체념은 이르다는 생각을 한다. 기존의 디지털을 마스터하지도 못한 채 인공지능 시대로 이동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아날로그에도 적잖이 열광하니까. 과거를 통해 미래를 세워나가는 일이 지금의 우리에게 정말이지 필요한 게 아닐지 싶다. 과하지 않게 소비를 하고 환경을 돌보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한 과제가 아닐까. 꽃과 나무를 돌보는 삶은 어쨌든 우리를 더 풍요로 데려다주니까 자연과 함께 지금을 버티어 내야겠다. 자연은 그럼에도 무차별적으로 우리에게 무한하게 내어줄 테니까. 그렇게 오늘보다 흥미로운 내일에 우리 완전하게 만나.